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한 돈뭉치가 한 끼 밥값…돈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ESC]

한겨레 2024. 3. 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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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걷다 보면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 집권 뒤 물가 폭등
100장 지폐 서너다발을 밥값으로
빠른 속도 녹고 있는 빙하 트레킹
고단해도 역사·자연 강렬한 느낌
‘방과후 산책단’ 11명 한끼 식사비로 치른 1000아르헨티나 페소 100장짜리 3묶음가량.(약 47만원)

인생이란 알 수 없다. 평생 돈과는 인연 없는 삶을 산다 싶었는데, 돈의 무게에 치이는 날이 올 줄이야. 배낭 안에 든 돈다발에 내 어깨는 사정없이 짓눌리고 있었다.

‘방과후 산책단’(책임여행을 꿈꾸며 만든 여성 전용 여행단)을 이끌고 남미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 나는 그야말로 멘털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이놈의 남미에 다시는 가나 봐라. 맹세 같은 중얼거림이 절로 터졌다. 작년에는 페루가 내 수명을 3년쯤 가져갔다. 시위로 쿠스코공항이 폐쇄되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리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첩보 작전이라도 하듯 가슴 졸이며 대기한 끝에 겨우 마추픽추에 다녀올 수 있었다. 페루-볼리비아 간 국경은 끝내 열리지 않아 여행 경로를 바꿔야 했다. 급하게 항공권을 끊어 볼리비아로 넘어가느라 예정에 없던 큰 지출을 감수해야 했고.

11명 호텔비 수백만원 더 들어

올해는 아르헨티나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난데없는 페소화 가치절하로 온 나라가 난리였다. 이 사태의 원인은 지난해 11월에 당선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다.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로 불리는 밀레이 대통령은 자유지상주의 성향의 극우파 정치인. 중앙은행 폐쇄, 공용화폐로 미국 달러 사용, 장기 매매 및 무기 소지와 마약의 합법화 등 급진적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다. 암울한 현실에 염증을 느낀 젊은 층의 압도적 지지 덕분이었다. 당선 직후 그는 환율 방어를 하겠다며 페소화 가치를 54% 평가절하했다. 그동안은 아르헨티나의 이중환율제도 덕분에 환전소에서 달러를 바꾸면 공식 환율보다 40% 이상 환율이 좋았다. 호텔비든 투어비든 명시된 가격의 60% 정도에 가능한 셈이었는데, 갑자기 100%를 고스란히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당장 나와 방과후 산책단 총 11명의 호텔비만으로도 수백만원을 더 지출하게 생겼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중남미에서 브라질·멕시코에 이어 3번째로 큰 경제 규모에, 세계 경제 순위 22위인 이 나라가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대한민국의 28배에 달하는 영토를 지닌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에는 경제 규모 세계 5위의 부국으로 유럽에서 이민을 오던 나라였다. 어린 시절에 울면서 봤던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 그 주인공인 이탈리아 소년 마르코의 엄마가 일하러 갔던 나라가 아르헨티나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국가 부도는 9번이나 계속되었고,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22회)’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런 화약고에 신임 대통령이 기름을 부어버렸다. 전 정부가 물가 억제를 위해 폈던 ‘공정 가격’ 정책도 중단한 탓에 지난해 12월의 전년 동기 대비 물가상승률은 210%. 당연히 집권 초기부터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가 칠레 파타고니아를 걷고 있던 지난달 24일, 아르헨티나는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비행기부터 버스까지 모든 교통수단이 멈췄다. 그날, 우리나라 여행사의 한 팀은 남은 일정을 맞추기 위해 1천만원에 버스를 빌려 다음 도시로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의 33일 간 남미 여정 중 12일이 아르헨티나였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일정을 빼고는 거의 매일 트레킹이 잡혀 있었다. 환율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든, 남은 일정을 무사히 마쳐야만 했다. 방과후 산책단을 꾸리기 시작한 후 내 인생의 신조는 “체력이 인성이다”가 되었다. 일상을 꾸리는 힘도, 여행을 해내는 힘도 바탕은 체력이다. 타인에게 다정할 수 있는 것도 체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 여행이 길어지고 피로도가 쌓이면 짜증이 나기 쉽다. 그 짜증의 대상은 단장인 내가 될 확률이 크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단원들의 체력부터 끌어올리자! 남미 출국 4개월을 남겨두고 단체대화방을 열고, 매주 미션을 줬다. 1만보 걷기에서 시작해 2만보, 3만보로 늘려가고, 주 1회는 무조건 산행. 고도도 300m에서 시작해 1000m 이상까지 높여갔다. 4박5일 트레킹에 필요한 짐을 싸서 배낭 메고 산행하기, 사흘 연속 산행하기 등 강도를 조절했다.

