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32주 전 태아 성별 고지 금지' 의료법 조항 위헌(종합)

CBS노컷뉴스 김승모 기자 2024. 2. 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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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반대 "헌법불합치 해야"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에 제한…침해 최소성 위반"
"해당 조항, 행위규제규범으로 기능 잃고 이미 사문화"
이종석·이은애·김형두 재판관, '헌법불합치'…반대 의견
"태아 생명보호 수단, 대안 없이 한 번에 폐지하는 결과"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을 금지한 현행 의료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과거 남자아이를 중시하던 '남아선호' 사상이 쇠퇴하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양성평등 의식이 자리 잡는 등 시대 변화를 고려한 취지다.  

헌재는 28일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나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면서 알게 된 태아의 성(性)을 임부나 임부의 가족, 그 밖의 다른 사람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의료법은 의료인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리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과거 남아선호 사상과 결부돼 태아의 성을 선별해 출산하고 여아 낙태를 막기 위한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2008년 7월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이 의사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고 임부나 가족의 태아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보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2009년 12월 의료법은 헌재 결정 취지를 반영해 임신 32주가 지나면 성별을 고지할 수 있도록 대체 법안이 마련됐다.

헌재는 "사회적 변화를 고려할 때 해당 조항이 임신 32주 이전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태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보고, 태아의 생명을 박탈하는 낙태 행위의 전 단계로 취급해 이를 제한하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의료인이 초음파로 태아의 성감별이 가능한 최소 임신주수인 16주를 기준으로는 97.7%, 고위험군 산모로 산전 기형아 검사를 해 태아의 유전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 임신주수인 10주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89.8%가 그 이전에 인공임신중절을 한 것으로 나타나 90% 이상은 태아의 성별을 모른 채 인공임신중절을 했다'는 내용의 보건복지부의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도 참고했다.

헌재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태아의 성별과 낙태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해당 조항을 위반해 검찰 고발이나 송치된 건수 및 기소 건수는 10년간 한 건도 없다"며 "이는 해당 조항이 행위규제규범으로서 기능을 잃었고 사문화됐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해당 조항은 낙태를 유발한다는 인과관계조차 명확지 않은 태아의 성별고지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성별을 이유로 낙태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이 단지 태아의 성별 정보를 알고 싶을 뿐인 부모에게 임신 32주 이전에는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며 "이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이거나 적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입법수단으로서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태아의 성별 고지를 제한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고, 부모가 태아의 성별 정보에 대한 접근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를 필요 이상으로 제약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종석, 이은애, 김형두 재판관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에 대한 고지를 금지하면 성별을 이유로 하는 낙태를 예방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며 "해당 조항은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면서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우리나라는 전통 유교 사회의 영향인 남아선호 사상이 상당히 쇠퇴했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고, 남아선호로 한정 짓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의 성별에 대한 선호가 있다"며 "출산기피 풍조가 만연하고 낙태죄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상황에서 만약 태아의 성별고지에 대한 제한이 사라지면 성별 선호에 따른 자녀 계획이 인공임신중절의 이유가 될 가능성은 있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위헌 결정하는 것은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수단을 대안 없이 한꺼번에 폐지하는 결과가 되므로 타당하지 않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해 입법자에게 낙태죄에 관한 형법 개정안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태아의 성별고지 제한 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개선 입법을 하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청구인들은 의료법 조항 때문에 헌법 제10조로 보호되는 부모의 태아 성별 정보 접근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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