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옷에 담긴 마음 [경기도박물관 이야기]

경기일보 2024. 3.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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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 수습 중 ‘염’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 경기도박물관 제공

 

“그래서 차례상에는 뭘 올려야 하니?” 설이 되면 매번 빠지지 않고 듣게 되는 질문이다.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으니, 남들보다는 잘 알겠거니 생각하는 것이다. 올해는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집안 어른을 위한 수의로 무엇을 골라야 하냐는 것이다. 삼베와 인견 중에 무엇이 더 법도에 맞느냐는 구체적인 물음까지 들으면 고민이 시작된다. 조선시대 예법은 지금과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 경기도박물관에 가면 조선시대 양반가의 상례(喪禮: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예법)에 어떤 옷이 사용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진행 중인 특별전 ‘오늘 뭐 입지?’는 청송 심씨 가문의 무덤에서 출토된 17세기 우리 옷을 소개하는 자리이다. 문신 심연(沈演, 1587-1646)과 그의 부인, 그리고 할머니의 무덤에서 200여 점의 복식이 좋은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전시에서는 이 중 47점을 골라 선보인다.

무덤에서 나온 옷들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삼베 수의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히려 비단을 사용한 화려한 옷이 많다. 망자가 생전에 입던 옷 중 좋은 것을 골라서 입힌 후 매장했기 때문이다. 때로 새 옷이나 다른 이의 옷가지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오늘날 수의의 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시신을 감싸는 용도로 쓰였던 당의와 장옷. 경기도박물관 제공

조선시대에는 상례가 엄격했고 그 절차도 매우 복잡했다. 송나라 학자 주희가 쓴 ‘가례(家禮)’는 사대부 집안의 ‘관혼상제(冠婚喪祭)’ 예법의 큰 기준이었다. 그중 상례 부분만을 추리고 조선의 풍속을 더해 만든 것이 ‘상례비요(喪禮備要)’와 같은 책이다. 16세기에 만들어진 이 책은 그림과 함께 상장례의 절차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뼈대 있는 양반 집안이라면 모두 한 권쯤 갖추고 필요할 때마다 봤을 법하다.

예법에 따르면 사람이 죽음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팔다리가 굳어버리기 전에 주물러 가지런히 두는 것이다. 한편 다른 이는 지붕에 올라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외치며 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절차를 ‘초혼(招魂)’이라고 부른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로 시작하는 소월의 시 제목이 여기서 온 것이다. 하늘로 날아가는 이름이 망자의 혼에 가 닿지 못하고 부서지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혼이 돌아오지 않아 죽음이 돌이킬 수 없어지면 먼저 망자의 몸을 깨끗하게 씻긴다. 이후 절차에 맞추어 좋은 옷을 골라 시신에 입히고 서늘한 곳에 모신다. 돌아가신 다음 날과 셋째 날에는 시신을 이불로 감싸는 ‘염(殮)’을 각각 한 차례 진행한다. 그 과정에서도 옷이 쓰이는데, 주로 다리 사이나 머리 아래 등의 빈 곳을 채우는 용도다.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심연의 경우 두 벌의 바지와 저고리, 그리고 7겹의 포(袍)를 겹쳐 입고 있었다. 40여 점의 옷가지가 ‘염’에 사용됐으며, 10여 점의 다른 옷이 시신과 관 사이의 공간을 단단히 메우는 역할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옷을 찢거나 말아서 밀어 넣기에 옷이 나뉘어 발견되는 일도 빈번하다. 결국 관 안을 망자의 옷이 가득 채우는 꼴이니, 지금의 수의나 장의 형식과는 차이가 크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은 마음이다. 먼저 떠난 가족을 그리며 가장 좋은 것을 드리려는 마음은 과거의 비단옷에도, 지금의 삼베 수의에도 담겨 있다. 여전히 우리는 중요한 순간에 전통을 돌아보며 거기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박물관의 이번 전시가 과거의 상례 형식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마음마저 관람객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정윤회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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