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박성수 부부 화가 유라시아 횡단 자동차 미술여행-19]

박현주 미술전문 2024. 3.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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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세상의 끝 호카곳,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리스본의 첫 번째 목적지는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바스쿠 다 가마의 성공적인 항해를 기념해 지어졌다. *재판매 및 DB 금지


[유라시아=뉴시스] 윤종석·박성수 부부화가 =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발해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했다. 꽤 먼 길이었다. 포르투갈에 들어오니 자연풍경이 정말 확 다르게 느껴졌다. 따뜻하고 온화한 바람이 불고 햇살은 넉넉했다. 풀들의 선명한 풀빛은 작고 약한 노란 들꽃들과 함께 어우러져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환상의 연둣빛 세상을 선물했다.

리스본의 첫 번째 목적지는 제로니무스 수도원(Mosteiro dos Jerónimos)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바스쿠 다 가마의 성공적인 항해를 기념해 지어졌고, 포르투갈의 부강했던 시절을 잘 반영하듯 웅장하고 화려했다. 대항해 시대에 바다로 나간 사람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했던 곳이다. 리스본 대지진 때에도 건재했던 수도원은 아직도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포르투갈 고유의 건축양식인 아름다운 마누엘(Manuelino) 양식의 수도원을 돌아본 후 가까운 현대미술관 MAC/CCB(Museum of Contemporary Art)로 향했다. 너무나 유명한 현대미술의 거장들 작품이 소장되어 있었고, 기획전으로 버린드 드 블렉커(Berlinde de Bruyckere) 벨기에 작가의 전시는 참으로 거대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작가의 무겁고 투박하지만 세련된 표현방식에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어떤 장식을 덜어낸 인간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을 만나는 듯했다.

현대미술관을 나오니 이미 리스본은 깜깜한 밤이었다. 리스본의 트램은 아주 오래전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리스본에서 아름다운 관광지를 제대로 돌아보고 싶은 관광객들에겐 트램 이용이 필수 코스다. 트램의 내부는 오래된 나무로 되어 있었고 세월의 옛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트램이 운행될 때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선 기사님이 직접 내려 철길의 방향을 긴 막대기로 바꿔준 후 다시 출발하는 장면은 영화 속 장면을 연상시킨다.

리스본 현대미술관 MAC(Museum of Contemporary Art)에는 너무나 유명한 현대미술의 거장들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정했던 호카곳(Cabo de Roca)이다. 대서양을 만나는 유럽대륙의 서쪽 끝이다. 우리는 2023년 5월에 자동차여행을 시작했고, 러시아를 가로질러 6월 에스토니아를 통해 유럽에 입국했다. 6월 27일에 유럽 최북단 노르웨이의 노르카프에 오르고, 7개월 만에 유럽의 최서단 포루투갈 호카곳에 가는 것이다.

그 전에 올 수도 있었지만 쉥겐조약으로 인해 90일을 불가리아, 루마니아, 북마케도니아, 몰도바, 그리고 튀르키예에서 보냈다. 그렇게 90일 후 그리스를 거쳐 다시 유럽 여행이 가능해졌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지나 포르투갈에 온 것이다. 여행의 준비는 5월 출발 전 2년을 넘게 준비했으니, 이번 여행에 3년 가까이 투자한 셈이다.

코로나와 러시아전쟁의 시작으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정한 곳이니 호카곳은 우리에게 아주 남다른 감회를 전해줄 수밖에 없겠다. 다음날 ‘집으로 가는 길의 시작이 될 곳’ 호카곳에 정말 도착했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마법 같은 경험의 종착지이다. 리스본의 흐렸던 하늘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저 멀리 바다의 띠를 두른 비구름 광경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모두가 호카곳의 의미를 아는지 행복한 얼굴이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전 유럽사람들은 호카곳을 ‘세상의 끝’이라 생각했다. 그런 의미를 표시해두듯 호카곳에는 높은 십자가 탑이 세워져 있다. 그 십자가 탑에는 유럽의 땅끝임을 알리는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 1524~1580)의 시 구절이 쓰여 있다.

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CAMOES)

“여기, 육지가 끝나는 곳이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라는 말이다. 여행의 목적지는 세계의 도시나 상징적 랜드마크가 될 수 있지만, 여행의 목적은 그것을 넘어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많은 시간과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충분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하룻밤 보내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재우고 다시 스페인을 향해 출발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소로야 미술관(Museo Sorolla)을 찾았다. 소로야라는 작가의 작업실과 집을 미술관으로 꾸민 것인데, 기대 이상의 미술관으로 너무 예쁘고 작품들도 좋았다. 인물화의 묘사 부분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붓 터치는 풍경화로 오면서 더 빛을 발하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계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다.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에는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Guernica)’가 있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이튿날엔 꿈에도 그리던 프라도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을 방문했다. 명성대로 관람객 줄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예약도 안 하고 용감하게 찾아간 우리는 멘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사이트에서 조금 비싸게 당일표를 구매해 우여곡절 끝에 미술관에 들어설 수 있었다.

