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어요] 美 3대 커피 ‘인텔리젠시아’ 한국 1호점… ‘손으로 내린 제철 커피’로 도전장

유진우 기자 2024. 2. 2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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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속에서 신(神)의 얼굴을 보았다.
마이클 와이즈먼, '신의 커피'

커피도 미식(美食)이다.

대다수에게 커피는 일상재다. 그저 습관처럼 마신다. 그러나 긴 커피 역사를 살펴보면 커피 맛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믹스커피 자리를 꿰찬 원두커피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인스턴트 분말 커피 시대는 1999년 스타벅스 등장과 함께 저물었다.

세계 최대 커피 소비국 미국은 진작 이 변화를 맞았다. 1850년대 미국에서는 군용 분말 커피가 유행했다. 120여년이 지난 1970년대 이후 이 자리는 원두로 내린 진한 커피가 차지했다. 1966년 문을 연 피츠커피, 1971년 시작한 스타벅스는 커피콩을 강하게 볶아 이탈리아 스타일 에스프레소를 선보였다. 이 기법을 ‘다크로스팅(dark roasting)’이라 부른다. 커피콩이 까맣게 될 때까지 볶는다는 뜻이다.

커피는 농작물이다. 품종마다 산지(産地)와 수확 시기가 다르다. 강하게 볶으면 이런 특징이 사라진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는 커피콩을 가볍게 볶아 지역별 특성과 계절감을 강조한 커피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커피업계에서는 이를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라 부른다.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는 이 ‘제철 커피’ 바람을 몰고 온 대표적인 브랜드다. 창업자 더그 젤은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작은 로스터리 카페로 이 브랜드를 시작했다. “신선한 원두를 직접 볶아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이후 인텔리젠시아는 찰스 바빈스키, 마이클 필립스 같은 바리스타 챔피언을 배출하는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선 스텀프타운 로스터스, 블루보틀 커피와 소위 3대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명성을 얻었다. 스페셜티 커피란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정한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얻은 커피콩으로 만든 프리미엄 커피를 말한다.

그래픽=손민균

‘스페셜티 커피 대명사’ 인텔리젠시아가 지난 23일 서울 서촌에 첫 매장을 열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미국 바깥에 내는 첫번째 해외 매장이다.

3대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가운데 마지막 주자다. 스텀프타운은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발을 들였다 참패했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충분히 여물지 않았을 시기였다. 그 다음 블루보틀은 연착륙에 성공했다. 2019년 서울 성수동에 1호점을 연 이후 현재 국내에 9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6일 개점 3일 만에 찾은 서촌 인텔리젠시아는 쌀쌀한 날씨에도 새 커피를 맛보려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를 나와 그대로 쭉 따라가니 대로 변에 고즈넉한 개량 한옥 한 채가 나왔다. 한옥 처마 밑 빨간 상자에서 날개 달린 인텔리젠시아 로고가 빛났다. 따로 큰 간판은 없었다.

한옥은 겉으로 큰 통창을 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실내는 한옥이 갖춘 매력을 충분히 살렸다.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는 오래된 원목을 그대로 사용했다. 입구 주변 대청마루에는 작은 소반상을 놓았다. 외국 브랜드지만 서촌이 품은 한국적인 매력을 강조했다.

바리스타들이 일하는 바(bar)는 매장 한가운데 섬처럼 따로 놓였다. 바리스타(barista)는 원래 이탈리아말로 ‘바에서 일하는 사람’, 즉 바텐더라는 뜻이다. 능수능란한 바텐더처럼 이들은 커피를 한잔씩 직접 내렸다.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전자동 기계는 없었다. 대신 이탈리아산 라마르조코 반자동 에스프레소 기계가 쉴새 없이 돌아갔다.

바 반대편에서는 국내서 보기 드문 수동 플레어(Flair)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커피가 방울 져 떨어졌다. 플레어는 전력 없이 사람 힘으로 원두 가루를 눌러 커피를 추출한다. 길쭉한 막대 모양 손잡이를 아래로 당기면 지렛대 원리에 따라 커피가 나온다. 바리스타는 누르는 힘을 조절해 커피 나오는 속도를 미세하게 바꿨다.

플레어 에스프레소 기계는 전력을 전혀 쓰지 않는다. 결과물은 온전히 사람 손에 달렸다. 기계보다 섬세하게 압력과 온도를 조절할 수 있어 바리스타 솜씨가 좋으면 자동 기계보다 훨씬 맛있는 커피를 뽑을 수 있다. 능수능란한 바리스타는 원두 종류 뿐 아니라 그날 습도와 기압, 손님 취향까지 고려해 ‘최고의 한 잔’을 내린다.

플레어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했다. 원두는 ‘블랙캣 블렌딩’을 골랐다. 브라질과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품종을 섞은 인텔리젠시아 간판 원두다. 수확한 지 9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신선한 생두를 볶아 만든다.

먼저 온 손님들은 바리스타가 긴 손잡이를 잡아 당겨 커피 내리는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곳곳에서 중국어와 일본어가 들렸다. 바를 둘러싼 여러 테이블에서는 카메라 소리가 연신 터졌다.

짙고 두꺼운 황금빛 크레마에 덮인 커피를 받아 들자 참기름처럼 고소한 향이 올라왔다. 탄산수로 입을 헹구고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었다. 쌉쌀하면서도 과일처럼 산뜻한 산미가 조화롭게 혀를 덮었다. 이어 원두가 품은 고소함과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기계로 뽑은 에스프레소와 손으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 사이에 놓인 독특한 질감은 길게 여운을 남겼다. 맛에서는 흠 잡을 여지가 없었다.

관건은 가격이다. 인텔리젠시아 서촌에서 플레어 에스프레소 한 잔은 5800원이다. 주세(state tax)를 제외한 미국 현지가(3.95달러·약 5000원)보다 비싸다. 기본 아메리카노는 5500원, 라테는 6400원이다. 보편적인 커피 프랜차이즈에 비하면 가격이 월등히 높다. 차별화한 스페셜티 커피 원두로 내린 핸드드립 커피는 한 잔에 최고 8000원을 호가한다.

다만 남 다른 커피를 찾는 국내 소비자 수준 역시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숙했다. 5년 전 블루보틀 커피가 우리나라에 처음 문 열 때만 해도 값 비싼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는 시각이 다수였다. 전문가들은 “저가 프랜차이즈 커피와 스타벅스가 뿌리내린 한국에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가 자리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농수산식품유통공사 통계 기준 전체 커피시장 5% 안팎이었던 국내 스페셜티 커피 시장 규모는 20%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제 국내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가 와인을 떠올리는 새콤한 과일 향기, 수정과처럼 산뜻한 계피 내음,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 아몬드를 닮은 구수한 맛에 환호한다. 국내 커피 시장을 성숙한 시장으로 바라본다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새 수요가 늘어난 시장이라 판단한다면 ‘직접 내린 제철 커피’에도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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