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빼앗는 敵? ‘이민자 때문에…’는 만들어진 공포

채민기 기자 2024. 3. 2. 04: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가 본 ‘이주에 대한 오해’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헤인 데 하스 지음|김희주 옮김|세종서적|512쪽|2만5000원

암스테르담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명된 2015년 저자가 참석했던 토론회에서 진행자가 청중을 향해 물었다. “이입(移入·이주를 받아들임)에 찬성하는 분? 아니면 반대하는 분?” 그 순간 깨달았다. “이주 논의를 찬성과 반대라는 틀에 가두면 의견 차이가 드러날 여지가 사라지며 ‘논의’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경제학자들에게 ‘경제에 찬성하느냐’고 묻지 않고 역사학자들에게 ‘역사에 반대하느냐’고 묻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의 이주 논의는 주로 찬반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이념에 따라 이주를 여러 문제의 해법 또는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양쪽 모두 완전한 오해일 때가 많다”는 저자가 찬반의 양극단을 넘어 이주의 본질을 추적했다. 원제 ‘How Migration Really Works’(이주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금은 정말 ‘이주의 시대’인가

이주를 둘러싼 대표적 오해를 제시하고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예컨대 ‘지금은 유례 없는 대규모 이주의 시대’라는 통념. 유엔 인구국 데이터에 따르면 1960년 9300만명이었던 전 세계 국제 이주자(최소 12개월간 모국 아닌 나라에 사는 사람)는 2017년 2억4700만명이 됐다.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세계 총인구에 대한 비율은 3%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바뀐 것은 규모가 아닌 인구의 국지적 이동 방향이다. 15세기 이후 식민지 개척, 신대륙 이주 등을 통해 인구를 이출(移出)해온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주의 목적지로 바뀐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속화되는 저출생·고령화를 이주로 해결한다는 생각도 “대단히 비현실적”이다. 이주의 규모가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이 1995~2050년 부양률(노인 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연평균 1080만명의 순이입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연간 순이입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일부 인력난을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노령화에 따른 구조적 인구 변천을 이주가 뒤바꿀 수는 없다.”

정치인들은 이런 오해를 이용하고 때론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이주민이 몰려온다는 불안감을 부추기고 자국민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지지를 호소한다. 이주민은 사회 통합을 해치는 외부의 적이나 침입자로 호명된다. 이들에 대한 차별도 문제지만 반대쪽에서 강조하는 ‘다문화’나 ‘관용’에도 위험이 숨어 있다. 1990~2000년대 서유럽 국가들은 튀르키예·모로코 출신 노동자 자녀들이 자국 언어와 문화를 배우도록 지원했다. 포용적인 듯한 이런 정책 뒤에는 이주민이 뿌리를 내리는 것을 막고 언젠가 자국으로 돌려보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다문화주의는 일종의 억압적 관용 또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주의)의 아류다.” 진정한 통합 정책은 영주권·시민권을 취득하기 쉽게 하는 것, 일자리를 찾고 사업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국, 이민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한국을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이주 전환기를 거친 국가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이민의 주요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단기간에 변모했다는 의미다. 한때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던 한국의 이입 인구는 1996년 14만9000명에서 2022년 180만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출생률이 세계 최저로 떨어지면서 이민청 설립 등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주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은 한국에서 그만큼 시급한 과제다.

저자는 막연한 공포감을 떨치고 이입국(移入國)이 된 현실을 직시하라고 강조한다. 그래야 논의를 위한 공간이 열리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서유럽 선진국들도 어느새 이입국이 됐다는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민자들을 언젠가 돌아갈 사람들로 취급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결과 차별과 소외가 사회 문제로 대두했다. 저자가 인용한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가 그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노동력을 원했는데 사람이 왔다.”

이 책은 이주의 사회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주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그 역사를 추적한 ‘이주하는 인류’(미래의창)와 함께 읽으면 이주라는 현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