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양자경 앞서 80년 전에 그가 있었다 [포토]

곽윤섭 기자 2024. 3. 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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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공식 스틸 컷. 해티 맥다니엘, 올리비아 하빌랜드, 비비언 리(왼쪽부터). 위키피디아 공정이용

지구촌에선 하루에도 많은 일이 벌어진다. 2월 29일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 중 역사에 남은 몇 가지를 추렸다. 이 중 몇은 100년 후엔 잊힐 수 있겠고 또 몇은 그때까지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떤 하나의 사건은 그 자체로 종결되지 않고 그 후 세상에 많은 변화를 불러온다. 가끔 반사회적인 방향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준다.

1916년 2월 29일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U보트 지휘관들은 대서양에서 경고 없이 상선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로 인해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는 한 계기가 되었다.

1960년 이날, 토끼 복장을 한 웨이트리스가 등장하는 최초의 플레이보이 클럽이 시카고에 문을 열었다. 연쇄 살인범 리처드 라미레즈는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태어났다.

1968년 이날. 그래미상 수상식에서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가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1988년 이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와 사람들이 정부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활동에 대한 금지 조치에 항의하며 의회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투투 대주교를 체포했다.

1996년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전쟁 중 1425일 만에 보스니아 사라예보에 대한 포위 공격을 풀었다. 이는 현대사에서 수도에 대한 최장 포위 공격이었다.

2004년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후보에 올랐던 11개 아카데미상을 모두 받았다.

2020년 이날, 미국과 탈레반은 역사적인 평화 협정에 서명하며 거의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개입을 종식했다. 미국은 2021년 8월 마지막 병력을 철수했으며, 이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40년 2월 29일에는 배우 해티 맥다니엘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배우가 됐다. (남자 배우로는 1964년 시드니 포이티에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이 최초다)

해티 맥다니엘은 1926년부터 1929년까지 16개의 블루스 음반을 녹음했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활동했고, 미국 라디오에서 노래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기도 했다. 그는 3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이름이 올라간 것은 83편 뿐이다. 활동하던 내내 인종 차별을 겪었다. 애틀랜타에서 열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시사회는 백인 전용 극장에서 열렸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 클라크 게이블이 맥다니엘이 참석할 수 없으면 자신도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조지아주의 인종분리법 때문에 불발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오스카 시상식에서도 그는 행사장 한쪽에 마련된 분리된 테이블에 앉았다. 1952년 맥다니엘이 세상을 떴을 때 할리우드 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소원은 거절당했다. 당시 그 묘지는 백인만 이용할 수 있었다.

상을 받게 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미 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비비언 리가 차지한 스칼렛 오하라 배역만큼이나 치열해 당시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영화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가정부에게 배역을 맡겨 달라고 요청했다는 일화도 있다. 어쨌든 맥다니엘이 배역을 따냈다. 철없는 스칼렛 오하라(비비언 리)를 자주 꾸짖고 렛 버틀러(클라크 게이블)를 비웃는 가정부 역을 연기했고 흑인 배우로는 최초로 후보에도 올랐고 오스카도 따냈다. 그는 백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정부(마미) 캐릭터에 대해 “제 할머니도 영화 속 타라의 농장과 다르지 않은 농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배역을 잘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영화를 본 일부 백인들은 마미가 백인 주인들과 너무 친하게 나온다고 불만을 표출했고 일부 흑인들은 노예 제도를 찬양하는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씁쓸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흑인들은 차별과 고정관념을 깬 맥다니엘의 성취를 함께 기뻐했다. 1940년 2월 2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이며, 저를 수상자로 선정하신 여러분 한 분, 한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상은 저를 매우 겸손하게 만들어 주었고,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있어 항상 등불로 삼겠습니다. 저는 제 인종과 영화 산업에 항상 도움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맥다니엘의 수상 이후에도 차별은 계속됐다. 1991년 우피 골드버그가 여우조연상을 받기까지 50여년 동안 오스카는 흑인 여성을 외면했다.

2021년엔 윤여정이 오스카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말레이시아 배우 양쯔충(양자경·61)이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올해 시상식은 3월 10일 오후 4시(현지시각)에 열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스틸 컷.
해티 맥다니엘.
맥다니엘이 라디오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있는 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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