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지문이 있다면, 반려견에겐 ‘이것’ 있다

이수린 기자 2024. 3.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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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린 기자의 반려견 뽀뇨. 과학동아 제공

반려동물 1500만 시대입니다. 한국 국민 4명 중 1명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유기 방지를 위해 마련된 반려동물 등록제가 시행된 지 약 10년이 지났음에도 2021년 기준 반려동물 등록률은 53.4%에 그칩니다.

등록률을 높이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최근 비문(코 전반에 분포된 고유한 무늬), 홍채 등 반려견의 생체인식정보로도 반려동물 등록을 허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반려동물 등록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코 무늬로 가능한지 기자의 반려견 ‘뽀뇨’와 동행취재했습니다.

반려동물 생체인식 애플리케이션으로 취재에 동반한 반려견의 비문을 등록하는 기자의 모습. 과학동아 제공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강아지들은 코주름이 달라요.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강아지의 코를 한 번 촬영해 보시겠어요?”

지난 1월 반려동물 생체인식 스타트업 ‘펫나우’ 사무실에서 만난 임준호 대표는 기자와 12년 동안 함께한 반려견, 푸들 ‘뽀뇨’의 프로필 등록을 안내했습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앱에 뽀뇨가 태어난 날짜를 입력하고 ‘비문(코주름) 촬영하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카메라에 뽀뇨의 코가 잡히면서 ‘20% 인식됨’ ‘50% 인식됨’과 같은 배너가 떴습니다. 사람이 스마트폰에 얼굴을 등록하는 과정과 비슷했죠.

차이가 있다면 ‘100% 인식’을 달성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뽀뇨는 마치 연습한 것처럼 카메라를 피해 움직였습니다. 뽀뇨가 고개 각도를 살짝이라도 틀면 코주름 촬영이 중단됐습니다. 진땀을 빼는 기자를 보며 임 대표는 “이것이 바로 반려동물 비문 인식 기술 개발이 쉽지 않은 이유”라며 “뽀뇨를 안고 촬영하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려동물 비문 인식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그동안 5만여 장의 개 코 사진을 직접 촬영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었습니다.

개의 코주름인 비문은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마다 모두 다르고 고유한 무늬를 가지고 있어 정보량이 많다. 이전에는 선명한 개의 코 사진을 얻기 어려웠으나,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스마트폰으로도 빠르고 선명한 개 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임준호 펫나우 대표가 수집한 비문 데이터를 포함한 다양한 개 코 사진들. 임준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코주름 0.05초 만에 촬영하는 AI

“최대한 많은 개를 촬영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애견카페는 모두 갔어요. 유기동물 보호소에서는 수백 마리 개가 한 번에 달려오기도 했는데 바닥에 누워서 찍고 물리면서도 찍었죠.”

임 대표는 펫나우 앱 출시 전 직원들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개의 코 사진을 찍으러다니던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들이 코주름 사진을 수집한 건 개의 비문을 인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AI를 학습시키려면 주름 하나하나가 잘 보이는 선명한 코 사진 데이터가 최소 수만 장 필요한데, 인터넷 상에서는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의 비문은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별로 모두 다릅니다. 동그란 섬 같은 무늬, 각진 무늬 등 고유의 무늬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문만큼 인식률을 높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코끝의 촉촉한 물기 때문에 빛이 반사돼 비문이 잘 찍히지 않고 털이 코를 가리는 경우가 있어 선명한 비문을 찍기까지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식률은 70~8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임 대표는 “약 5년 전 스마트폰의 얼굴 인식 기술이 처음 나왔을 때 국제 반려산업계에서도 이 기술을 사업화한 회사들이 20개 가량 설립됐지만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대부분 2~3년 안에 포기했다”고 밝혔습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비문으로 개의 생체등록을 하려면 적어도 인식률이 95% 이상 나와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반려동물 생체인식 관련 업계는 해당 반려동물이 동물등록 된 개체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인식 AI를 주요하게 사용합니다. 인식 AI는 수만 마리의 개 비문을 미리 딥러닝으로 학습한 뒤 새로운 비문 데이터가 서버로 들어오면 기존에 있던 데이터와 비교해 등록된 개를 찾는 역할을 합니다.

