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노동!”…9명 해고 대리점주는 벌금형, 노동자는 감옥행

한겨레 2024. 2. 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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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비정규 노동수기 공모전 우수상
2020년 10월7일 민주노총 전북본부에서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 현대차 군산중앙분회 사업장으로 합의이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필자 제공

“피고인 정권찬을 징역 6개월에 처합니다.”

순간, 판사의 선고 내용을 적으려 했던 내 손에서 힘이 빠졌다. ‘잘못 들었나?’ 하는 의아한 눈으로 판사를 쳐다봤다. 얼굴을 하얀색 마스크로 가린 판사는 물었다. “정권찬씨, 하실 말씀 있으세요?”

대리점주가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합의를 이행하라던 투쟁 과정에서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받은 판결이었다. 검사의 벌금 구형에도 판사는 실형을, 그것도 법정구속하는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그렇게 나의 2022년 12월8일 오전 10시는,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법정에서 박제됐다.

두 손은 차가운 은빛 수갑으로 채워지고 포승줄로 몸이 꽁꽁 묶인 채 호송차에 탑승했다. 자꾸 터져 나오는 한숨과 함께 호송차는 매정하게 출발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내가 태어나고 자라 익숙했던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서럽고 서러운 비정규 노동의 참담한 현실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얇은 하얀 고무신 때문인지 발 딛는 군산교도소 바닥은 내장이 오싹할 만큼 진저리치게 한기가 돌았다. 손톱으로 양철판을 긁는 것 같은 정나미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잠금장치가 잠기자 비로소 내 몸이 갇혔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법정구속으로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놀랄 일은 안 봐도 알 정도지만, 현대자동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서 당일 오후 차량을 인도해줘야 할 고객 생각에 정신이 아득했다. 딱 봐도 오래된 ‘수용자 안내문’ 포스터를 보고 호출벨을 눌러 교도관에게 전화 한 통화를 간곡히 부탁했다. 규정을 확인한 교도관은 잠시 후 나를 구불구불한 긴 복도 어딘가로 데려가 전화 박스 앞에 데려다줬다. 호흡을 가다듬고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내는 교도소 쪽으로부터 이미 소식을 전달받았지만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차오르는 울음을 참기 힘들어했다. 나까지 울어버리면 얼마 허락되지 않은 통화시간을 허비할 것 같아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목젖이 매운 상태로 겨우 말했다.

“여보, 울지 말고 오늘 인도해야 할 고객등록 서류가 법원 주차장 차 안 가방에 있는데, 정규 형님에게 대신 부탁 좀 한다고 전해줘.”

아내는 알았다면서 계속 “괜찮아?” “괜찮아?”라고 일렁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통화가 끝나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는 복도를 걷는 내내 울음을 참으려 꽉 다문 입 때문에 턱이 아플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의지와 상관없이 눈꼬리 아래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타고 내렸다. 다시 방안에 갇히자 그동안의 시간이 머릿속을 채워갔다.

내가 현대자동차를 판매하기 시작한 때는 2005년께 여름이었다. 방송통신대를 입학하고 딱 한학기를 마친 상태에서 학업과 직업을 병행하고픈 간절함이 있던 터에, 마침 생활정보지 구인광고를 보고 ‘영업은 병행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자동차전시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비정규직 노동은 시작됐다.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는 현실조차 모를 만큼 전에 다녔던 직장도 근로조건이 원시적이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겪은 세상은 온통 비정규직 천지였고, 정규직이란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이렇다 할 학연도, 지연도, 인맥도 없던 나는 차를 팔지 못하면 수입이 ‘0’원이라 현장을 처절하게 개척해야 했다. 판촉비 한푼이라도 아끼려 새 사양이 나오면 캐비넷에 쌓아뒀던 구형 사양의 카탈로그를 들고 아파트 가가호호 훑기, 빌딩타기, 상가훑기를 했다. 하지만 나와 동료 판매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와 대리점주들의 방조 아래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오징어게임과 똑 닮은 혈투장의 주인공이 되어 갔다.

