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마다 새 800만마리 즉사…안 지워지는 ‘붉은 눈물’

김지숙 기자 2024. 2. 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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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뉴욕 부엉이’ 플라코 건물에 부딪쳐 사망
한국 야생조류 충돌로 하루 2만마리 죽어
유리창 충돌에 의해 안구가 손상된 채 구조된 솔부엉이(왼쪽)와 부리를 다친 새매. 여름철새인 솔부엉이는 충돌사고의 피해를 가장 자주 당하는 종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Q. ‘뉴욕의 인싸 부엉이’ 플라코가 얼마 전 죽었다고 합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건물에 부딪힌 후 인도에 떨어진 채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요. 동물원을 탈출해 1년이나 잘 지냈던 부엉이가 왜 건물에 부딪힌 걸까요. 이런 죽음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A. “플라코의 영원한 비행에 작별을 고합니다.” 1년 전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동물원을 빠져나와 공원과 주변 주택가를 날아다녔던 수리부엉이 ‘플라코’의 죽음에 많은 뉴욕 시민이 애도를 표하고 있습니다. 플라코가 자주 찾았던 참나무 아래에는 시민이 가져온 꽃다발과 부엉이 인형, 그림, 카드 등이 놓였고 그가 자주 목격됐던 곳을 찾아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25일 미국 뉴욕시민들이 센트럴파크의 한 참나무 아래에 부엉이 플라코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갖다놓은 꽃다발, 카드, 그림 등을 바라보고 있다. 이 참나무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평소 플라코가 특히 좋아했던 참나무”라는 제안이 들어와 채택된 나무다. 로이터 연합뉴스

플라코는 지난해 2월 누군가 동물원의 철망에 의도적으로 구멍을 내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2010년 노스캐롤라이나의 조류보호구역에서 태어나 이 동물원으로 왔다고 하니, 전시장에서 무려 13년간이나 살았던 셈이지요.

동물원 쪽은 초반에 플라코를 다시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몇 번이나 실패했고, 탈출 일주일 만에 공원에서 쥐를 잡아먹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플라코를 포획하지 말라는 ‘프리 플라코’(Free Flaco)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지난 2월, 플라코는 탈출 1주년을 맞아 다시금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뉴욕의 핵인싸’로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불과 20여일 만에 사망 소식이 전해지게 된 것이죠.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플라코는 지난 23일(현지시각) 웨스트 89번가의 8층 아파트 건물 안뜰 공간에 추락한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플라코를 발견한 건물 관리인이 보안 영상을 살펴보니, 플라코가 어떻게 죽게 됐는지 찍히지는 않았지만 새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카메라에 부딪히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합니다.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수리부엉이 ‘플라코’ 추모글. 엑스 갈무리

플라코는 어쩌다 생을 마감하게 된 걸까요. 뉴욕타임스는 플라코의 죽음이 ‘단순한 불운’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사망한 플라코는 몸통에 큰 충격을 받은 듯 외상의 흔적이 보였고, 흉골 아래와 간 주변에 상당한 출혈이 발생해 있었습니다. 아직 독성 중독이나 질병 검사 등의 부검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일차적으로는 건물 유리창이나 인공 구조물에 충돌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뉴욕시에서는 해마다 23만 마리의 새가 창문에 부딪혀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새의 유리창 충돌 문제는 비단 미국 만의 일이 아닙니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약 800만 마리의 야생조류가 건물 유리창, 투명방음벽 등에 충돌해 사망합니다. 조류의 눈은 투명하거나 반사되는 유리창을 벽으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연관찰 기록 앱 ‘네이처링’에 시민들이 참여해 기록한 ‘2021년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피해 종 및 개체 수’를 살펴보면 종 구별이 어려운 사체를 제외하고는 멧비둘기, 참새, 물까치, 직박구리 등이 주로 충돌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진세림 계장(수의사)은 “참새, 물까치, 직박구리 등의 국내서 주로 발견되는 조류 종이 충돌 사고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야행성 맹금류의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피해는 전반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플라코와 같은 수리부엉이의 피해가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에서 탈출해 1년간 공원과 맨해튼 도심에서 생활했던 수리부엉이 ‘플라코’가 지난 23일(현지시각) 죽은 채 발견됐다. 위키피디아

“매일 2만 마리의 플라코가 죽고 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설명도 비슷합니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는 “국내에는 수리부엉이뿐 아니라 긴점박이올빼미, 금눈쇠올빼미, 소쩍새, 칡부엉이 등 다양한 올빼밋과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이런 올빼밋과 조류는 모두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희귀 조류지만, 충돌 사고로 굉장히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2016년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유리창 충돌로 인해 구조된 상위 12개 종에는 솔부엉이,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등의 맹금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생조류와 유리창 충돌 보고서’에 실린 2016년 전국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유리창 충돌로 구조한 상위 12개 종. 올빼밋과(붉은 선 안)와 매과(푸른 선 안) 조류 종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다쳐서 들어오는 동물 중 60%가 야생 조류인데 그 중 과반이 이러한 유리창·방음벽 충돌 사고로 인한 부상이라고 하니 인공물이 조류에게 주는 피해는 생각보다 더 광범위한 것입니다.

진세림 계장은 “플라코의 죽음으로 다시금 조류의 충돌 사고가 관심을 받고 있다. 먼 이야기 같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800만 마리가 조류 충돌로 죽고 있다. 하루 2만 마리의 플라코가 매일 죽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립생태원은 조류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5X10 규칙’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투명 방음창이나 유리창에 위·아래로 5㎝, 좌우 10㎝ 이내로 무늬를 넣어 조류에게 ‘이곳은 통과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자는 것입니다.

정부는 2019년부터 이러한 내용의 ‘조류투명창 충돌 저감 대책’을 수립해 이행하고 있고, 공공기관의 경우 지난해 6월부터 조류충돌 저감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25일 야생동물 사진작가 데이비드 레이가 촬영한 수리부엉이 ‘플라코’의 모습. AP 연합뉴스

그래도 플라코가 1년의 자유를 잘 누리다가 생을 마감했으니 다행이 아니냐고요.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들의 이야기는 자유를 갈망하는 동물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플라코가 북미에는 서식하지 않은 ‘유라시아 수리부엉이’(Eurasian eagle-owl) 종이란 점을 지적합니다. 김 재활관리사는 “플라코는 원서식지가 아닌 곳에 덩그러니 풀려나, 자신과 같은 다른 수리부엉이가 단 한 마리도 없는 곳에서 쓸쓸히 생활했을 것이다. 도심 환경에서 생존했다고 해서 행복하게 잘 지냈다고 하기는 어렵다. 척박한 환경에서 버티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과연 플라코를 풀어주는 것이 그 친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이 과정에서 인간들이 반성할 점은 없는지 곱씹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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