임 대표는 “높은 인식률을 위해선 정확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인식 AI는 데이터 처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서버를 사용해 정확도를 높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변수들(촉촉한 코, 움직임, 털 등) 때문에 선명하고 고품질의 비문 사진을 찍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임 대표는 인식 AI에 촬영 AI를 추가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인식 AI의 정확도를 한층 높여주는 방법으로 스마트폰으로 비문을 촬영하는 단계에서도 AI를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입니다.

촬영 AI는 스마트폰으로 강아지 비문을 촬영할 때 촬영 시간을 단축시킵니다. 움직이는 코를 쫓아가며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고 코를 찾으면 재빠르게 촬영을 하죠. 그리고 촬영된 사진 중 가장 깨끗하고 선명하게 나온 사진들을 골라 서버로 보내는 역할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0.05초 안에 일어납니다.

비문으로 하는 반려동물 신원확인. 펫나우 제공

● 개는 코주름, 고양이는 얼굴최적 생체정보는?

반려동물 등록제는 동물의 유기와 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4년 1월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됐습니다. 그러나 농림축산검역본부의 ‘2022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동물보호센터가 구조한 반려동물은 11만 3440마리에 이릅니다. 반려동물 등록률은 반려견 기준 2021년 53.4%에 그칩니다.

그동안 반려동물 등록에는 두 가지 방식이 채택돼 왔습니다. 목걸이로 인식칩을 거는 ‘외장형’과 몸속에 마이크로칩을 넣는 ‘내장형’입니다. 내장형은 반려동물의 몸속에 칩을 넣어야하기 때문에 일부 반려동물 가족들이 거부감을 느껴왔습니다.

외장형은 활동 중 목걸이 유실 위험이 있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죠. 기존 방식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지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체정보를 이용한 동물 등록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됩니다.

임 대표는 “생체정보는 평생 변하지 않는 고유 정보”라며 “AI 기술 발전으로 생체정보 인식이 훌륭한 대안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생체정보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홍채, 지문, 얼굴, 발바닥, 항문, 심지어는 걸음걸이도 생체정보가 될 수 있죠.

각 종의 특성과 활용 목적에 따라 ‘최적의’ 생체정보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 얼굴과 지문이 생체정보로 흔히 쓰이는 것처럼 말이죠. 최적의 생체정보를 활용해 반려동물을 등록할 수 있다면 반려동물 등록제의 실효성을 높이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최적의 생체정보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인식률, 정확도, 그리고 편리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 발바닥은 매번 발을 들어서 봐야 하기 때문에 편리성이 떨어지고, 홍채는 눈에 눈곱이 끼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반면 비문은 서로 다른 주름이 있어 고유 정보량이 많고, 기술 발달로 촬영이 수월해짐에 따라 모든 조건을 상대적으로 잘 만족시킵니다.

비문을 생체정보로 활용한 역사는 꽤 깊은 편입니다. 북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캐나다 국립 애견단체인 ‘캐나다켄넬클럽’은 약 80년 전인 1938년부터 1992년까지 개의 고유 식별방식으로 비문 등록을 허용했습니다. 잉크 패드를 개의 코에 대 잉크를 묻힌 뒤 카드보드에 코 무늬를 찍는 식이었습니다. 다만 카드보드에 찍힌 코 무늬를 사람이 일일이 대조하는 방식이 워낙 아날로그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요.

