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엉터리 건곤감리···中 쇼핑플랫폼서 '태극기 수난'

채민석 기자 2024. 2. 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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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문양 뒤집히고 4괘 제멋대로
한국인들 "가성비 최고" 후기까지
브로치 제품은 500개 이상 팔려
짝퉁 태극기에 국내업체들 '휘청'
[서울경제]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3·1절, 광복절 등 국경일에 필수로 사용되는 태극기가 ‘수난 시대’를 겪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등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엉터리 태극기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는 탓이다.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소비자들이 해당 쇼핑 플랫폼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있어 자칫 태극기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이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중국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서 ‘태극기’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잘못된 모양의 태극기 관련 상품들이 다수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돼 있다. 태극 문양은 하단에 파란 색깔의 음(陰), 상단에 붉은 색깔의 양(陽)이 물결 모양을 이루며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4괘는 좌측 상단에는 세 줄 모양의 ‘건’, 우측 하단에는 여섯 줄 모양의 ‘곤’, 우측 상단에는 다섯 줄 모양의 ‘감’, 좌측 하단에는 네 줄 모양의 ‘리’가 각각 위치해 있다.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효(爻)의 조합으로 나타낸 것이다.

음양의 조화를 담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태극기지만 중국 쇼핑 플랫폼에서는 태극 문양이 뒤집히거나 건곤감리의 위치가 제멋대로 뒤바뀌어 의미가 퇴색된 형태의 태극기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테무에 론칭돼 있는 중국의 한 업체의 경우 ‘건’과 ‘곤’의 위치가 바뀐 모양의 태극기 자수 패치를 판매하고 있다. 이곳은 3000개 이상의 공급 업체 평점을 가지고 있을 만큼 판매량이 많은 업체다. 반면 함께 판매되고 있는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국기는 정상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또 다른 업체는 아예 태극기의 모양을 좌우로 뒤집은 형태의 태극기 브로치를 판매했다. 일반적인 깃발 형태의 상품의 경우 화면상으로 좌우가 반전돼 있어도 깃발을 뒤집어 사용하면 정상적인 형태로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당 상품은 브로치 형태라 뒤집힌 모양으로만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엉터리 태극기 브로치는 500개 이상 판매됐으며 외국인들도 다수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국기법에 의거한 일정한 규격에 맞춰야 하는 태극 문양의 지름, 괘의 길이 등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판매됐다.

엉터리 태극기 판매가 만연하면서 우리나라 사람조차도 건·곤 위치가 바뀌는 등 잘못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구매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심지어 ‘만족스럽다’거나 ‘활용도가 좋다’ ‘가성비가 최고라 추천한다’ 등의 구매 후기와 함께 별점 5점을 부여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일부는 사진을 찍어 후기를 남겼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와 같이 전 세계인들이 많이 찾는 쇼핑 플랫폼이 한 나라의 국기를 판매하는 데 있어 잘못된 디자인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소비자들을 기만한 행위”라며 “최소한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면 다른 나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국기와 관련된 부분은 정확히 확인하고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쇼핑몰을 중심으로 한 엉터리 태극기 판매가 또 다른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질 낮은 중국산 태극기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우리나라로 들어오다 보니 정작 우리나라 국기법에 의거, 규격에 맞는 태극기를 제작하는 국내 제조 업체들이 고사 상태에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수제 가정용 태극기를 만들어온 60대 A 씨는 “저가 중국산 제품이 들어오면서 수십·수백 곳에 달하던 국내 태극기 제조 업체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해 현재는 열 곳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며 “우리 업체의 경우 10년 전까지만 해도 1년에 20만 개씩 판매됐는데 지난해에는 판매량이 5만 개에 그쳤다”고 말했다.

한편 테무 측은 엉터리 태극기 판매 사실이 알려지자 “문제가 된 ‘태극기 자수 패치’ 상품을 즉각 판매목록에서 제외시켰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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