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쏠림·치솟는 티켓값…최고 성적에도 웃지 못하는 뮤지컬계

"단기적인 수요 증가가 작년 흥행 이끌어…호황 지속가능성 낮아"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최고의 성적을 받았지만, 성적표를 받아 든 학생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지난해 역대 최고 티켓 판매액 기록을 갈아치운 뮤지컬 시장의 이야기다.

1일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3년 총결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뮤지컬 관람권 판매액은 약 4천591억원으로 전년보다 8.0％ 늘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판매액을 공식 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최고액을 기록했다. 뮤지컬 티켓은 작년 공연시장 전체 판매액의 36.2％를 차지했다.

올해도 '알라딘', '하데스타운' 등 라이선스 대작과 '베르사유의 장미' 등 창작 뮤지컬 신작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제작사들은 좋은 성적이 나올지 우려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취재에 응한 제작사 관계자들은 작년과 같은 호실적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관측했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 대표는 "지난해 공연시장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숨은 요소가 있다"며 "앞으로 스타가 출연하거나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 아니라면 매출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EMK는 류정한, 옥주현, 신영숙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레베카'가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흥행을 거뒀다. 반면 내한 공연으로 기획한 '시스터 액트'는 이전 시즌보다 공연의 완성도 상향을 꾀했음에도 관객몰이에 실패했다.

엄 대표는 특정 배우가 출연하는 회차에 수요가 집중되는 '관객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여러 배우를 캐스팅해 'n차(반복) 관람'을 유도하는 전략이 통했지만, 이제는 확실한 스타가 없으면 관객의 지갑을 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작비와 인건비 상승 때문에 관람권 가격이 높아져 수요를 줄이는 것도 흥행의 걸림돌이다.

엄 대표는 "무대 준비 기간은 2배로 늘었고, 대극장 대관료는 2배 넘게 뛰고 있는 상황에서 티켓값 인상은 불가피하다. 물가가 떨어지지 않는 한 티켓값은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데스노트', '드라큘라' 등을 선보인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또한 뮤지컬계 호황이 이어질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신 대표는 "지난해 뮤지컬계가 최고 매출을 거둔 것은 맞지만 이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며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현상은 코로나19 유행으로 움츠러들었던 수요가 단기적으로 폭발한 결과"라고 말했다.

향후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성적을 유지하려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완성도 있는 신작이 자주 무대에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관객의 재관람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층을 확장하고 신규 관객이 유입되려면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극장 뮤지컬과 대학로 작품을 고루 선보였던 쇼노트 역시 시장의 분위기가 전처럼 활발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쇼노트 관계자는 "스테디셀러든, 신작이든 예상보다 잘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의 영향이 크다. 제작사는 비용이 오르는 만큼 티켓값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소비자는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장 전체의 흥행을 견인하는 대극장 공연 성적이 부진하다는 점도 악재다. 대학로 작품만큼 탄탄한 마니아층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티켓 가격이 10만원대 후반까지 오르며 수요가 위축됐다.

쇼노트 관계자는 "소극장의 경우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계속해서 창작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현재는 대극장 공연들이 더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제작사들은 신규 관객층을 끌어오고 '킬러 콘텐츠'를 발굴해 흥행을 이어갈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오디컴퍼니는 지난해 선보인 신작 '일 테노레'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며, '위대한 개츠비'로 브로드웨이 시장 공략에 나선다.

EMK는 창작 뮤지컬 '벤자민 버튼', '4월은 너의 거짓말'을 선보이고, 외국인 관객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엄 대표는 "외국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라 그들을 노린 전략이 필요하다"며 "자막 서비스를 비롯해 외국 관객을 유치할 방법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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