대리점주들은 누가 차를 팔든 꼬박꼬박 대당 무려 30%의 수수료를 떼갔다. 우리는 거기에 또 3.3% 세금을 공제한 후 몫을 분배받는다. 이 금액으로 선팅 등 이러저러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통신비, 차량유지비 등 영업에 꼭 필요한 비용은 고사하고 점심마저 내 돈으로 해결하고 나면 손에 쥔 건 서러운 눈물뿐이다. 조선 말기 농민들의 소작료율이 생산물의 약 33%였다고 한다. 당시 소작농들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반면 대리점주는 자신이 판매한 차는 수수료 100%를 챙긴다. 거기에 현대자동차와 현대캐피탈에서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추가로 확보한다. 현대자동차의 ‘대리점 경영 지침서’에 따르면, 인센티브란 ‘전체’ 판매실적에 따라 “판매 수수료(기본 수수료) 외에 대리점 운영, 판매 증대, 직원 판매동기 부여 강화를 위해 지원되는 지원금”을 통칭한다. 나를 형사고소한 대리점주도 인센티브가 대리점 ‘전체’ 실적을 기준으로 책정된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대리점주들은 일반적인 사업주와 다른 특색이 있다. 이들은 생산설비 투자·유지, 연구개발, 재고관리 등의 위험 부담이 없다. 대부분은 현대자동차 영역이고, 오직 판매노동자 즉 ‘사람’만이 자신의 사업자산이다. 따라서 대리점 ‘모든 사람’이 판매한 전체 실적에 따라 지급되는 인센티브는, 판매한 ‘모든 사람’들과 분배해야 합당하다. 실제로 그렇게 분배하는 대리점주들이 있었고, 인센티브를 분배하지 않거나 사용처가 불분명한 곳에서 노조 가입자가 증가했다. 그러나 일부 대리점주들은 단체교섭에서 점심 식대를 요구하는 노동조합에 지급 의무가 없다거나 편의점 ‘컵밥’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라틴어로 ‘빵을 함께 먹는 사람들’을 콤파니아라고 불렀고 그게 현재 ‘Company(회사)’의 어원이라는데, 이들에게는 ‘사람’, 그러니까 노동인권이 없다.

이 모든 게 나와 대리점주 사이 문제이고 국가는 비정규 노동에 아무런 역할이나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나는 대리점주로부터 형사고소와 그로 인한 구속, 해고통지, 가처분, 가압류,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그러다 보니 경찰, 검찰, 노동청, 노동위원회, 법원 등 여러 국가기관을 경험해 봤다. 심지어 생존권을 위해 투쟁한 나를 ‘강력방’에 배정한 교정기관까지도. 국가는 노동자에겐 엄격했지만 사용자에겐 무척 관대했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있었던 일이다. 심문회의 최종진술을 하는데 의장이 웃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격분한 내가 “왜 웃습니까!”라고 소리치니 의장이 한다는 소리가 “이 상황이 참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라고 했다.

그런 비웃음보다 힘들었던 건 바로 ‘입증책임’이다. 노동위는 준사법기관의 하나이고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요구한다. 노동자가 ‘저 사용자는 분명 나쁜 놈일 거야’ 생각하고 취업과 동시에 꼼꼼하고 부지런히 증거를 모은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노동자는 입증책임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설사 그렇게 증거를 모은다 해도 노동자가 모은 증거 대부분이 법률가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노동위를 찾은 노동자들을 더 절망하게 한다. 꽤 탄탄한 증거가 제출된 사건에서도 부당노동행위 등으로 인정되는 비율은 매우 낮다. 어쩌면 노동위가 진실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으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구속되면서 즉시 항소했기 때문에 징역형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리점주는 내가 징역형을 선고 받아 업무를 할 수 없어서 해고했다며 항소 이후 해고통지를 했다. 중노위 판정 당시 나는 1심이 파기되고, 벌금형이 선고된 상태라 대리점주의 주장에 큰 모순이 있었다. 당연히 나는 이 부분을 탄핵했다. 그런데 중노위는 이에 대한 판단 없이 기각하고 말았다.

