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은 나와 데이트하며 기분을 다스리는 작은 사치”

박돈규 기자 2024. 3.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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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만화 ‘와카코와 술’ 원작자 신큐 치에
일본 도쿄 근처 소도시의 거리에 있는 맨홀 뚜껑. 만화 '와카코와 술'의 주인공 와카코는 음식과 술이 조화를 이룰 때 “푸슈~” 하고 행복한 감탄사를 내뱉는다. /신큐 치에 SNS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성공한 먹방이다. 볼 때마다 침이 고이지만 옥에 티가 있다. 주인공 고로는 먹기는 잘 먹는데 마실 줄을 모른다. 실제로 술을 잘 못 하기 때문이다. 또 늘 외근 중에 식사를 하니 음주할 틈이 없다. 좋은 안주를 앞에 두고 우롱차를 마시는 그를 보며 냉장고에서 술을 꺼낸다.

그런데 만화 ‘와카코와 술’은 정반대다. ‘고독한 미식가’의 여성 버전이랄까. 주인공 와카코는 스물여섯 살 직장인. 술맛을 아는 혀를 타고난 그녀는 퇴근길에 늘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 풀 식당을 찾는다. ‘고독한 미식가’가 남긴 아쉬움과 갈증을 와카코가 당당히 해소하는 것을 보면서 한잔 더 마시게 된다.

“‘고독한 미식가’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만화를 시작할 땐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제 머릿속에선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드라마는 확실히 비슷한 것 같습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가 만두를 먹을 때, 와카코라면 마땅히 맥주를 마시겠다고 생각하지요.”

‘와카코와 술’ 한국어판이 최근 20권까지 번역돼 나왔다. 드라마 ‘와카코와 술’도 인기다. 20~40대 여성 팬이 특히 많다. 원작자 신큐 치에(新久千映·44)씨는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은 제가 음식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음악, 캐릭터, 화장품 등을 애용할 만큼 동경하는 나라”라며 “한국 사람들이 ‘와카코와 술’을 좋아해 주셔서 지금도 계속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만화 '와카코와 술'은 20권까지 번역돼 나왔다. 혼자 당당히 술을 마시는 회사원 무라사키 와카코의 술집 순례기다. /AK커뮤니케이션즈

◇와카코 캐릭터는 내 자화상

‘와카코와 술’의 신큐 치에는 1980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이 만화가는 얼굴은 공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신 “나를 닮은 와카코 캐릭터를 써달라”고 했다.

-모든 작품에는 씨앗이 있습니다. ‘와카코와 술’은 2011년 어떻게 탄생했나요.

“편집자와 술을 마시는 자리였습니다. ‘신큐씨는 정말 술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술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 보지 않겠습니까?’라고 그가 툭 던졌지요.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그때는 젊은 여자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이 드물었고, 지금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이에요. ‘그래, 혼자 마시는 여자 이야기를 재미나게 만들자’는 의욕이 솟았습니다.”

-와카코가 작가님과 닮았다고요?

“다양한 여자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 보았지만,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편집자가 ‘주인공 얼굴을 신큐씨의 자화상으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는 거예요. 그 말에 확 꽂혔습니다. 말수가 적은, 좀 특별한 주인공이 순식간에 완성됐지요.”

-만화 속 와카코는 늘 26세입니다. 늙지 않는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있습니까.

“연재가 시작될 무렵의 와카코는 저 자신의 젊고 미숙한 인간성을 반영하고 있었어요. 지금이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와카코는 원래 ‘26세라기보다 중년처럼 차분하고 좀 특이한 여자’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이에요. 복장은 젊은 사람들 패션을 참고해요. 딸을 보는 마음으로, 지금의 저는 입지 않지만 귀여운 옷을 입히곤 합니다.”

-혼자 마시는 술의 매력은 뭘까요.

“남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아요. 누군가와 마실 때는 이야기나 소통이 큰 즐거움 중 하나지만, 혼자라면 순전히 술과 요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하나하나 확인하듯이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양한 안주를 먹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요.”

-여자 혼자 술을 마시는 작품은 최초인데, 작가님과 와카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해주신다면.

“내성적인 면은 저와 똑같습니다. 노력은 하지만 저는 와카코만큼 긍정적이거나 관대하지는 않고요. ‘성인으로서 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상향을 그리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혼술’이라고 부르는데, 작가님도 혼술을 좋아하시나요? 얼마나 자주 하시나요?

“사실 ‘혼술’이라는 단어는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정말 좋아합니다. 집에 있으면 매일 마시고, 밖에서 하는 건 취재를 겸해 한 달에 몇 번이려나. 취재 때문에 가는 건지, 좋아해서 가는 건지, 경계가 헷갈립니다. 하하.”

만화 원작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 돼지갈비집을 방문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 그는 잘 먹지만 술을 마실 줄 모른다. /TV도쿄 캡처
만화 원작 드라마 '와카코와 술'에서 술을 마시는 주인공 와카코. /대원엔터테인먼트

◇술, 안주, 그리고 나

와카코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도 혼술을 즐긴다. 신큐 치에는 “외향적인 사람은 누군가와 어울릴 때 마음의 재충전이 되고,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에 재충전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작가님은 어느 쪽인가요?

“저는 확실하게 내성적인 편입니다. 가끔 여러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매우 즐겁고 일상의 양식이 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또는 아주 가까운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더 안정돼요.”

