2학년 7반 이준우 학생 엄마 장순복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56]

신선영 기자 2024. 3. 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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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순복씨(50)는 준우 이야기를 하면 얼굴빛이 밝아진다.

준우와 함께한 시간은 10년이 지나도 다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장씨는 세월호 가족과 일반 시민이 함께하는 4·16합창단에서 2016년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준우 동생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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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시사IN〉이 그날까지 ‘세월호 사람들’ 100명을 만납니다.
2학년 7반 이준우 학생 엄마 장순복씨. ⓒ시사IN 신선영

장순복씨(50)는 준우 이야기를 하면 얼굴빛이 밝아진다. 준우와 함께한 시간은 10년이 지나도 다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장씨는 세월호 가족과 일반 시민이 함께하는 4·16합창단에서 2016년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가 집에서 노래하면 준우가 옆에서 잘 들어줬어요. 참사 이후에는 아이가 없는데 여전히 노래가 흘러나오는 게 싫었어요. 한동안 엄청 울었죠. 4·16합창단에서 〈너〉 악보를 받았을 때 못 불렀어요. ‘태어나던 날 처음 잡던 손. 목소리를 알아듣던 너. 세 살 적 기차 창에 매달려 세상을 바라보던 너. (중략) 열넷 은행잎을 주워 선물이라고 내밀던 너. 열여섯 방문을 닫고 음악을 크게 틀던 너. 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날마다 고마웠어. 매 순간 사랑했어.’ 가사 내용이에요. 다들 그랬을 거예요. 한 달은 가사만 보고 한 달은 듣기만 했죠. 그렇게 노래를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어요. 변함없이 함께해준 시민 합창단원들 덕분에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저를 버리지 않는 분들처럼 느껴져요.

준우 동생도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많이 힘들어했어요. 지금도 그 아이가 가장 싫어하는 장면이 있어요. 매년 4월16일이 되면 언론에서 배가 뒤집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저희는 장례 치른 뒤부터 그 장면을 못 봐요. 준우가 세월호 배 안에서 마지막까지 몸부림쳤다는 걸 발견 당시 손가락을 보고 알았어요. 녹슨 세월호 배를 보기 힘든 이유예요. 착한 준우를 그렇게 보냈다는 게 지금도 힘들어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10년 전과 똑같이 미안한 마음이에요.

간담회에서 만난 시민이 미디어가 아닌 실제로 유가족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했어요. 잘 웃고 밥도 잘 먹는 제 모습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자기 주도적인 아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저희가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세대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저는 준우가 아직 어딘가 살아 있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너는 아직 어리고 똑똑해서 극락세계에 갈 때가 안 됐다고, 그러니 죽음을 즐기고 있으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이해가 안 되시죠. 그런데 저만의 세계가 있어요.”

준우의 이름표와 좋아하던 시계, 가족 앨범 등 장순복씨가 보관해온 물건들. ⓒ시사IN 신선영

 

신선영 기자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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