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광어로 튀긴 바삭한 생선 프라이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2024. 3.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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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생선가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철산역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간밤의 여흥이 남아 있는 듯 차들이 이면 주차를 한 거리 곳곳에 전단이 날아 다녔다. 눈이 흩날리는 날이었다. 두꺼운 옷을 입은 공영 주차장 관리원은 바람을 피하려 건물 틈에 서서 차들이 오고 가는 것을 지켜봤다. 역 뒤로 선 상가 건물 전면에는 혹시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할 염려에 화려한 간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박가 일본요리점’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은 간판과 전단으로 뒤덮인 철산역 뒤편 상가 건물 4층에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궁금해졌다. 식당에 들어가자 나무로 짠 테이블과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는 종이등이 달렸고 곳곳에 일본어로 된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주인장은 콧수염을 예스럽게 길렀고 반백 머리는 짧게 밀었다. 손님을 보자 오랜 친구를 본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상호 그대로 이 집은 일본 요리를 전문으로 했다. 메뉴판에는 라면부터 돈가스, 회 모음과 초밥까지 일본 요리가 망라돼 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장은 재일 교포 출신이고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일본 주재원과 출장을 온 일본인들이 자주 들렀다고 했다. 가게 면면에서 느껴지는 이국적 분위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몸이 떨리는 날씨에 저절로 국물 요리에 눈이 갔다. 파기름 라면이 먼저 테이블에 올랐다. 고추기름과 파기름이 섞여 국물에 뜬 라면은 돼지고기나 죽순 같은 고명이 올라와 있지 않았다. 흔한 삶은 달걀도 없었다. 대신 곱게 썬 파와 밝게 빛나는 붉은색만 보였다.

경기 광명시 철산동 박가 일본요리점의 생선 프라이./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단정한 한 그릇은 이런저런 미사여구가 붙지 않았다. 국물을 먼저 들이켰다. 뜨겁게 매운맛이 아니었다. 대신 혓바닥을 잔잔하게 데우고 속을 뜨겁게 만드는 후끈한 기운이 올라왔다. 닭으로 뽑은 육수는 그 기운의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 국물의 기세가 사나우면 면은 온순한 편이 좋다. 부드럽게 삶은 면은 힘이 넘치는 국물 속에서 유영하듯 찰랑거렸다. 명사와 동사만으로 거친 산의 막막함과 세상 끝까지 펼쳐진 대양의 무자비함을 이야기하던 헤밍웨이의 문장이 이랬을까? 라면 한 그릇은 큰 칼 하나만 찬 사내처럼 단순하고 명료했다.

곧이어 나온 것은 야채 카레였다. 주인장과 단둘이 가게를 맡아 지키는 요리사가 카레를 내놓으며 말했다. “카레가 제일 힘들어요. 2시간 내내 냄비만 젓는다니까요.” 그는 카레를 만들 때 물 한 방울 섞지 않고 오로지 채소에서 뽑아낸 수분만 쓴다고 했다. 양파 같은 것을 냄비 가득 쌓고는 불을 세게 올리고 짙은 갈색으로 익어 녹아내릴 때까지 요리사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국자를 쉬지 않고 저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자연히 카레는 흔히 먹는 국물 같은 부류가 아니라 버터를 잔뜩 넣어 농도가 한껏 짙어진 프랑스 요리의 소스를 닮았다. 과일에서 우러난 상큼한 냄새가 카레를 밥 위에 퍼 담을 때마다 느껴졌다. 하얀 밥을 카레에 비벼 먹었다. 끈적한 정념 같기도 하고 뜨거운 불 앞에서 흘러내린 요리사의 체액 같기도 한 카레의 맛은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낼 때마다 다른 모습이 드러나는 마물(魔物)이었다. 크림과 버터, 토마토 등으로 맛을 낸 인도 커리와 달리 본래 해군이 먹기 위해 만들어진 카레 연원(淵源)처럼 그 속에는 젊은이의 함성과 무모함이 있었다.

곧이어 나온 것은 생선 프라이였다. 오래전 어느 유명한 돈가스 집에서 제품으로 된 냉동 생선가스를 쓰는 것을 보고 실망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 집은 생물 광어로 생선을 튀겼다. 그것도 2kg 이상이 되는 큰놈만 골라 썼다. 애초에 그 정도 크기가 아니면 튀김으로 낼 수가 없었다. 고급 양식당에 온 듯 커다란 접시 한 구석에는 씨겨자를 한 숟가락 놓았다. 고운 빵가루를 입혀 두꺼운 손가락 크기로 잘라 튀긴 생선 프라이에 상큼한 타르타르 소스를 묻히고 그 위에 씨겨자를 조금 올렸다. 하얀 광어의 속살은 씹을수록 단맛이 수줍게 배어나왔다. 그 살결에는 누군가를 무작정 좋아하던 풋내 나는 순정처럼 잡티가 하나도 없었다. 바삭한 생선 프라이를 중학생 사춘기 소년이라도 된 양 볼에 가득 넣고 우적거렸다. 주인장은 ‘잘 드셨냐’며 또 씨익 웃으며 접시를 받았다.

사연을 들으니 10년 전 굳이 철산동 건물 4층 한쪽 귀퉁이 칸을 분양받아 잘되던 가게를 옮겼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요리를 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은 대부분 거대하다. 돈, 명예 숫자와 글자로 남는 무엇. 그 후에 남는 것은 작다. 그 작은 것들은 이렇다. 꾸밈없는 웃음, 순수한 기쁨, 어릴 적 실컷 뜀박질을 하고 서로를 보며 웃는 듯 반짝이는 순간들.

#박가일본요리점: 야채 카레 1만1000원, 파라면 1만2000원, 생선 프라이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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