프라도미술관에는 한국어 안내 책자도 있었다. 미술관은 0층부터 2층까지 좋은 기획전시 중이었다. 이 전시의 특징은 항상 작품의 앞면만 보아온 관람객들에게 작품의 뒷면까지 보여주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전시였다. 물감이 스민 자국들과 숨겨진 또 다른 그림들, 그리고 작품의 이력이나 작가의 서명들을 보며 ‘이것도 작품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신선했다.

3시간 정도 미술관 관람 이후, 예약해 놓은 플라멩코(flamenco) 공연을 봤다. 노래에 맞춰 힘차게 춤추는 플라멩코 공연은 스페인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을 제대로 만나는 훌륭한 프로그램임이다. 댄서들의 강렬한 춤사위에 맞춰 발을 구르는 구두의 박자 소리에 심장도 어느새 운율을 맞추고 있다.

멋진 공연 관람 이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로 갔다. 저녁 7시부터 미술관이 끝나는 9시까지 무료 관람이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 마음이야 똑같은지, 미술관을 한 바퀴 두를 정도로 줄이 길었다.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에 들어갔다. 총 4층으로 구성된 미술관은 기다린 보람을 선사했다. 더군다나 그곳에는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Guernica)’가 있었다. 에스파냐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이다. 그것으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은 충분했다.

내일은 또 어디로 갈까? 빌바오로 갈까? 아니면 다른 곳에 갈까? 생각하면 이뤄지는 마법에 걸린 탓에 다음 날 아침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빌바오미술관을 포기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여행은 점점 끝나가고 있었고 무언인가 좀 더 특별한 경험을 선택했다. 윤 작가 역시 여행 초기 기회가 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번 걸어보자고 다짐했으니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결정했으니, 우리가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찾아보자. 윤 작가는 산토도밍고 델라카사다에서 나헤라까지 걷는 코스가 아름다울 거라 했다. 코스까지 결정하고 칠공이 주차를 알아보며 출발했는데, 갑자기 칠공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경고등 메시지가 떴다. 우리는 급히 가까운 지역의 자동차 정비소로 향했지만, 그곳에선 해결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산토도밍고 델라카사다를 지나 나헤라까지 지나 로그로뇨라는 도시의 볼보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다.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부득이 근처 주차장에서 잔 뒤 다음 날 아침에야 점검받았다.

차량에 문제는 있었지만 당장 무엇을 해줄 수가 없다는 난감한 답변이다. 어쨌든 지금 운행은 괜찮다는 말에 위안 삼을 수밖에. 5일 안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해야 했고, 아직 1000km 이상이 남았다. 걱정은 됐지만, 일단 우리는 당장 프랑스로 향하는 것을 멈추고, 로느로뇨에서 나헤라까지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걷자! 걱정은 뒷주머니에 넣어두자! 칠공이를 24시간 주차장에 안전히 넣어두고 도시를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어떻게 순례자의 길은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근처 가톨릭 성당을 먼저 찾았고 정말 순례자로 보이는 낯선 여행자가 성당의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 순례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의미의 초를 켜고 기도했다. 그리고 순례자의 스탬프도 챙겨 찍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재판매 및 DB 금지

우리는 성당을 나와 도시를 나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노란 조개껍질 모양과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색 화살표 표지판을 발견했다. 성 산티아고가 순례길을 걸을 때 노란색 화살표 방향 표시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안내자가 되었다. 참 신기한 건 걷다가 조금 힘들 때쯤 다시 노란색 조개 모양과 화살표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길을 계속 걷게 하는 힘을 주는 것을 느꼈다. 그 많은 순례자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과연 마음의 평안을 찾았을까?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는 32km. 7시간을 걸어야 했다. 사실 우리는 3시간 정도 걷다가 돌아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 순례자의 길을 걷는 내내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buen camino(부농 카미노)”라는 인사를 듣게 되었다. 순례자끼리 인사로 “좋은 길 되세요!”라는 말이다. 말의 힘이었을까, 드디어 7시간을 걸어 나헤라에 도착했다. 고작 산티아고 순례길의 작은 한 마디를 걸었을 뿐인데도 무척 행복했다.

걷는 길마다 우리를 안내해준 노란 화살표와 순례자들이 만들어 놓은 십자가들이 우리를 응원했다. 나도 작은 나뭇가지로 나의 십자가를 만들어 그들 틈에 넣었다. 나의 욕심과 내게 남은 원망과 미움을 이 길에 놓고 가게 해주시길 바랐다. 그래서 마음의 평온이 나를 아는 모든 사람도 행복하게 하길 기도했다. 사랑하는 윤 작가와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같이 여행해주길 기도했다. 기도하고 기도하다 그렇게 나헤라에 도착했다. 순례자들의 숙소에서 저녁과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피로를 녹이며, 또 내일 다시 로그로뇨를 거쳐 프랑스로 갈 여정을 그려본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내내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buen camino(좋은 길 되세요!)”라는 인사를 받는다. 그 짧은 한마디로 7기간을 버티게 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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