등산복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로고가 된 산인 엘찰텐에서 트레킹.

그렇게 4개월의 체력 훈련을 끝내고 남미로 날아왔으니 나름 준비된 여행자들이었다. 덕분에 칠레 파타고니아의 대표선수 격인 토레스델파이네의 4박5일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넘어갔다. 엘칼라파테의 린다비스타 호텔에 짐을 풀었다. 30년 전에 이민 오신교포 부부가 꾸리는 숙소 카운터에는 지폐계수기가 놓여있었다. 돈 세는 기계를 들여놓고 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사장님이 웃으셨다. 각오를 하고 왔지만 역시나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무거운 돈다발을 최소 10개씩은 지고 다녀야 했다. 식당에서 밥 한끼를 먹고 나면 100장 묶음의 지폐 서너다발이 기본이었다. 투어비나 호텔의 방값을 지불할 때는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돈을 세느라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술집에서 맥주를 주문할 때는 다음 잔 가격까지 미리 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았다. 첫 잔을 마시는 동안 맥주 가격이 오른다나.

빙하 깬 위스키에 가슴이 따끔

페리토 모레노 빙하 트레킹.

아르헨티나에서의 첫 트레킹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 트레킹. 빙하 트레킹은 한 회사가 독점으로 운영하는데 비싸기로 악명이 높았다. 2월부터 가격이 오른다기에 넉달 전에 예약을 했는데 설명이나 변명도 없이 가격이 또 뛰었다. 신용이 사라진 사회가 눈앞에 있었다. 등산화 위에 아이젠을 차고 푸른 빙하 안으로 들어가 걸었다. 폭 5㎞, 길이 30㎞에 달하는 거대한 빙하는 어떤 공성 장비로도 넘어갈 수 없는 성벽처럼 단단해 보였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1년에 평균 1m씩 줄어들었던 빙하의 크기가 지난 2년간 700m가 줄어들었다. 녹는 속도가 최소 350배 빨라진 셈이다. 성채 같은 이 빙하도 녹아 사라질 날이 머지않은 걸까.

성채 같은 페리토 모레노 빙하.

여전히 이 트레킹의 마지막 순서는 빙하를 깬 얼음을 넣어주는 위스키 온더록스였다. 낭만적이지만 이 또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인 것 같아 가슴이 따끔거렸다. 가이드 다니엘에게 물었다. 빙하의 변화로 기후 위기를 실감하느냐고. 그는 지난 몇년간 변화를 느껴왔다면서 덧붙였다. “자연은 늘 변화하고 있으니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문제는 인간의 삶인 거지.” 20년째 국가 부도 위기를 겪는 나라의 국민이라서일까. 기후위기보다 경제위기가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아니, 기후위기는 결국 모두가 경제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살아온 탓이 크니, 그를 탓할 일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누려온 편리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 남았을 뿐.

