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버려드려요” 직접 나선 명동 상인들

김승현 기자 2024. 2. 27.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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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째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 앓자
상인들, 구청과 협의해 봉투 배치
지난 25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노점 상인들이 4개 국어로 ‘쓰레기 버려드리겠습니다’라고 적힌 초록색 안내 팻말과 종량제 쓰레기 봉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저희 삶의 터전인 명동 쓰레기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명동파출소 앞에서 떡볶이와 어묵 등을 판매하고 있는 박모(55)씨가 자신의 노점상 철제 기둥에 붙어 있는 초록색 안내 팻말을 바라보며 말했다. 팻말에는 ‘쓰레기 버려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박씨는 “이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손에 들고 망설이곤 했는데 팻말을 보고서는 더 편하게 쓰레기를 건넨다”며 “이렇게 상인들이 쓰레기를 버려주는 게 효과적인 것 같다”고 했다.

명동 거리는 최근 밤만 되면 무단 투기된 쓰레기가 가득 쌓였다. 코로나 이후 상권이 회복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는데, 쓰레기통은 적었기 때문이다. 본지가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던 2015년부터 계속 제기된 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2024년 2월 19일 자 A12면) 중구청과 명동 상인들은 문제 해결에 나섰다. 노점상 상인들은 중구청과 협의해 쓰레기를 처리하기로 했고, 외국인 관광객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배치했다.

이 같은 노력에 명동 길거리는 변했다. 지난 22일 밤 9시쯤 찾은 명동길에서는 쌓여 있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관광객들은 음식을 먹은 뒤 나온 플라스틱 통, 종이컵, 나무 꼬치 등을 노점상에 비치된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 이날 오후 10시 30분쯤 영업을 마치고 뒷정리를 시작한 상인들은 가득 찬 쓰레기봉투를 묶어 들고 쓰레기 배출 장소로 향했다. 명동길 초입 화단과 명동예술극장 앞 벤치의 쓰레기양을 관찰해 보니, 지난 주말보다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당시 명동에는 길거리, 벤치, 화단은 물론 공유 자전거 바구니에도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 영업을 마친 점포 앞에도 쓰레기가 있었다.

노점에서 자장면을 파는 한모(56)씨는 “이번 조치 전엔 쓰레기통이 없어 두 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보면 안타까워 대신 버려줄지를 물어보곤 했다”며 “안내문 덕분에 외국인들도 덜 미안해하며 쓰레기를 건네고, 거리도 깨끗해져서 좋다”고 했다. 화장품 가게 앞에서 닭강정을 팔고 있는 상인 A(45)씨는 “거리가 지저분하면 손님들도 오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에서 남자 친구와 명동을 찾은 김진영(28)씨는 “작년 10월에 방문했을 땐 닭꼬치를 먹고 나무 꼬치를 버릴 데가 없어서 역까지 들고 가서 버렸던 기억이 있다”며 “오늘은 탕후루를 먹었는데 다음에 방문한 붕어빵 가게에서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셨다”고 했다. 미국 뉴욕에서 온 마이클 포스터(38)씨는 “다 마신 음료수 빈 통을 들고 다녔는데, 음식을 구매한 가게 상인이 대신 버려줬다”며 “여행 오기 전에 들은 것보다 길거리도 상당히 깨끗한 것 같다”고 했다.

이 같은 명동의 변화는 중구청과 노점상 상인들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중구청 관계자는 “명동의 쓰레기 문제가 주목받은 이후 중구청과 명동상인회, 명동관광특구 관계자들이 모여 논의해 여러 대안을 마련해 시행 중”이라고 했다. 명동 상인회 관계자는 “상인들에게 팻말을 나눠주며 부착을 독려하고 있다”며 “노점에서 쓰레기를 처리한 지 5일 정도 지났는데 거리에 쓰레기가 확실히 줄었다”고 했다.

구청은 환경미화원들이 근무하지 않는 야간 시간대(자정 이후)에 명동 거리에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대체 청소 인력 10명을 투입한 상태다. 중구청 관계자는 “지난 22일 야간 합동 단속을 진행해 쓰레기 투기 상황을 점검했는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쓰레기 문제를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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