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무기로 휘두르는 의사들, 이들은 이미 우리 몸을 통제하고 있다

박주석 장애인건강권활동가 2024. 2. 2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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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권력을 말하다 上] 의사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보건의료체계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을 시작으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수차례 반복되었고 보건의료체계를 마비시킬 정도로 영향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왔다. 김재천 HIV/AIDS인권활동가와 이도연 건강돌봄연구활동가, 박주석 장애인건강권활동가는 <프레시안>에 의료계 집단행동의 본질로 정책 거버넌스의 지나친 의사 의존성을 지적하면서 그 안에서 의사집단이 어떻게 의과학 지식을 권력화하고 의료권력을 정치적으로 행사하는지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들 세명은 '의료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다른 두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지난 6일 정부가 2025년 대학입시에서 의대정원을 2000명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전공의협) 등 의료계는 결사반대를 외치며 연일 강경모드다. 의사들의 이권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의협이 의사파업과 같은 집단행동을 했었던 것은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의대정원 늘리는 것을 두고 마치 생존권 투쟁을 연상케 하는 이들의 대응이 우습기도 하다. 차라리 생존권 싸움이라면 공감이라도 하겠다.

전체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의 95% 이상을 민간의료가 장악하고 있어서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이미 시장화 되어있다, 의료서비스 공급자인 의사를 의료시장에 더 늘리겠다는데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면 반대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의사소득이 최상위권이며 국민 1000명당 의사 수는 3명이 채 안 되는 최하위권으로 절대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국가이다. 즉, 의대정원 늘린다고 그들의 생존권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 동안 의사집단에 나온 발언들을 고려해 볼 때, 지난 20여년(건강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이 있었던 2000년 기준)동안 공고하게 지켜왔던 의료전문가로서의 전문성과 권위가 무시되었고 향후 의사로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그들은 의약분업이나 의사면허취소, 의대정원확대 등 의사 직역과 관련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파업을 무기로 휘두르는 게 가능한가? 무엇보다 의사가 없으면 마비되는 의료시스템을 만든 지나치게 의사에 의존적인 한국의 보건의료체계 때문이다.

▲전공의 집단이탈 일주일째인 26일 대구 한 2차 병원 수술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에서는 의사가 없으면 모든 의료 업무가 마비가 될 정도로 의사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의과학 전문성을 이유로 모든 의료적 행위를 의사 고유권한으로 두는 것을 의료법에 규정했고, 또 의료법에서 모호한 부분들은 의사의 권한이라고 경직된 해석을 한다. 의과학적 지식이라고 하는데 의사가 아닌 사람이 그게 맞는 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 의학과 의료에서 100%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의사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하나의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이 설령 의학과 무관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흔히, 말싸움에서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고’하면 이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2018년에 소아당뇨를 앓는 자녀를 위해 의료기기를 해외직구로 구매했다가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고발당하는 사례가 있었고, 학교에서 보건교사가 인슐린 주사를 놓는 문제를 두고는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무산되었다. 보건기관이나 약국 등에 혈압/혈당측정기를 설치하는 일을 두고 ‘의사 직역’이라며 의협이 반발하기도 했으며, 병원에서 석션(가래흡입)과 같은 일상적으로 필요한 행위도 실제적으로는 의사가 아닌 요양보호사가 하고 있음에도 모두 의사가 해야 하는 의료행위로 규정함으로써 현장에서는 혼란이 생기고 있다.

의료인이 개별 가정에서 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의료인이 해야 하는 것으로 법적 해석을 함으로써 실질적 필요로 인해 가족이나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다른 인력들이 할 수밖에 없는 행위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간호사가 불법이지만 의료현장에 만연해 있다는 것은 의사 자신들이 빚어낸 결과이다. 즉, 모든 의학지식과 기술이 의사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의사만이 해야 하는 의료행위라고 규정된 행위들도 교육과 훈련 그리고 숙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이 수행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 부족과 의대 쏠림 현상의 본질적 문제는 의사에 대한 지나친 권한 집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과학 지식은 의사만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접근권을 의과대학 입학자로 제한함으로써 의사가 지식을 독점하도록 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행사하도록 한다.

의협과 같은 의사집단은 의사면허를 가진 자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권위를 권력으로 정치화 하는 것이 필요했고 오랫동안 보건의료체계 거버넌스에 개입함으로써 집단적 권력을 강화해 왔다. 의협은 강화된 그들의 정치적 권력을 활용해 보건의료체계를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왔다. 이들이 시도한 방법을 보면 '돈이 되느냐? 수익이 남느냐?', '의사의 권위가 유지되느냐? 침해받느냐?'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실례로 2018~2019년에 의협은 환자를 가려 받겠다고 '진료거부권'을 입법화 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고 있고, 심지어 치료제가 있어 약을 복용중인 감염병 환자가 감염위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사 자신이 치료하기 싫은 것을 '혹시라도 감염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하는, 임상적 근거를 부정하는 아주 비과학적인 행위를 옹호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시기에 정부가 노숙인 진료시설을 확대하려고 하자 의협이 '민간의료기관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라며 자신들과 협의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를 압박하여 무산시키기도 했으며, 2022년 국정감사에서는 인공임신중절수술 건강보험 급여화에 대해 질병 및 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하였으며, 임신중지의약품 허가여부 관련해서도 산부인과학회 및 산부인과의사회가 반대하며 결국 의약품허가를 무산시켰다.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상병수당 관련 토론회에서 의협관계자는 상병수당 재정을 건강보험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건강보험재정은 의료공급자인 의사들의 것인데 자신들이 가져갈 수 있는 전체 파이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쾌한 심정을 드러낸 진심이 아닐까?

그동안 정부는 보건의료체계 거버넌스 안에서의 의사결정과정을 지나치게 의사집단에 의존해 왔고, 의협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해 거버넌스 안에서 정부를 협상대상으로 건강보험수가, 공공병원, 필수의료, 의료인력 등 국민의 건강권 현안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보건의료체계가 의사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이유에는 의료지식 생산은 전문가들만이 할 수 있고 전문가에 의해서만 권위를 가진다는 믿음이 크게 차지한다. 의료지식은 권력이 되었으며, 의료권력을 가진 의사집단은 정치화되어 우리의 몸을 이미 통제하고 있다.

[박주석 장애인건강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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