아르헨티나 빙하 국립공원의 남쪽에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있다면, 북쪽에는 세로 토레와 엘찰텐(피츠 로이)을 비롯한 3000m급 바위산이 있다. 등산복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로고가 된 산이 바로 엘찰텐. 파타고니아답게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지만, 시리도록 짙푸른 하늘이 펼쳐진 날이었다. 올해는 엘찰텐을 가까이 조망할 수 있는 호수까지 올라가는 길에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주말의 북한산 백운대 오르는 길에서 보는 병목 현상을 여기서도 볼 줄이야. 왕복 8시간이 걸리는 트레킹은 자연스레 시간이 늘어났지만, 풍경에 취해 힘든 줄도 모르고 보낸 하루였다. 파타고니아 트레킹의 종착지는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 이곳에서 남극까지는 1000㎞. 우수아이아 국립공원 안의 땅끝 우체국에서 조카에게 엽서 한장을 썼다. 우표와 엽서 한장의 가격은 물가 폭등을 반영해 역대급(9500페소, 약 1만5천원)이었다.

지구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에서의 트레킹.

변하는 모든 것 사이에서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도 있었다. 비글해협 투어를 하며 찾아간 최남단 등대도, 바위섬에서 낮잠을 자는 바다사자 떼도, 해변의 펭귄 무리도 그대로였다. 2011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봤던, 젠투 펭귄 사이에 혼자 남은 킹펭귄 한 마리조차 여전했다. 어떤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비글해협 바위섬에서 낮잠을 자는 바다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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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배려·유머 잃지 않는

지난 2월, 아르헨티나 가톨릭대학(UCA) 산하 아르헨티나 사회부채관측소 연구진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아르헨티나 국민의 57.4%인 2700만명이 빈곤층이며, 그 중 15%는 ‘극빈자’에 속한다고 했다. 밀레이 대통령 취임 2개월 만에 누적 물가상승률은 51%가 됐다. 당연히 강도와 약탈 사고도 늘었다. 땅에 파묻힌 고압선을 훔치다 20대 청년이 감전사했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고달픈 현실을 버텨내는 이들에게도 어떤 변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13년 전과 달라지지 않은 건 몸에 밴 여유였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이의 손길에도, 길을 물었을 때 알려주는 이의 태도에도 배려와 유머가 살아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공원에서 운동하던 시민들은 사진을 찍던 우리에게 같이 하자고 권해 때아닌 아침 운동을 함께 하기도 했다. 개를 산책시키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성도, 고깃집에서 숯불에 소시지를 굽던 청년도 사진을 찍으려는 우리에게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해줬다. 경제 상황의 악화에도 이방인에게 다정함을 잃지 않은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체 게바라, 프란치스코 교황, 탱고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 마라도나와 메시, 에바 페론, 작가 보르헤스와 시인 알폰시나 스토르니. 이 나라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더 이상 그 이름처럼 좋은 공기가 아닐지 몰라도, 이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여전했다. 150년 역사의 카페 토르토니에도, 피아졸라 극장의 탱고 댄서들에게도 아직 잃지 않은 자부심이 남아있었다.

‘거대한 물’이라는 이름처럼 광대한 이구아수 폭포.

마지막 여정은 이구아수 폭포였다. 과라니 부족의 언어로 ‘거대한 물’이라는 이름처럼 광대한 이구아수 폭포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넘나들어야 한다. 브라질에서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이구아수와 주변의 열대우림을 조망한 후, 보트를 타고 폭포 안으로 질주해 물벼락을 맞으며 온몸으로 폭포를 느꼈다. 다음날, 다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폭포의 위와 아래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며 걷는 내내 일행에게서 감탄사가 터졌다.

‘거대한 물’이라는 이름처럼 광대한 이구아수 폭포.

이 고단한 여정을 나는 왜 또 한 걸까. 그날 밤, 단원들이 내 손에 쥐여준 노트에 그 답이 있었다.내가 느꼈던 이 땅의 공기와 바람, 햇살, 슬픈 역사와 장엄한 자연, 삶의 고달픔과 기쁨. 이런 것들을 나보다 더 강렬하게 느끼고깨달은 그들의 감정이 노트의 갈피마다 적혀 있었다. 그 감정의 파고가 이렇듯 생생히 전해질 때,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다음 산책단을 꿈꾸고 만다. 아르헨티나의 시민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듯이, 나 또한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글·사진 김남희 여행가
여행가 김남희는 2003년 이후 유목민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언젠가는 앉아서 유목하는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지은 책으로는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할 땐, 책’,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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