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혼자서 즐기기에 더욱 찬란한 고대산의 노을!

글 서현우 기자 사진 김종연 기자 2024. 2. 2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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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특집ㅣ혼산] 고대산 르포
남한 최북단의 북녘땅 전망대…신탄리역 기점 원점회귀 산행
노을을 배경으로 선 정현주씨.

'혼산(1인 등산)'이 대세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은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2020년 2월 1일부터 5월 15일과 2019년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게시된 문서 총 19억6,065만2,389건을 비교 분석한 결과 '혼산', '등산'의 언급량이 25%가량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사람들이 주로 찾은 산행지는 서울 근교에 밀집해 있었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등산을 키워드로 연관어 분석을 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등산지는 인왕산(363%, 이하 전년 대비 언급량 증가), 북한산(243%), 아차산(215%), 개웅산(165%), 용마산(150%), 노고산(145%), 도봉산(123%) 순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대중교통편이 잘 마련돼 있어 혼자 산행하기 수월한 곳들이다.

들머리에 조성된 고대산자연휴양림. 지난 2017년 문을 연 고대산자연휴양림은 접경지역 특유의 맑고 고요한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숲속의집 13동, 산림휴양관 1동 6실, 숲속수련원 1동, 야영장 20개소, 공중화장실 및 취사장 1동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교 산들은 워낙 인기가 많아 수많은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혼자 산행하러 왔다가 도리어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에 갇히는 불상사가 생기기 일쑤다. 코로나19 감염 염려 없이 '혼자 산행'을 넘어 '혼자 산을 즐기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외진 곳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산으로는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의 경계에 솟아 있는 고대산高臺山(832m)을 꼽을 수 있다. 등산이 허용된 산 중 민통선에서 제일 가까운 산이다. 거리는 멀지만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기존에 운행하던 경원선은 2019년 4월부터 시작된 전철화 공사로 임시 중단된 상태지만, 올해 4월부터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와 신탄리역을 오가는 대체운송버스(G2001번)가 운행을 시작해 다시금 대중교통으로 찾기 좋아졌다.

고대산 등산로는 이정표가 잘돼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적다.

특히 고대산 북쪽과 서쪽 일대에 그보다 높은 산이 없어 정상에서 아리따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을을 보기 위해 늦은 시간에 등산을 시작하면 제대로 된 혼산을 더욱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아웃도어 인플루언서 정현주(@joo.stagramm)씨와 함께 오후 3시에 고대산을 찾았다.

혼산은 남에게 의지할 수 없는 만큼 산행 전은 물론 산행 도중에도 틈틈이 지도를 보며 자신의 위치와 목표 지점을 확인해야 한다.

혼산 시엔 장비 최소화해야

고대산을 오르는 코스는 총 3개가 있으며, 모두 고대산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한다. 1코스는 큰골과 문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며, 2코스는 말등바위와 칼바위를 따라 정상으로 향한다. 3코스는 표범폭포를 지나 정상으로 연결된다. 3개 코스 모두 적재적소에 이정표와 울타리, 로프 등이 설치돼 있어 길 찾기도 어렵지 않고 위험한 곳도 적다. 하지만 오르막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산행은 아니다.

가장 인기 있는 산길은 경치가 화려한 2코스로 올라 3코스로 내려서는 경로다. 총 5.7km에 3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백패커들이나 산 정상에서 노을을 본 뒤 야간산행으로 하산하는 등산객들은 1코스를 하산로로 택하는 편이다. 상대적으로 길이도 짧고, 험하지 않은 편이라 안전하기 때문이다.

오직 자연과 나만 존재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혼산의 매력이다.

"노을산행은 딱 한 번, 인왕산에서 해봤어요. 도시 너머로 가라앉는 일몰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자연 속에서 맞을 일몰도 무척 기대돼요."

취재에 동행한 정현주씨는 현직 필라테스 강사. 필라테스가 실내 운동이다 보니 대표적인 야외 운동인 등산을 함께 즐기게 됐다고 한다. 산행은 대학교 여행 동아리에서 처음 시작했고, 이때 곱게 계절을 입은 산의 모습에 반해 졸업 후에도 계속 산을 찾았다고 한다.

"혼산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산행은 같이 간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가 더 컸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산행이 일상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자 고요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즐거움이 되면서 조금씩 혼산에도 관심을 가지던 차에 이번에 함께하게 됐어요."

촬영 포인트인 말등바위.

산행을 시작하기 전, 장비를 점검한다. 가급적 배낭을 가볍게 만들기 위해 캠핑의자 같은 꼭 필요하지 않은 부수기재는 모두 내려놓고 식량과 물, 필수안전장비만 배낭에 담았다. 물은 개인차에 따라 평소 산행에 비해 조금 더 넉넉히 챙겼다. 혼산은 남을 챙기거나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또 나를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따라서 안전장비는 더 철저히 갖춰야 하며, 대체 가능하거나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장비는 최소화해야 한다.

