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하이에나와 표범의 줄다리기...‘줄’은 산 멧돼지였다

정지섭 기자 2024. 2. 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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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도 치악력도 비슷한 영원한 숙적
철저히 무리생활하는 하이에나와 달리 표범은 철저 단독생활
올빼미 둥지 약탈하는 표범, 물범 새끼 잡는 하이에나 등 덜 알려진 식성도 부각
하이에나에 맞서 멧돼지의 목덜미를 물고 버티고 있는 표범./Latest Sightings Facebook

믿기 힘든 얘기지만 1900년 파리 올림픽부터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까지 다섯차례(1916년은 1차 대전으로 취소) 올림픽에서 줄다리기는 당당한 정식종목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스웨덴에서 국제줄다리기연맹이 주최하는 세계줄다리기 선수권대회도 성황리에 개최됐어요. 줄다리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줄다리기는 유서깊고 격조있고 널리 행해졌던 스포츠입니다. 그런데 줄다리기를 해온 생명체는 인간만이 아닙니다. 노획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힘을 겨루는 싸움은 모든 생명들이 본능적으로 직면하는 상황이죠. 오늘은 야생에서 벌어진 비정하고 잔혹한 줄다리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얼마 전 남아프리카 사파리 공원의 소식을 전달하는 매체인 레이티스트 사이팅스(Latest Sightings) 페이스북 계정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올라온,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비정한 줄다리기 이야기입니다.

사냥당한 살아있는 멧돼지를 표범과 하이에나가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다./Latest Sightings Facebook

사람들에게 줄다리기의 목표는 ‘승리’입니다. 반면 짐승들의 줄다리기 목표는 ‘쟁취’입니다. 당기려는 대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먹어치우기 위해서죠. 그래서 야생의 줄다리기에서 ‘줄’의 처지에 놓인 먹잇감의 운명은 더할나위 없이 끔찍합니다. 더구나 목숨이 붙어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먹고 먹히는 생사의 순간이 사파리 관광객들에게는 일생일대의 볼거리가 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비 샌드 자연보호구역에서 사파리 투어에 나섰다가 순간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아낸 조너선 매코믹(Jonathan Mccormick)도 이런 광경과 맞닥뜨릴 것이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표범이 구덩이 앞을 쥐죽은 듯 지키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어요. 그리고 전광석화와 같은 기습의 순간, 놈이 무엇을 노리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라이온킹의 ‘품바’로 알려진 혹멧돼지입니다. 우선 페이스북 동영상 먼저 보실까요?

혹멧돼지는 결코 만만한 먹잇감이 아닙니다. 뿔처럼 변형돼 돋은 엄니는 육중한 몸집으로 돌진할 때 공격 대상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는 흉기가 됩니다. 단단한 살집과 맷집에 스피드까지 갖추고 있어 절대 만만한 먹잇감이 아닙니다. 하지만, 표범은 작정했습니다. 구덩이앞에 쥐죽은듯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놈의 머릿속은 이미 멧돼지의 살냄새로 요동치고 있었을테지요. 어마어마한 턱힘에 물린 멧돼지는 강력하게 저항합니다. 그러나 개미집이라는 천혜의 지형지물이 디딤돌이 되어준 덕에 상대적으로 힘을 덜 소비한 채 혹멧돼지를 끌어냅니다. 이제 버둥거리는 먹잇감을 최대한 빠르게 숨통을 끊어 절명시킨 뒤, 나뭇가지로 가지고 올라가 성찬을 즐기는 일만 남았을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불청객이 들이닥쳤습니다. 꿰엑하는 처절한 비명소리에 포식의 본능이 발동한 하이에나가 이 현장을 놓쳤을리 없죠.

쥐죽은듯이 잠복해있던 표범이 마침내 구덩이에서 나온 혹멧돼지 사냥에 성공하고 있다./Latest Sightings

잔혹한 사바나의 줄다리기가 시작됐습니다. 표범은 멧돼지의 왼쪽 턱을 물었습니다. 하이에나는 뒷다리를 물었어요. 단지 약하다는 이유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대자연의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가련한 멧돼지가 거열(능지처참과 유사하지만 산채로 집행하는 형)을 당하는 순간입니다. 표범과 하이에나, 어느 한놈의 치악력이 압도적이어서 쉽게 승부가 갈린다면 차라리 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문제는 하이에나와 표범은 덩치와 파워 면에서 사자에 이어 2위를 다투는 라이벌이라는 점입니다. 놈들의 치악력을 측정해봤더니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1100PSI(제곱인치 당 파운드)입니다. 회색곰·벵갈호랑이·북극곰 등과 맞먹는 수치입니다.

먹잇감을 사이에 둔 표범과 하이에나의 혈투는 사바나 곳곳에서 종종 벌어지는 장면이다. 과거에도 포착됐던 유사 장면./Latest Sightings

이렇게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두 괴수의 탐욕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멧돼지의 고통은 극에 달합니다. 끝내 뒷다리 한쪽의 거죽이 드드드득 벗겨지고 말아요. 분홍색 근육과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맙니다. 어느 한쪽으로 쉽게 승부가 쏠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하이에나는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표범이 어떻게 반응하던 우선 배를 채우려고 마음먹은 거예요. 항문과 복부를 공략하기 쉬운 위치라는 점을 하이에나는 십분 활용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버둥거리며 절규하는 멧돼지의 살집을 이빨로 파고 들어가 허겁지겁 섣부르고 가혹한 식사를 시작합니다. 승부의 추가 하이에나쪽으로 급격히 기웁니다. 홀로 독차지해 나뭇가지에 걸쳐놓고 두고두고 사바나 바람에 삭혀 먹으려 했던 계획이 틀어지자 표범은 미련없이 노획물을 떠납니다. 피냄새를 맡은 하이에나 무리들이 우르르르 몰려들면서 게임은 하이에나의 승리로 귀결됩니다. 멧돼지의 고통은 그제서야 마무리됩니다.