-음식과 술이 조화를 이룰 때 와카코는 “푸슈~” 하고 행복한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작가님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만화에 반영된 것이겠지요?

“아니요. 일본어로 술을 마신 후의 감탄사로 ‘푸하~’나 ‘우이~’ 등이 사용됩니다만, 평범하다고 생각해서 ‘푸슈’라고 해봤더니 편집자가 ‘이걸 매번 정해진 대사로 사용합시다’ 하셨어요. 그때는 ‘진짜 이게 괜찮은 건가?’ 생각했습니다. 어느덧 와카코의 정체성이 되었지요.”

-작가님은 어떤 술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즉흥적이지만, 지금 그 술에 곁들이고 싶은 안주라면?

“맥주부터 시작해 소주, 와인, 일본 술, 위스키 등 안주에 따라 뭐든지 마십니다. 요즘은 일 때문에 사용한 파르메산 치즈가 많이 남아 있어, 자주 채소와 함께 그릴에 구워 먹는데 질리지 않아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고요. ‘와카코와 술’ 한국판 드라마 스태프로부터 한국 소주를 선물받은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한국 안주가 있을 때 아껴 마셨어요.”

-직접 음미한 적이 있는 음식만 그린다고 들었습니다.

“맛을 모르면 잘 그릴 수 없으니까요.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은 해산물입니다. 물고기는 얼굴의 균형이나 지느러미의 위치가 조금만 다르면 다른 물고기가 되어버립니다. 조개류는 모양이 불규칙하고 무늬도 복잡해 여전히 어렵지요.”

-작가님이 거주하는 히로시마의 실제 가게들이 많이 등장하지요? 혹시 ‘저희 가게 좀 만화에 소개해달라’는 요청은 없었는지요.

“네.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늘 소재를 찾고 있으니까요. 평소에는 누가 추천한 가게에 가거나, 구글 지도로 가게를 찾곤 합니다. 전에는 목적 없이 걷다가 가게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체력이 부족해졌어요.”

-주량은 얼마나 되나요?

“보통 맥주를 한 잔 마신 후, 위에 나열한 술을 두세 잔 마십니다. 더 마시고 싶지만 건강을 위해 조절해요. 물론 더 마시게 되는 날도 있고요.”

만화 '와카코와 술'의 이미지. 뜨거운 음식에서 나오는 김, 온기를 잘 표현한다. /AK커뮤니케이션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돈가스, 임연수어 사시미, 두부 튀김 구이, 새우 마요네즈, 토마토 계란 볶음, 만두 튀김, 문어회, 고기 두부, 채소 튀김, 생강 절임, 정어리 통조림, 명란젓, 베이컨 에그…. 이 만화를 펼치면 음식의 파도가 밀려온다. 술 생각이 절로 난다.

-만화에 ‘진정한 요리 실력을 알기 위해서는 계란말이를 맛보라’고 하셨지요? 가장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술안주는 또 뭐가 있을까요?

“야채를 볶은 후 오므라이스를 자주 만들어 먹습니다. 한 번에 다양한 재료(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좋아요. 샐러드에 회나 햄을 얹은 간단한 안주는 가볍고 술이 잘 들어가지요.”

-와카코는 ‘오늘 밤은 나와 데이트할 예정’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와카코는 사람을 만날수록 기운이 나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한 뒤 리프레시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뜨거운 음식에서 나오는 김, 온기를 잘 표현하시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일 중요한 건 ‘식감’이에요. 생고기나 생선은 부드럽지만 가열하면 단단해집니다. 반면에 채소는 대부분 정반대예요. 날것일 때든 익었을 때든, 보는 것만으로 식감이 전해질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게의 디테일까지 그리려고 노력해요. 의자 모양도 가게에 따라 다르고, 깔끔한지 아니면 다양한 소품을 두는지 등 주인의 취향이 반영되거든요.”

-와카코의 혼술 같은 ‘작은 사치’가 있나요?

“저는 좀 좋은 옷을 사는 게 작은 사치예요. 하지만 역시 술과 맛있는 음식을 이길 만한 사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10대 시절에 깨달은 행복론이 이 작품의 뿌리’라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아가 그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내일도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밥이나 집, 삶의 기반이 있으면 못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그것을 유지하거나 더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 노력합니다. 그 감정조차 잃어버리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이렇게 작은 행복론을 가지면 삶을 긍정하면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만화가의 기쁨과 슬픔은 각각 무엇인가요.

“저는 ‘이 작품을 읽고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술은 마시지 못하지만 읽는 것만으로 즐겁다’ 같은 반응을 들을 때 보람을 느껴요. 제 만화가 누군가의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만화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만화가의 슬픔이라면 ‘좋은 이야기를 계속 그릴 수 있을까’ 늘 불안하다는 거예요. 위에서 말한 행복론으로 이겨내려고 합니다.”

묻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청하자 작가는 “한국 독자님들, 감사합니다”라며 덧붙였다. “저녁 식사에 술을 함께하면 하루에 한 번은 행복한 시간이 생겨요. 저는 술을 좋아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꼭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기분을 다스리는 나만의 방법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와카코와 술'의 원작자 신큐 치에가 조선일보 인터뷰를 위해 그린 자신의 모습 /AK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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