비문을 이용해 개를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은 2009년 발간된 ‘수의해부학’과 2012년 발간된 ‘수의법의학’ 등 전문서적에서도 꾸준히 언급돼 왔습니다. 2021년에는 서울대, 건국대 등 공동연구팀이 새끼 비글 10마리의 코를 매달 촬영한 결과, 생후 2개월이 되면 코 패턴이 완성되고 이후 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애니멀스’에 발표했습니다.(doi: 10.3390/ani11092664)

연구팀은 “개의 비문이 각각의 개에 대한 고유한 생체인식 마커로 사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죠.

고양이의 경우는 어떨까요. 고양이는 비문을 최적의 생체정보로 보지 않습니다. 코가 작아 인식률을 높이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고양이는 스스로 얼굴을 깔끔하게 다듬고 얼굴 털에 변화가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펫나우에서는 고양이의 ‘얼굴’을 최적의 생체정보로 보고, 고양이 생체등록 방법으로 얼굴 인식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임 대표는 “AI로 고양이 얼굴의 윤곽선과 눈매, 코 등을 인식할 수 있다”며 “고양이 얼굴 인식률은 개의 비문 인식률보다 높다”고 말했습니다.

임준호 펫나우 대표. 펫나우는 촬영에 AI를 도입해서 반려동물 생체인식 기술을 실현했다. 과학동아 제공

● 유기동물 없는 세상을 꿈꾸며

의료정책, 복지정책 등 각종 정책을 마련할 때 가장 기초가 되는 건 ‘통계’입니다. 반려동물 등록이 활성화되면 통계 자료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적극적인 반려동물 정책 마련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려동물보험(펫보험) 관련 정책입니다.

그동안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반려인들은 병원비 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필요로 해왔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2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한 마리당 월평균 양육비가 15만 원이 드는데 그중 6만 원이 병원비입니다. 임 대표는 반려인들의 병원비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방안으로 펫보험을 꼽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펫보험 상품은 대부분 보험료가 높고 보장 범위가 다양하지 않아 반려인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덴 역부족입니다. 펫보험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소인 보험료가 비싼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동물병원마다 진료비가 모두 다르고, 해당 반려동물이 정말 보험을 가입했는지 여부를 알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임 대표는 “해당 반려동물이 정말로 보험을 가입했는지 비슷하게 생긴 다른 아이인지 보험사 입장에서 알기 어려운 부분”이라며 “그동안은 그 리스크를 손해율에 포함시켜 보험료를 책정했기 때문에 보험료가 비싸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펫나우의 비문 인식기술은 이런 생체인식정보를 활용한 동물등록 의무화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진료비 표준화 문제는 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조만간 풀릴 것으로 봅니다. 생체등록을 통해 동물 등록이 활성화되면 보험료도 낮아질 거고요. 보험료를 반값 이하로 낮추는 게 목표입니다.”

현재 한국의 정책 방향성도 임 대표의 전망과 결을 함께 합니다. 2023년 11월, 금융정책을 총괄하며 보험산업에 관한 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펫보험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습니다. 펫보험 활성화를 위해 보험 가입 등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새로운 보험 상품 개발을 지원하기 위함입니다. 농식품부는 펫보험 활성화에 필요한 반려동물 개체식별 강화를 위해 생체인식정보를 활용한 동물등록 의무화를 검토합니다.

임 대표는 “회사 비전인 ‘유기동물 없는 세상 만들기’의 첫 번째 미션이 펫보험 대중화”라며 “정확도 높은 생체등록 기술로 반려동물 등록률을 높이고 펫보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핵심은 ‘신원’이예요. 신원확인이 되면 아이를 잃어버려도 빠르게 연락받을 수 있고, 유기된 아이도 누가 버렸는지 알 수 있겠죠. 병원에도 자주 갈 수 있고요. 사람과 오래 건강하게 함께하는 진정한 반려문화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임 대표는 마지막으로 강조했습니다.

“아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유기동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무책임함이 반려동물 유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도 끊어질 날이 머지않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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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2월호, 사람에게 지문이 있다면, 반려견에겐 ‘이것’이 있다

[이수린 기자 surin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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