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문신’ 완간 윤흥길 “우리 가슴 속 귀소본능에 대한 이야기”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2. 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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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 소설가 기자간담회
‘문신’ 4·5권 출간해 완결
판소리 율조 흉내낸 문장에
다채로운 우리말로 풀어내
윤흥길 소설가가 2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월 1일 완간하는 장편소설 ‘문신’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문학동네
“우리의 근원적인 귀소본능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달 1일 장편소설 ‘문신’ 완간을 앞둔 윤흥길 소설가(81)는 27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작품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한민족은 건국 신화에서부터 변방으로 나와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 귀소본능이 강하다. 고향의 부모를 찾아가고 죽어서는 가급적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또 기독교인으로서 사는 동안 천국을 사모하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본향(천국)으로 기쁘게 달려가고자 하는 신앙심도 함께 엮었다.”

‘문신’은 언제나 시대정신과 사람들의 현실 이야기를 담은 큰 소설을 지향하는 그가 25년 전부터 구상해온 필생의 역작으로 여겨진다. 지난 2018년 12월 1·2·3권을 출간한 지 5년 여 만에 4·5권을 출간해 완결을 냈다. 당초 2019년 완간을 목표로 했지만 최근 심혈관 질환을 앓으며 건강이 악화해 출간이 늦어졌다.

‘문신’은 제국주의 시대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비극을 마주하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을 담은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한민족의 토속 정서를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판소리 율조를 흉내내 문장의 어순을 바꾸거나 조사를 많이 생략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구수한 사투리로 이어지고, 소설 속 장면들은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채로운 우리말의 변주로 그려진다. 한이 서린 듯한 인물들의 걸쭉한 욕설이 주는 생동감도 ‘문신’의 또 다른 매력이다. 작가가 말한 귀소본능은 작품 후반부를 끌고가는 힘이 된다.

“그나저나 오래 살다보니깨 시방 참말로 벨 희한헌 꼴을 다 보게 되네그랴, 자그만침 대일본허고도 시방 제국 아닌가. 불과 얼매 전까장만 허드래도 시방 세계제국 건설이 코앞에 닥친 것맨치로 시방 잔뜩 뻐겨대고 떠세허든 나라가 시방 원자폭탄 두 방으로 절딴이 나뿔고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헐지를 시방 누가 짐작이나 혔겄는가.” (‘문신’ 5권 본문 중에서)

윤 소설가는 “이번 작품은 마음 먹고 독자들한테 불친절을 떨어보자는 생각으로 썼다”며 “이전까지는 독자들의 가독성을 생각해 문장을 썼다면 ‘문신’을 집필하면서는 오로지 우리 정서를 표현하는 데만 집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화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어사전에 등재돼 있는 표준어라는 설명이다. 그는 “고교 시절부터 국어사전을 끼고 다니면서 낱말들을 쭉 읊었다. 그렇게 얻은 우리말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고 말했다.

‘문신’은 완간 전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 2020년 제10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김훈, 오정희, 김주영 등 소설가들도 일제히 극찬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윤 소설가는 ‘21세기를 빛낼 새로운 고전’과 같은 타이틀에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그런 수식어는 상당히 부담스럽고 쑥스럽다”며 “장시간 공 들여 쓴 작품은 맞지만 내년쯤부터는 조선 말 무렵 이야기를 담은 다음 장편의 집필에 들어갈 텐데, 만약 그 작품이 나오고 또 필생의 역작이라고 하면 꼴이 우스꽝스러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소설가는 한국 문학계가 패션처럼 유행을 따라가려는 것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는 “어느 해 여름 길거리에 오랜만에 나왔는데 모든 여자들이 한여름에 새카만 복장을 하고 있어 굉장히 놀란 적이 있다. 만약 한 나라, 한 사회의 문학적 경향이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듯 패션화한다면 이것은 그 나라의 불행”이라며 “어떤 대세를 이루는 흐름이 문학 풍토를 석권하고 있다면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각양각색의 문학 작품이 골고루 많이 나오고 읽힐 때 그 나라의 문학 풍토가 풍요로워지고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긋한 나이와 병환에도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파서 소설을 못 쓸 땐 도무지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며 “치료를 받으면서 누워 있는 것은 괜찮았지만 작품의 출간이 늦어지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원고 말미에 끝자를 집어넣는 그 순간이 작가한테는 가장 흥분되고 행복하고 떨리는 시간이다. 그 순간에 모든 창작 욕구가 충족되는 기분을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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