표범이 사냥한 임팔라의 사체를 나무위에 늘어뜨린 뒤 두고두고 먹고 있는 모습./Sun Destinations

이 줄다기리는 사바나의 2인자를 자처하는 하이에나와 표범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이에나는 죽은 사체만을 탐하는 청소부다’ ‘표범은 은밀히 사냥하는 고독한 사냥꾼이다’ 등 이 짐승들에 대해 가져왔던 통념이 와르르르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해요. 동시에 사바나의 패권을 다투는 맹수 일족 중에서 이 두 종류가 얼마나 우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죠. 표범은 고양잇과 맹수 6대 천왕 중 독보적으로 넓은 지역에 분포합니다. 한반도와 중국·시베리아부터 중앙아시아와 동남아, 그리고 카프카스 지역과 아프리카에까지 퍼져있어요. 표범은 천성이 외롭습니다. 사자·하이에나·리카온이 철저하게 무리 단위로 생활하는 것과 달리 완전한 단독생활을 합니다. 그런데도 호랑이·사자를 잇는 고양잇과 맹수의 강자로 군림하는데는 극강의 사냥능력이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흔히 표범하면, 급습해서 영양의 숨통을 끊어놓은 뒤 나무위로 올라가 걸쳐두는 식의 사냥·식사법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요. 이건 표범 습성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촬영장비가 발달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표범의 여러 습성이 화면에 포착돼 관찰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데요. 다음에 보실 영상(Earth Touch TV Facebook)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위로 뛰어올라간 표범이 특정 부분을 끈질기게 공략합니다. 앞발로 나무줄기를 악착같이 긁어냅니다. 혹여 발톱을 가다듬는 것인지 궁금해지던 순간, 마침내 표범이 노획물을 끄집어냅니다. 표범에 입에 물린 것은 날개를 푸드리며 마지막 날갯짓을 하는 올빼미 새끼였습니다. 정황상 어미 올빼미는 알에서 부화한 뒤 새끼가 이렇게 끔찍하게 희생당하는 장면을 부리부리한 눈을 껌벅이며 지켜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전하다고 여겼던 나무구멍에서 어미가 물어다주는 쥐와 도마뱀 따위를 꿀떡꿀떡 삼키고, 펠릿을 토해내며 맹금류의 제왕을 꿈꾸던 올빼미 새끼의 삶은 여기까지였어요. 하필 그 자리에 둥지가 만들어졌던 게 화근입니다. 그렇게 급습한 표범의 한 입 식사거리로 미래의 하늘의 제왕이 희생됐습니다. 이처럼 표범은 일단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곤 ‘사이즈’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하게 탐닉합니다. 표범의 최애 식사 메뉴 중에 장수풍뎅이 등 벌레들이 포함돼있는 까닭입니다. 서벌이나 재칼 같은 육식동물들마저 표범의 식단에 포함돼있다는 얘기는 앞서 전해드린 바 있고요.

표범과 함께 혹멧돼지를 사이에 두고 죽음의 줄다리기를 펼친 하이에나 역시 스케빈저(죽은 사체를 먹는 동물)에 그치지 않고, 여타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피와살을 탐하는 맹수의 삶을 끈덕지게 추구합니다. 하이에나 역시 표범못지 않은 생존력의 상징입니다. 흔히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만 살고 있는 ‘특산종’으로 오해할법한데, 하이에나의 서식 범위 결코 표범에 밀리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를 넘어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 인도와 히말라야 일대까지 펼쳐지는 넓은 지역을 터전으로 삼습니다. ‘라이온킹’에서 사자 무리와 은밀한 협업을 한다는 터무니없는 설정으로 유명한 점박이하이에나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너무 커서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갈색하이에나·줄무늬하이에나·땅늑대 등 다른 하이에나들도 있거든요. 특히 서식지를 해안가까지 넓힌 갈색 하이에나가 대서양 모래사장을 누비며 이제 막 태어나서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한 물범 새끼를 사냥하는 위의 동영상 (Wild Animal Survival Battles Facebook)은 잔혹함과 비정함, 한편으로는 절실함이 보여지는 장면이죠.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는 놈들에게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새끼 물범은 쉽게 사냥할 수 있고, 야들야들하고 쫄깃쫄깃한 먹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덥수룩한 가슴팍의 털로 유명한 갈색 하이에나./Siyabona Africa

이렇게 미시적으로는 다른 습성을 갖고 있지만, 사자의 뒤를 이어 사바나의 넘버투를 다툰다는 거시적 공통점을 다룬 두 괴수의 줄다리기는 지금 사바나와 정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을 겁니다. 그 ‘줄’이 된 가련한 희생물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처절한 고통으로 마무리할 것이고요. 약하고 힘없는게 곧 죄인, 비정한 짐승들의 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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