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지원책 무력화시킨…SGI의 ‘공문 한 장’
예외 없이 배당 요구해야
SGI 공문에 은행들 ‘채권신고’
‘20년 분할 상환’ 지원 못 받고
‘셀프 낙찰’·상계 처리 불가능
SGI는 “적법 권리 행사” 주장
전세사기 피해자 A씨는 지난 14일 열린 경매에서 피해 주택을 울며 겨자 먹기로 ‘셀프 낙찰’을 받았다. 사기로 떼인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셀프 낙찰’이 사실상 유일했다. A씨는 입찰과 동시에 ‘상계신청서’도 법원에 제출했다. 2억원에 주택을 낙찰받는 대신 전세 보증금 2억2000만원을 돌려받을 권리는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이 경우 A씨가 주택 낙찰을 위해 추가로 내야 할 돈은 없다. 남은 전세대출금 1억7000만원은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에 따라 20년간 무이자로 분할상환할 수 있다.
한숨 돌린 줄 알았던 A씨는 최근 다시 위기를 겪고 있다. 낙찰 일주일 후, 전세대출을 해준 은행이 ‘채권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은행이 경매를 통해 전세대출금을 되돌려받을 권리가 있다고 법원에 알린 것이다.
이 경우 전세보증금과 낙찰대금을 상계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씨는 낙찰금 전액인 2억원을 현금으로 법원에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출금 20년 분할상환이라는 전세사기 피해지원법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A씨는 “낙찰 이후 은행에서 채권신고가 들어왔고 상계처리가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이로 인해 결혼도 미뤄지고 삶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28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는 지난해 12월 서울보증보험(SGI)이 각 은행권에 내려보낸 공문 때문에 벌어진 일로 확인됐다. 임차인의 피해 주택 ‘셀프 낙찰’과 전세대출 ‘20년 무이자 분할상환’은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의 큰 골자인데, SGI의 공문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낙찰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해당 공문에는 “은행은 임차주택이 경공매에 넘어간 사실을 인지한 경우, 전세사기 피해주택인 경우에도 예외 없이 배당기일까지 배당요구를 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전세보증금만큼의 질권(돈을 받을 권리)을 설정해둔 은행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음을 알고도 전세대출금을 돌려달라(배당)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이를 ‘금융기관 업무과실로 발생한 손해’로 간주해 보상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주택을 담보로 잡는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전세대출은 SGI 같은 보증기관이 발급한 보증서를 담보로 대출이 이뤄진다. 만약 임차인이 전세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한다면, SGI가 은행을 대신해 ‘대위변제’를 해주게 된다. 은행이 경매를 통해 보증금 전액을 회수할 수 있는데도 배당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은행의 회수노력 소홀이므로 대위변제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 SGI의 입장이다.
이에 일선 은행들이 전세사기 피해주택에도 채권신고를 하는 사례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인 단체카톡방에는 “서울보증보험 대출을 받았는데 곧 낙찰이라 막막하다” “채권신고가 들어오면 어떻게 되느냐”는 문의글이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SGI 관계자는 “은행의 배당 요구는 공문 발송 전에도 당연히 필요한 절차였는데, 배당 요구 누락 사례가 발생하여 이를 예방하기 위한 안내 차원에서 공문을 발송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전세사기 주거안정 방안에서도 대출금 20년 분할상환은 경·공매 이후 상환하지 못한 전세대출 잔여채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주택을 경매에서 낙찰받을 경우 디딤돌대출, 특례보금자리론 등 금융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거액의 낙찰대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의 높은 문턱 때문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전용 디딤돌대출은 연 7000만원이라는 소득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보금자리론은 주택이 아닌 오피스텔인 경우 신청할 수 없다. 전세사기를 당한 후 청약에 당첨됐거나 주택을 매입한 ‘유주택자’도 신청이 불가능하다.
SGI가 피해자들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업무처리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는 낙찰받은 주택이 있기 때문에 이에 근저당을 설정하는 방식 등으로 채권 회수가 가능하다”면서도 “굳이 경매 단계에서 전액 현금 회수를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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