2020년 7월10일 필자가 영업소 앞에서 집회방송을 하고 있다. 필자 제공

노동자가 사용자의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형사고소다. 그러나 노동청에 고소했을 때, 근로감독관은 “저보다 많이 아시네요”라고 할 정도로 전문성이 없어 보였다. 이 정도는 그간 검찰이 나에게 보여준 것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나는 대리점주의 부당노동행위 8건을 묶어 고소했고, 지방검찰청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고등검찰청에 항고했다. 고검에 전화까지 해가면서 기간을 연장받은 뒤, 피 말리며 항고이유서 작성에 몰두했고 그 사이 몸무게가 5㎏ 넘게 빠졌다. 그 결과 4건이나 ‘재기수사명령’을 얻어냈지만 지검에서는 불기소 처분을 반복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8개월 동안 전 직원 통장에 입금되던 인센티브가 첫 단체교섭 직전 끊겼다. ‘담당 직원의 업무상 착오’였다는 대리점주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검찰의 결론에 할 말을 잃었다. 담당 직원은 입금할 때마다 대리점주에게 “결재를 올린다”했고, 계산을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하라는 것도 대리점주가 시켰냐는 질문에 “사실이 그렇다”고 한 음성녹취록을 항고이유서와 함께 증거로 제출했는데도 말이다. 고검에서는 그에 따라 재기수사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였는데, 지검은 대리점주의 지배 아래 있는 부하직원의 진술 번복을 이유로 또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보지 않으려 하는 건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주장이 상이하여 ‘대질조사 등이 필요’하다며 재수사 지휘를 했음에도, 노동청도 검찰도 대질조사 한번 없이 사건을 종결한 점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흔히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또는 법치국가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착각이다. 우리나라는 약탈적 자본주의 국가다. 민주도 법치도 그 자본 아래 있다. 이 선언의 확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노동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법원에서도 나온다. 대법원은 “경영권과 노동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하여야 한다”(2002도 7225)고 할 정도다.

2020년 9월25일 분회 동지들과 합의를 파기한 대리점주 집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필자 제공

우리 ‘자동차판매연대지회’(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를 보자. 2015년 지회 설립 후 많은 대리점이 폐업됐고, 수많은 동지가 해고됐다. 그 과정에서 한 대리점주는 동지 9명을 마치 처형하듯 일정 간격으로 해고했다. 대리점주는 노조탈퇴를 노골적으로 요구했고 탈퇴하지 않으면 실제로 해고할 수 있음을 순차적으로 보여줬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해고자 명단을 현수막으로 만들어 자동차 전시장에 내걸기도 했다.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로 인해 동지들의 삶은 처참해졌다. 그런데도 법원은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된 대리점주에게 벌금형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이게 노동을 대하는 우리 법원의 현주소다. 그걸 뚫고 피눈물과 희생을 제단에 바친 후에야 마침내 우리 지회는 근로 3권을 쟁취했다. 우리 지회는 대리점주들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고, 현안사항에 대해 전국에서 노사 합의가 잇따랐다. 나는 합의를 파기하고 출근하지 않는 대리점주 집 앞에 지회의 지시를 받아 노조현수막을 게시했다. 이 때문에 ‘사실을 적시한 죄’(명예훼손)로 검찰의 벌금 구형을 훨씬 웃도는 법정구속이란 참변을 겪었다. 9명을 ‘살인’(해고)한 대리점주는 벌금형이고, 살고자 외친 노동자는 감옥행인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것이다.

판사 이름도, 직인도 없는 나의 구속영장에는 ‘도망의 염려’에 체크가 됐다. 도망의 염려라니. 나는 당일 오후에도 아반떼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할 예정이었고, 고객과 계약해 출고를 기다리는 차량이 40대였다. 내가 어딜 봐서 고객과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도망간다는 것인가.

헌법에는 ‘근로’라는 표현만 있을 뿐 ‘노동’이란 단어는 없다. 우리 지회는 근로 3권을 쟁취했으니 나는 근로자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리점주들이나 원청 현대자동차와의 관계에서 우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최고법상 근로자가 하위법상 근로자가 아닌 복잡한 법리는 무엇이며, 도대체 나의 진짜 사장은 누구란 말인가. 근로자가 주체를 표현하면서 노동자라고 외치는 순간 감히 건방 떤다고 국가는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2021년 3월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설명자료의 노조법 개정배경을 보면, “최근 국제사회가 노동과 무역의 연계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노동기본권 보장은 단순히 노동의 문제를 넘어 경제·통상의 문제로 확대”된다고 했다. 국가는 알고 있다. 자본에 의해 점점 쪼개지고 흩어지는 비정규 노동을 이대로 두고 보기만 한다면 결국 우리 조국은 국제사회에서 떠밀려날 것을.

정권찬 자동차판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지난해 주최한 ‘13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한겨레는 해마다 수상작 일부를 게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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