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언어학자, 김수경 평전

이유진 기자 2024. 2. 2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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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인류학자 이타가키 류타의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남북한 통틀어 20세기 최고의 국어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이가 바로 김수경(1918~2000)이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푸른역사 펴냄)은 격동의 한반도에서 태어나 10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폴리글롯’(다언어 사용자)으로 앎을 추구하며 살다 간 언어 천재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학술적 성취를 세심하게 공들여 보여준다.

김수경은 만 27살까지 그리스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습득했다. 서울 경성제대 본과에 진학하며 언어학에 뜻을 뒀고 이후 일본 도쿄제대 대학원을 다녔다. 해방 직후엔 좌파 지식인 인맥 속에 활동하면서 과학적·실증적 ‘조선 언어학’을 지향했다. 1946년 여러 대학을 통폐합하고 서울대학교를 창립하는 과정에서 좌파 교원이 배제되는 등 갈등이 고조되자, 파동 속에 휘말리던 김수경은 김일성의 위촉장을 받아 38선을 넘어 몰래 입북했다. 28살 때의 일이다.

김일성대학 문학부 교원으로 임명된 김수경은 20여 년간 북한 언어 정책의 설계자로 활동했다. 현행 북한 철자법의 기초가 된 ‘조선어 철자법’ 초안을 만들었고, 중국과 일본 동포에게까지 교육된 <조선어 문법>을 집필했다. 그는 ‘노동/로동’ ‘여자/녀자’ ‘유씨/류씨’ 같은 남북 언어 규범의 가장 큰 차이인 두음법칙을 놓고, 이 법칙을 폐지하는 일이 언어생활에 유익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명백히 했다. 이를테면 ‘Roma’는 왜 ‘노마’가 아닌 ‘로마’로 적는가? ‘Latin語’는 왜 ‘나틴어’가 아닌 ‘라틴어’로 표기하는가? “같은 어원, 같은 의미의 음은 언제나 같은 문자로써 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론을 펼쳤다.

저자 이타가키 류타 일본 도시샤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경북 상주 지역에서 식민지 조선의 사회 변화를 살핀 민족지 연구로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개인의 일기를 포함한 여러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아무리 평범한 인물이라도 그 특정인의 경험으로 폭넓은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한국 근현대사, 식민주의와 근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연구했고 국가주의·식민주의·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에도 참여했다.

식민지기, 해방, 열전 그리고 냉전까지 아우른 독보적인 천재 학자의 삶을 중심에 놓고 생애사, 학문사, 언어사, 한반도사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은 책이다. 금기시됐던 월북 지식인에 관한 극적인 평전을 넘어, 동아시아사와 세계사에 새롭고도 중층적인 지식을 편입하려는, 격이 다른 연구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사랑하는 일이 인간의 일이라면

설하한 지음, 봄날의책 펴냄, 1만3천원

시인 설하한의 첫 시집. 임지훈 평론가는 그의 시를 “조각난 마음을 지닌 사람의 기록”이라 말한다. “사랑하는 일이 인간의 일이라면/ 부서지는 일 역시 인간의 일일 텐데”라는 깨달음은 사는 내내 반복되는 상실을 예고하지만, “우리가 우는 소리는 같다”는 통찰로도 이어진다. 표지 그림(장주 작가의 <유령들>)과 시가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한국 요약 금지

콜린 마샬 지음, 어크로스 펴냄, 1만7천원

김치의 나라, 삼성의 나라, 자살의 나라, 방탄소년단(BTS)의 나라. 이 말들은 한국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의 한국 설명서.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한국인에게 던지는 질문, 한국식 영어 사용법, 한국기행 실전 편 등 어느 미국 저널리스트의 ‘지금 한국’ 읽기.

포천

이지상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2만2천원

한반도의 중원, 경기도 포천의 25곳을 골라 그 지역 사람과 장소에 관해 이야기를 건네는 인문지리지. 산정호수와 백운계곡, 이동 포천 막걸리, 울미마을 연꽃, 한탄강 꽃정원, 명성산 억새밭, 화적연, 금수정, 채산사, 무란마을 등에 얽힌 문화와 역사를 소개한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작가 이지상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썼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입는다

올든 위커 지음, 김은령 옮김, 부키 펴냄, 2만원

옷이 몸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해치고 있다면? 저널리스트이자 지속 가능한 패션 전문가인 저자는 2조5천억달러 규모의 세계 패션업계가 옷의 유독성 문제를 회피해왔다고 주장한다. 옷은 생산부터 배송까지 전 과정에서 유해물질을 포함할 수 있고, 우리 몸속에서 내분비 교란, 통증, 알레르기,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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