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해진 "'파묘' 베테랑 장의사 영근, 백설기 같은 매력 있죠"

조은애 기자 2024. 3. 2.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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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해진이 스포츠한국과 만났다. 사진=쇼박스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영화 '파묘'의 기세가 뜨겁다. 할리우드 배우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듄: 파트2', '웡카'를 모두 꺾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데 이어 손익분기점(330만 명)을 가뿐히 달성하고 4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올해 개봉작 중 4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파묘'가 처음이다. 지난 2월2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유해진은 "영화계의 경사"라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요즘 흥행하기 참 힘든데 참 감사한 일이에요. 사람처럼 작품도 팔자가 있는 것 같아요. 엊그저께 무대인사 다니면서 보니까 '파묘' 보기 참 좋은 날씨더라고요. 해가 너무 쨍해도 다들 외곽으로 놀러가실텐데, 이렇게 저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흥행이 될둥 말둥 한 것 같아요. 호평이 많아서 다행이에요."

'파묘'는 앞서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한국형 오컬트의 새로운 장을 연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어린 시절 100년이 넘은 무덤의 이장을 지켜봤던 장재현 감독의 기억에서 시작된 기획으로, 파묘라는 소재에 동양 무속 신앙을 가미해 참신한 오컬트 미스터리의 탄생을 알렸다.

"오컬트는 제겐 좀 낯선 장르였어요. 그런데도 '파묘'가 좋았던 건 너무 신선했기 때문이에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장재현 감독님은 희한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분이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땅에 대한 이야기를 오컬트 장르에 접목시켜서 풀어냈을까 놀라웠어요. 제가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어요."

영근은 대통령을 염할 정도로 베테랑 장의사다.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찾아와 동업을 제안하자,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함께 수상한 묘의 이장 준비에 나선다. 하지만 개관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뢰인의 말에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백설기 같은 인물이죠. 담백하잖아요. 무지개떡이나 시루떡처럼 화려하진 않은데 '뭔 맛이야? 근데 먹을 만하네?' 싶죠. 상덕이나 화림, 봉길은 그 색이 뚜렷한데 영근은 아이보리나 베이지색에 가까워요. 그래도 필요한 색깔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는 인물이거든요. '그걸 왜 파려고 해? 안 파면 되잖아?' 하는데 그게 관객의 생각일 수 있잖아요. 물론 묘를 안 파면 이 영화도 없겠지만.(웃음) 한발짝 뒤에서 상황을 보는 사람, 관객들이 궁금해하는 걸 대신 물어봐주고 이야기를 뒤에서 슬쩍 밀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장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장의사로서 숙련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유해진은 몸짓부터 손동작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그려 영근의 여유와 전문성을 표현했다. 그의 빈틈없는 열연 덕에 센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영근의 존재감은 선명했다.

"우리나라 최고이신 분들이 현장에 오셨었어요. 영화에 크게 나오진 않지만 유골 수습하고 관에 끈 묶는 것, 일 끝내고 손 씻는 것 등을 보여주셨어요. 저는 늘 이 일을 해왔던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고 끈 묶는 것부터 열심히 연습했죠. 예전에 '태백산맥'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지역 사투리들이 글자로 남아있다는 게 참 소중하다고 느꼈거든요. 이런 게 점점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잖아요. '파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화장 문화에 익숙하니까 이장을 왜 하는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파묘'가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영근과 상덕의 끈끈한 호흡은 '파묘'가 선사한 볼거리 중 하나다. 오랜 파트너이자 친구인 두 사람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며 지루할 틈 없이 스크린 곳곳을 채웠다. 이들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웃음으로 무겁고 음산한 분위기 속 관객의 긴장을 풀어주곤 했다.

"매일 영안실에 있고 땅 파서 들어가 있으니까 내내 스산하잖아요. 가벼운 게 있어야 이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죠. 영근, 상덕의 유머는 크게 웃기자는 게 아니에요. 관객들에게 안도감을 주려는 거예요. 항상 제가 좋아하는 웃음은 상황에서 나오는데요, 내가 지금 웃기고 있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면 이 영화와는 색깔이 안 맞아요. 흐름에 맞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웃음을 줘야 했어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가끔 휴게소에서 어묵도 먹고 그래야지, 빨리 간다고 끝은 아니니까요. 중간에 적절한 쉼표를 찾아주는 게 제가 할 일이었어요."

'파묘'의 흥행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해진은 올해 영화 '야당'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올빼미'의 인조, '달짝지근해: 7510'의 순수한 치호, '도그데이즈'의 까칠한 싱글남 민상에 이어 유해진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는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좋은 영화를 잘 만든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 잘 되는 건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지금까지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나서 관객분들이 제게 신뢰가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매번 잘하고 남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뭘 해도 좋게 보려는 마음으로 봐주시니까 좋은 반응을 모으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큰 책임감을 느껴요. '이번에 이런 작품을 보여드리면 어떨까', '너무 밋밋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실망하시면 어쩌나'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요. 그럴수록 제 역할의 방향을 잘 잡고 가야죠. 연기를 오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는 동안 얼마나 잘 보답하느냐도 중요하니까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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