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일 그리고 ‘신사동 호랭이’ 이호양을 기억하며

한겨레 2024. 3. 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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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프로듀서 신사동 호랭이(이호양·41). 제이티비시(JTBC) 제공

2월16일 아침, 방송국 동료들의 단톡방에 부고가 떴다. 부친상이나 모친상이 아닌 ‘본인상’이라는 표현에 가슴이 덜컥했다. 대장암 투병 중이던 최영일 평론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로 수년 동안이나 함께 방송했던 인연이 있다.

그는 현실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해학과 품격을 잃지 않는 논객이었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바이크를 즐겨 타는 멋쟁이이기도 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소주를 마셔도, 와인바에서 샴페인을 마셔도 그의 해박한 지식과 푸근한 입담은 다른 안주를 이겼다.

그를 떠올리면 뿔테 안경 너머로 웃는 눈부터 생각나는데, 조문을 가니 바로 그 얼굴이 영정사진으로 인사하는 듯했다. ‘이 피디 왔어요?’ 영정사진을 보고 고였던 눈물은 어린 상주 앞에서 왈칵 쏟아졌다.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뚝뚝 흘려본 일이 얼마 만인지. 고인과의 인연을 제대로 말씀드리지도 못하고, 슬픔에 떠밀려 도망쳐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고된 삶의 무게를 견뎌야 했고 평론가라는 직업 때문에 늘 더러운 정치판을 논하면서도 그는 습관처럼 말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그렇게 살 만한 세상을 젊은 나이에 떠나야 했던 운명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영일 평론가가 세상을 떠나고 정확히 일주일 뒤, 또 다른 비보가 전해졌다. 이번에도 함께 방송했던 인연이 있는 이의 부고였다. 신사동 호랭이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이호양 작곡가. 그는 내가 연출했던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였는데 청취자들이 보내준 노랫말에 곡을 붙여 작곡하는 코너를 통해 실제 음원까지 내고 그 수익금을 보육원에 기부했던 특별한 기억이 있다. 재능도 에너지도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이제 갓 마흔을 넘은 나이에 죽음이라니….

하필 장례식장이 일주일 전 최영일 평론가와 같은 곳이었다. 트라우마가 생긴 건지, 집에서 가까운 거리이긴 한데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남긴 노래들을 들으며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그가 만든 노래는 대부분이 신나는 아이돌 음악이다. 노래 제목만 다 적어도 이 글이 끝날 것 같으니 중요한 몇곡만 소개해보겠다. 신사동 호랭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히트곡은 2009년에 처음 나왔다. 포미닛의 ‘핫이슈’, 그리고 티아라의 ‘보핍보핍’. 단박에 강렬한 인상을 남길 줄 아는 그의 재능이 남김없이 발휘된 곡들이다. 이듬해에도 비스트의 ‘쇼크’, 시크릿의 ‘매직’ 등 보이그룹, 걸그룹 가리지 않고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그의 최전성기는 2011년이었다. 포미닛의 ‘거울아 거울아’, 비스트의 ‘픽션’, 현아의 ‘버블팝’, 에이핑크의 ‘마이마이’로 가요계를 섭렵했다. 장현승과 김현아의 유닛 그룹 트러블 메이커의 ‘트러블 메이커’도 그의 작품이다. 그리고 블랙핑크가 나오기 전까지 내 최애 걸그룹이었던 티아라의 노래 ‘롤리폴리’도 그의 손에 의해 탄생한다. 적어도 2011년 한정 최고의 작곡가는 신사동 호랭이였다.

아마 그의 보름달은 2012년에 꽉 차올랐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엔’과 함께 비스트의 명곡이라고 할 만한 ‘미드나잇’을 내놓았고 드디어 직접 제작한 걸그룹을 데뷔시켰다. 역주행 히트의 전설로 유명한 ‘위아래’의 주인공 ‘이엑스아이디’(EXID)다. 작곡가에서 프로듀서이자 제작자로 활동 영역을 넓힌 그는 용준형을 비롯한 여러 신인 작곡가와도 일종의 사단을 형성해 곡을 만들어냈다.

최규성과 함께 만든 티아라의 노래 ‘러비더비’는 내가 망설임 없이 꼽는 신사동 호랭이 최고의 노래다. 어딘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선율에 그 시절 클럽을 휩쓸었던 셔플 리듬이 합쳐져 티아라의 매력을 폭발시켰다. 당시 연출했던 ‘컬투쇼’에 티아라를 자주 출연시켰던 탓에 작가들이 사심을 채운다며 비난하기도 했지만, 나는 당당하다 못해 뻔뻔했다. 최고의 프로그램에 최고의 걸그룹이 자주 나오는 게 무슨 문제냐고. 공개방송 무대에서 춤추는 티아라를 보며 나도 셔플 스텝을 따라 밟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

이 숱한 노래들을 즐겨 들었던 사람이 어디 나뿐일까? 우리에게 너무나 큰 기쁨을 선사해준 그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후에도 부침이 있긴 했으나 에일리의 ‘유앤아이’, 에이핑크의 ‘노노노’, 모모랜드의 ‘뿜뿜’ 등 히트곡이 여럿 있었고 ‘트라이비’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는데 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지. 유족 쪽에서 사인을 밝히지 않았으니 더 이상 억측도 삼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할 뿐.

시사를 논하던 평론가도 음악을 만들던 작곡가도 남은 우리가 너무 슬퍼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들이라면 그렇다. 대신 그들의 방송과 노래를 조금만 더 오래 기억해주자. 두분 모두 편히 쉬세요.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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