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특례' 도입 속도 내는 정부…왜 의사도, 환자도 불만?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4. 2. 28.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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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정부가 의대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복귀시한인 29일을 이틀 앞두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을 '당근책'으로 꺼냈습니다. 책임보험·공제 가입 시 미용·성형도 공소를 면제하고, 종합보험 가입의 경우 환자가 숨져도 형을 감면하겠다는 내용에 환자단체는 "피해자의 고통만 가중시킨다"며 반발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사례란 정부의 입장과 달리 의료계도 불만족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의료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6일 서울 강남구 SRT 수서역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인근 병원 셔틀버스를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

의대정원 증원을 둔 의(醫)-정(政) 간 '강대강' 대치로 의료현장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정부가 전공의 등의 복귀를 호소하며 또다시 '의료사고 특례' 카드를 꺼내들었다.

의료계에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을 기피하는 최대 원인으로 꼽은 사법리스크를 완화해주겠다는 것이다. 의대 확대에 앞서 정부가 이달 1일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들어간 내용으로, 의사들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당근책'이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고질적 저수가와 '번아웃'은 물론, 의료사고로 인한 처벌·소송 위험까지 무릅쓰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를 적극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다만, 책임보험·공제 가입(보상한도가 정해진 보험)을 전제로 환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통상 '비(非)필수과'로 분류되는 미용·성형까지 공소를 면제하기로 한 점을 두고 원래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 종합보험·공제(피해 전액보상) 가입 시 필수의료 행위 중 환자가 사망해도 형을 감면해주겠다는 계획인데, 환자단체는 "위헌적 발상"이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공의 '복귀 시한' 이틀 앞두고 꺼낸 의료계 '숙원'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오는 29일 국회도서관에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안) 공청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법무부 차관 등 주무부처 책임자들과 의료계, 환자·소비자단체, 법조계 인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의료 개혁'의 쌍두마차로 내세우고 있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중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위해 전문가 및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함이다.

앞서 정부는 의료계가 가장 강력하게 요구해온 의료사고처리특례법 도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전공의 복귀 시한으로 못 박은 29일 이후론 본격 '사법처리'에 돌입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도, 의사들의 숙원인 특례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동시에 강조한 것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이 2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병원의 가장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지금까지 인내하며 견뎌 온 전공의들의 시간에 깊이 공감한다. 여러분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사람을 살리는 좋은 의사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 공개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디데이(D-day)였던 지난 20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발표한 7대 요구사항 중 하나('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 대책 제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2023)에 따르면, 의협 회원 1100여 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과반(57.6%, 중복응답)은 '의료사고로 발생하는 민·형사적 처벌 부담 완화'를 필수의료 지원 우선순위로 꼽았다.

종합보험 가입시 사망도 '형 감면'…"판례상 위헌" 지적도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전공의들이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대한전공의협의회 2024년 긴급 임시대의원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민 기자


정부가 전날 공개한 법안 초안에 따르면, 특례법은 '의료인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에 대해선 다른 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했다면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 과정에서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해도 환자 측 의사에 반해(반의사불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필수의료 분야와 전공의에 대해서는 책임보험·공제 가입을 위한 보험료도 지원한다.

이에 더해 피해를 전액 보상하는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엔 의료진 과실로 환자의 상해가 발생해도 공소 제기를 아예 못하게 했다. 즉, 응급·중증질환·분만 등 정부가 법안에 명시한 '필수의료행위' 중 중상해가 일어나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종합보험·공제 가입자는 필수의료 행위 수행 과정에서 환자가 숨져도 형을 감면받도록 규정했다.

이같은 특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절차에 참여할 때 적용된다. 또한 △진료기록·CCTV 위·변조 △의료분쟁조정 거부 △환자 동의 없는 의료행위, 다른 부위 수술 등 면책제외 사유에 해당되는 사례는 배제된다.

정부는 당초 정책패키지 발표 시엔 특례 범위에서 미용·성형을 제외할 것인지, 또 사망사고 등을 포함시킬 것인지 등을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칭)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는데, 4주도 안 지나 해당 내용을 추가했다.

보험 가입 여부로 처벌 유무가 결정되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9년 중상해 결과가 발생한 교통사고에 대해 공소를 면제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관련 조항(제4조 1항)이 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상해를 수반하는 측면이 있다"고 봤다. 사망·중상해 등의 발생 가능성이 있는 영역에서 환자가 일정 부분 '법적으로 허용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치료에 임했다는 전제가 교통사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한상형 형사법제과장은 "다만, 모든 의료행위로 발생한 중과실을 포함시킬 경우, 헌재 결정 등과 상충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복지부와 면밀히 협의해 필수의료 영역에 한정해 이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으로 일단 (정부)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 "썩은 당근" vs 환자단체 "일방적 특혜"

전공의 집단 이탈이 일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 뒤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회유책이 될 거라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의료계는 '썩은 당근'이라는 반응이다.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 등의 전공의 측 법률자문을 맡은 이재희 변호사('아미쿠스 메디쿠스')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종합보험에 가입하면 (사망 시) '형 감면'이 아니라 수사 자체를 안 받게 해야 한다"며 "교통사고는 과실의 크기가 곧 사망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의료현장은 과실이 미미해도 매우 위독한 환자면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환자들은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갖는 기본적 생각이 '못 살리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필수의료) 의사들 입장에선 '못 살렸을 때 수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마찬가지로 필수의료에서도 '12대 중과실' 등의 유형을 세부적으로 특정하고 그 외엔 공소를 모두 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변호사는 "(현재) 신생아나 소아가 숨졌다고 가정하면, 성년이 돼 정년까지 벌 수 있는 금액(일실이익)으로 손해배상을 시킨다. 누가 산부인과·소아과에 가려고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반면 환자단체와 시민사회계는 지금도 '기울어진 추'를 의사들에게 완전히 밀어주는 "특혜"라고 반발한다. 의료사고 입증 책임은 여전히 환자에게 떠넘긴 채 의료인의 형사처벌 책임까지 면해주는 것은 피해자·유족의 고통만 더 가중시키는 꼴이란 지적이다.

앞서 특례법 도입이 공식화된 직후, 환자단체연합회·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정부가 관련 논의를 위해 꾸린 '의료분쟁 제도 개선 협의체'를 탈퇴하며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이들은 지난 1일 성명에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형사책임 면제 특례를 인정하는 전제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상 교통사고 관련 입증책임 전환 규정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벤치마킹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나 관련 법률 어디에도 의료사고 관련 입증책임 전환 규정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의료적 전문성과 정보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료과실 및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다"며 "소송을 위해서는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이 소요되기에 의료분쟁에서 절대적 약자"라고 강조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는 협의체에서 9차례 논의해 만든 안(案)이라 하지만 저희는 7차 이후 다 탈퇴한 상태다. 공급자(의료계) 쪽과 만든 법안이지, 국민들은 검토한 적도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신현호 변호사(의료법 전문)도 "특정 직업에 대해 형사 특례를 주는 제도는 없다.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특례를 주려면, 상응한 책임도 지게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해외에도 유례가 없는 만큼 사고예방을 위한 충분한 노력 등 의료윤리가 되레 해이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 2차관은 "다른 나라에는 (유사입법) 사례가 없는 걸로 안다. 그만큼 우리나라 필수의료 상황이 매우 열악하고 어렵다는 뜻"이라며 "정책적으로 이 보호막을 설정해주지 않으면 의료진이 더 이상 남아있지를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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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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