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기생이 앞서서 형세 자못 불온”…1919년 3월19일

최상원 기자 2024. 2. 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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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기록으로 살펴보는 독립운동 전시회’
경상남도기록원은 3·1절 105주년을 맞아 기획전시회 ‘독립의 길, 기록으로 꽃 피우다’를 연다. 경상남도기록원 제공

“진주는 지금도 오히려 진정이 안 되고 자꾸 소요가 일어날 형세가 있는데, 19일은 진주 기생의 한 떼가 구 한국 국기를 휘두르고 이에 참가한 노소 여자가 많이 뒤를 따라 진행하였으나, 주모자 여섯명의 검속으로 해산되었는데, 지금 불온한 기세가 진주에 충만하여 각처에 모여있다더라.”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는 1919년 3월25일 ‘진주 기생이 앞서서 형세 자못 불온’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매일신보는 또 1919년 4월22일 ‘통도사에 임검 유력한 증거를 압수’ 기사에서 “지난번 밀양군에 있는 표충사의 승려가 근처 농민을 선동하여 시위운동 개시하고 해산시키는 헌병을 부상하게 하였으며 또 헌병 주재소에 돌을 던져 폭행을 하였음으로 그 후 신속히 선동 승려를 검거하였던바 화야내 헌병소장은 4일 양산 통도사를 임검하여 유력한 증거물건을 압수하였다더라”라고 보도했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경남에서도 만세운동이 끈질기게 이어졌고, 기생·승려 등 신분과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경상남도기록원은 29일 “3·1절 105주년을 맞아 경남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를 기록으로 살펴보는 기획전시회 ‘독립의 길, 기록으로 꽃 피우다’를 3월1~29일 연다”고 밝혔다. 전시회는 3·1운동과 경남, 3·1운동 이후의 경남, 경남의 독립운동가, 경남독립운동소사, 독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 5개 주제로 구성된다.

‘3·1운동과 경남’은 언론보도·판결문 등 1919년 경남에서 일어난 만세운동과 독립운동가 관련 기록을 전시한다. 당시 기록을 종합하면 경남에는 173차례 시위가 일어났고, 참가 인원은 10만명에 이르렀다. 시위 참가자 81명이 숨지고, 233명이 다쳤으며, 745명이 잡혀갔다. 3월18일 진주읍의거에는 3만여명이 참가했고, 4월3일 창원 삼진의거에서는 8명이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4월2일 통영의거에서는 기생 33명이 소복을 입고 참가하기도 했다.

‘3·1운동 이후의 경남’은 파리장서운동·의열단 등 3·1운동 이후 경남 사람들의 독립운동 활동에 관한 기록을 전시한다. 파리장서운동은 3·1운동 이후 유림들이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사건인데,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명 가운데 경남 유림이 41명에 이르렀다. 의열단은 1920년 12월17일 밀양경찰서를 폭파하는 등 무장투쟁을 벌인 대표적 조직인데, 창립 조직원 17명 가운데 경남 출신이 김원봉 등 9명이었다.

‘경남의 독립운동가’는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을 지낸 윤현진 등 경남 출신 독립운동가 9명의 활동에 관한 기록을 전시한다.

‘경남독립운동소사’는 독립운동가 변상태의 아들인 변지섭 선생이 1966년 완성한 ‘경남독립운동소사(상)’의 초안과 원본을 전시한다. 창원 삼진의거를 주도했던 독립운동가인 변상태는 경남에서 일어난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를 3년에 걸쳐서 수집했고, 아들인 변지섭 선생은 이를 이어받아서 ‘경남독립운동소사(상)’을 완성했다. 책은 경남 42곳에서 일어난 의거와 애국지사 29명을 소개하고 있다.

‘독립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청년독립회 단원으로 활동했던 고 오경팔 선생의 증언을 2019년 경상남도기록원이 구술채록한 동영상을 전시한다. ‘청년독립회’는 1942년 7월 청년 10명이 만든 독립운동단체이다. 청년독립회는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펼쳤고, 조선독립만세라고 적힌 벽보를 곳곳에 붙인 이른바 ‘창원만세사건’ 등을 주도했다. 단원들은 1944년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다음해 해방 때까지 수감됐고, 이들 가운데 2명은 고문후유증으로 숨졌다.

전시회는 3월1일 3·1절 기념식이 열리는 경남도청 대강당에서 열리고, 4일부터 29일까지는 경상남도기록원으로 장소를 옮겨서 이어진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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