등산화는 필수다. 최근 늘어난 혼산 인구 중에는 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적어 등산화도 신지 않는 경우가 있다.

말등바위·칼바위 전망 탁월

준비 운동을 마치고 고대산자연휴양림 캠핑장 오른편에 위치한 2코스로 산에 든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빽빽한 신갈나무숲이 금세 온몸을 감싸온다. 처음엔 비교적 완만한 경사였으나 데크계단이 나타나며 점점 경사가 심해진다. 가쁜 숨 내쉬며 오르면 노송과 어우러진 말의 등걸을 닮았다는 말등바위가 나타난다. 잠시 한숨 돌리며 멋진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인트다.

말등바위부터 본격적으로 빠듯한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재기발랄하게 오가던 대화는 어느덧 침묵으로 바뀌고 터벅터벅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울려 퍼진다. 잡념 없이 오로지 다음에 어딜 밟고 오를 것인지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당일 혼산은 식량을 과도하게 챙길 필요가 없다. 남은 음식은 결국 쓰레기가 되기 일쑤다.
등산스틱은 무릎을 보호하고 체력 온존을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등산 장비다. 정현주씨는 블랙야크 제품을 선호하며, 틈틈이 100명산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한 시간가량 오르자 나무데크로 된 칼바위전망대를 만난다. 위로는 산등성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고대산 정상과 정상으로 이어지는 대광봉이 모습을 드러내고, 아래로는 드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진다. 흘렸던 땀을 보상받고, 앞으로 흘릴 땀에 대한 보상도 기대하게 만드는 경치다.

칼바위에선 드넓은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의 안내판에는 고대산 지명의 유래가 적혀 있다. 일설에 의하면 고대산은 큰고래(방고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방고래란 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는 고랑을 일컫는 말로 고대산의 골이 이만큼 깊고 높다는 뜻이다. 또한 일부 옛 지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는 의미가 담긴 '고태高台'라고도 표기됐다고 한다.

2코스에서 가장 아찔하면서도 환상적인 경치를 맛볼 수 있는 칼바위.

올라갈수록 바위가 늘어난다. 길 양옆에 있던 신갈나무는 점차 소나무로 바뀌어간다. 칼바위에 닿으면 주변의 나무들이 한껏 고개를 낮춰줘 시원한 경치를 맛볼 수 있다. 칼바위를 넘어선 뒤에도 끝없이 오르막이 이어진다. 언제쯤 오르막이 끝날까란 생각이 들 무렵, '고대정'이란 이름의 정자가 들어서 있는 대광봉(810m)이 나타난다. 정자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정상부를 바라보자 얼핏 정상 데크의 모서리가 보인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삼각봉(815m)을 지나 산책하듯 걷다 보면 널찍한 데크가 들어서 있는 고대산 정상이다.

고대산 정상석.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는 정상에선 북녘 땅이 넘보일 정도로 장쾌한 조망이 펼쳐진다. 남동쪽으로 궁예가 주산으로 삼지 않아 태봉이 빨리 망했다는 속설이 전하는 금학산이 솟아 있고, 북동쪽 철원평야 너머로는 김일성고지, 피의능선이 보인다. 정북쪽으로는 6.25전쟁 당시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뀔 정도로 혈전을 벌였다는 백마고지가 볼록 솟아 있다. 어디까지가 남한이고 어디가 북한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일몰시간이 남아 드넓은 데크에 앉아 간단히 요기를 하며 해가 더 가라앉길 기다린다. 노랗던 태양은 점차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온 누리에 후광을 떨친다. 정씨는 "마치 수평선으로 지는 노을처럼 선명하다"며 감동에 젖는다. 홀로 바라보기에 석양의 찬란함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어느덧 태양은 지평선 아래로 몸을 감추고 고대산의 깊은 골짜기마다 어둠이 스며들 때쯤 헤드랜턴의 불빛을 드리우며 귀로에 접어든다.

대광봉에는 '고대정'이란 이름의 팔각정이 들어서 있다.

교통&노을 산행 Tip

서울에서 고대산으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G2001번 버스뿐이다.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에서는 오전 6시 30분, 신탄리역에서는 오전 4시 30분에 첫차가 출발해 30~60분 배차간격으로 1일 23회 운행한다. 신탄리역에서 도봉산역광역환승센터로 돌아오는 막차는 평일 22시 30분, 주말 및 공휴일엔 21시 30분에 운행한다. 정상에서 1코스로 빠른 걸음으로 하산할 경우 신탄리역까지 약 1시간 30분, 평균적인 속도로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므로 노을 산행을 할 경우 빠른 하산에 자신이 없다면 대광봉에서 노을을 보거나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일찍 하산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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