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사랑은 아무나 하나

차동욱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 2024. 2.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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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욱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가수 태진아의 노래 ‘사랑은 아무나 하나’의 가사 일부분이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가르침 중 핵심 개념인 ‘인(仁)’에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논어 안연편 22장에 공자는 인(仁)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라고 했다. 이 애인(愛人)에서 인(人)은 나(己)가 아닌 남이어야 한다. 인(仁)이라는 글자의 생김새를 분석해보면, 사람 인(人)과 두 이(二)가 결합한 것이다. 즉, 두 사람인 나와 남이 결합해서 하나가 되는 것이 인(仁)이고, 이 인(仁)의 실현과정이 사랑이다.

그런데 공자의 가르침에서 나와 결합하는 남은 친구 가족 국가로 확장될 수 있고, 사랑의 방법으로 학(學) 효(孝) 충(忠) 등이 제시되고 있다. 중독을 넘어선 불같은 사랑의 느낌은 전혀 없다. 공자에게 사랑이란 거의 의무에 가깝다.

의무로 해야 하는 ‘공자표’ 사랑과는 정반대로 순수한 권리만으로서의 사랑도 있다. 그냥 나 혼자 내 마음대로 하는 짝사랑이다. 상대방의 감정은 상관없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난 정말 몰라. / 그대 지나치는 시간이 되면, 나는요 어느샌가 거울 앞에 있어요’.

가수 주현미의 노래 ‘짝사랑’ 가사의 일부분이다.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짝사랑의 상대방과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이 매일 일정 시간에 반복되는 것 같은데, 왜 거울 속의 자신을 쳐다볼까?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은 ‘법철학 강요’에서 사랑을 두 단계로 나누어 분석하는데, 첫 번째 단계는 사랑에 빠지는 단계다.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였음을 깨닫게 된다. 건설적인 자기반성이라면 괜찮다. 문제는 자기 스스로가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존재는 사랑하는 상대방의 존재에 의존하게 된다. 내 삶은 연인의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헤겔의 이 1단계가 흔히들 경험하는 짝사랑과 유사하다. 두 번째 단계는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하는 단계다. 사랑하는 커플이 상대방의 마음 속에 자신이 깃들어 있음을 확인하는 단계다. 1단계는 내 마음속을 타인이 꽉 채우고 있는 단계이고, 2단계는 타인의 마음 속에서 나를 찾는 단계이다.

다시 주현미의 ‘짝사랑’으로 돌아가서, 짝사랑하는 그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거울 속의 나를 보는 이유가 뭘까? 거울 속의 내가 짝사랑하는 상대방의 마음 속에 있는 나이기를 바라며 보는 것일까? 그렇다면, 헤겔의 1단계 사랑 또는 2단계 사랑에 들어맞는 상황은 아니다. 거울에서 짝사랑하는 상대방만이 보이면 1단계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인 거의 환시(幻視) 수준이다. 거울 속의 내가 나인 것은 맞는데, 만약 거울 속에 있는 내가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는 나로 받아들이는 단계라면, 이것은 헤겔의 2단계 사랑이 아니라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가깝다. 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속에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내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라면, 극단의 자기애(自己愛)라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에게 선보인 갑진년 설 인사는 대통령 부부의 세배가 아니라 대통령실 직원 합창단과 대통령이 함께 하는 노래 영상이었다. 가수 변진섭의 노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였다. 그런데 왜 대통령실 직원들만이 영상에 등장할까? 노래는 직원들이 하더라도, 각계각층의 일반 국민이 등장해 대통령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노래의 의미를 더 살리지 않았을까?


필자에게는 왠지 “대통령실 직원들 사랑스럽죠? 열심히 일하는데 국민 여러분이 좀 예뻐해 줘야겠죠?” 라고 어필하는 대통령실의 홍보영상처럼 느껴진다. 재벌그룹 오너일가가 이런 영상을 찍으면 감동할 국민이 몇 명이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 재벌그룹 오너일가를 대한민국 경제의 대들보로서 불철주야 헌신하고 있다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미지로 인식하고 기억할 것이라는, 나르시시즘이 물씬 풍기는 영상이라 욕먹지 않을까? 우리 정서에는 대통령의 힘찬 목소리가 함께하는 세배가 제일 무난한 설 인사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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