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주총 때문에 왔어요”…집에 찾아온 ‘이 남자’ 정체 논란
고려아연 주주인 주부 A씨는 최근 남편이 출근한 사이 집을 방문한 한 남자에 대해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이 남자는 주총에서 의결권을 대리하는 사람이라고 밝혔으며 고려아연 관련이니 의결권을 위임해주면 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연히 그를 고려아연 측 직원이라고 생각했던 A씨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고려아연에서 나온 직원이 아니라 영풍에서 나온 사람이었다”며 황당해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집으로 방문한 직원이 내민 명함이 문제였다. 영풍 측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를 대리하는 업체 소속 직원이었음에도 명함에는 고려아연 사명이 버젓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내달 19일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장형진 영풍 고문 측 사이 갈등이 점점 격화하고 있다.
고려아연과 영풍은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75년간 동업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현재 영풍은 고려아연의 배당안과 정관변경안건을 두고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며 표대결을 예고한 상황이다.
영풍은 지난 23일 “고려아연은 보통주 5000원의 현금배당을 제안했으나, 영풍은 작년과 같은 수준의 이익배당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통주 1주당 1만원을 배당하는 내용의 수정동의 안건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결권을 영풍 측에 위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고려아연과 영풍이 가지고 있는 고려아연 지분 차이는 1% 포인트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주총 때 표 대결이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영풍이 일부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장을 받는 과정에서 오해의 빌미를 제공해 문제다.
영풍의 권유업무 대리인인 케이디엠메가홀딩스는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의결권 위임 요청을 하며 ‘고려아연 주식회사’란 사명이 적힌 명함을 전달했다.
해당 명함에는 ‘최대주주 주식회사 영풍’이란 글씨가 병기돼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고려아연 주식회사란 사명이 훨씬 크게 적혀있다. 고려아연 측 직원의 명함이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는 게 주주들의 주장이다.
전체적인 명함 양식 역시 현재 고려아연 측을 대리하는 업체가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로 인해 일부 고려아연 주주들은 케이디엠메가홀딩스가 고려아연 측을 위해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해당 내용을 확인하고자 영풍이 아닌 고려아연으로 연락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아연 측은 “실제로 주주들 사이 관련 문의가 와 문제를 파악했다”며 “이에 내부적으로 영풍 측의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을 놓고 법적인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의결권 권유자는 위임장 용지 및 참고서류 중 의결권 피권유자의 의결권 위임 여부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에 관해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를 하거나 의결권 위임 관련 중요사항의 기재 또는 표시를 누락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의결권 권유자에 대해 이유를 제시한 후 그 사실을 공고하고 정정을 명할 수 있다. 또 필요한 때에는 의결권 대리행사의 권유를 정지 또는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고,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영풍은 해당 명함이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뿐 아니라 다른 기업의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가 이뤄질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함 양식이라는 이유에서다.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시 충분히 기업과 취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내달 주총 전 양측의 신경전이 격화되는 것을 두고 최근 몇 년간 양쪽 집안에서 경영 주도권을 잡기 위해 벌인 다툼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영풍그룹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설립했다. 그동안 장씨 일가가 지배회사인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를,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맡는 방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22년 최 창업주의 손자인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계열 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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