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로 참여한 신중현의 한국 첫 록 음반… 첫 여성밴드로 7년간 해외 공연

윤수정 기자 2024. 2.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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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42] 가수 장미화
1977년 발표한 자신의 독집 음반을 품에 안은 가수 장미화. 그는 “표지의 통굽 구두는 내가 전성기 시절 유행시킨 패션이자 트레이드 마크였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음색이 굉장히 특이하다.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목소리다.”

가수 장미화(본명 김순애·78)는 1965년 서울 남산의 한 커피숍에서 신중현에게 들은 이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신중현이 이끌던 인기 미8군 그룹사운드 ‘Add4(애드포)′의 객원 보컬을 제안받은 순간이었다. “직전에 제가 ‘KBS 아마추어 톱싱어 대회’ 대상을 탔는데, 거기서 들은 제 음색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더군요.”

신중현의 말은 장미화 인생에 ‘가수’ 수식어를 처음 마주하게 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1964년 신중현이 Add4 이름으로 낸 첫 정식 음반에는 ‘노래 장미화’라고 새겨진 두 곡,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굳나읻 등불을 끕니다’가 함께 실려 있다. 신중현이 국내 최초의 창작 록음악 ‘빗속의 여인’, 펄시스터즈 히트곡 ‘커피 한 잔’의 원곡인 ‘내 속을 태우는구려’ 등을 함께 선보인 한국 대중음악사의 보물과도 같은 앨범이다. 장미화는 “국내 최초의 녹음실로 알려진 서울 ‘장충 녹음실’에서 테이프 녹음기에 긴 전선으로 연결된 마이크 하나를 높이 걸어두고, 신중현씨와 Add4 멤버들이 즉석에서 악기로 반주한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고 회상했다. “신중현씨가 녹음을 지도하며 ‘미화야, 바이브레이션(떨림 창법) 넣지 말고 그냥 네 목소리, 악보 그대로 불러. 그게 더 좋아’라고 했죠. 기억으로는 녹음 시점이 1965년이었는데, 앨범에는 1964년으로 적혀 의아하지만…. 그때 장면만은 눈에 선해요. 신중현씨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죠.”

◇미8군 담장을 넘어 해외로 뻗은 장미

이후 장미화는 “대학 1학년 재학 중 휴학계를 내고 Add4의 막내 객원 보컬로 들어가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미8군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부모의 반대가 뒤따랐지만 “서대문구 서소문에서 다섯 살 때부터 대문을 열고 온종일 길거리를 향해 노래를 부르며 가수를 할 거라 마음먹은 내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고 했다. “미8군은 어렸던 저조차 알 만큼, 엄격한 등급제를 통과한 실력 있는 가수만 서는 큰 무대로 유명했고요.” 공연 때는 페툴라 클라크의 ‘Downtown’, 앤 마그렛의 ‘Slowly’ 등을 주로 불렀는데, “흑인 병사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 폭발이었다”고 했다. “신중현 선생님이 ‘다이애나 로스랑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했는데, 본토 사람들이 듣기에도 본 고장 팝 느낌이 제대로 난다고 난리가 난 거지.”

장미화가 참여한 신중현의 첫 ‘애드포’ 정규 음반의 복각 한정판. 애드포 멤버인 서정길이 복각했다.

장미화는 “당시 Add4는 신중현씨를 포함한 멤버 네 명에 보컬은 메인 언니와 막내인 나 2명, 무용수가 5명, 로드 매니저 2명, 보통 13명이 팀으로 움직였다. ‘재키’라는 애칭으로 불린 신중현씨가 키가 작고 조그마한 체구에도 몸집보다 큰 기타를 신들린듯이 칠 때마다 미8군 객석이 그야말로 뒤집어졌다”고도 회상했다. “늘 삼각지에서 집결해 공연 갔다가 공연 후에도 같은 곳을 거쳐 집집마다 트럭이 다시 데려다 줬죠. 신중현씨는 아예 삼각지 인근에 단칸방을 구해놓고, 제일 먼저 귀가했어요. 솜이불에 쏙 들어가 또 기타 치려고. 열정이 남다르셨죠.”

이후 장미화는 1966년, 국내 최초 걸그룹 ‘김시스터즈’의 매니저였던 ‘맥맥퀸(Bob McMackin)’을 통해 “당신을 중심으로 한 해외 진출 걸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로지’란 이름으로 1세대 여성 5인조 그룹사운드 ‘레이디버드’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악단장 반주 없이 멤버 전원이 직접 연주하며 록과 팝을 노래하는 이들의 활동은 당시 매우 드문 형태였다. “저도 보컬이지만 드럼을 배워 드러머 언니(루비)와 번갈아 연주와 노래를 했죠. 지금의 이태원 소방서 인근 지하 연습실을 구해 6개월간 트레이닝도 거쳤어요. 키보이스 김홍탁씨가 와서 공연 레퍼토리를 알려주고, 무용도 배우고…. 6·25 전쟁의 그림자가 있던 때라 ‘해외에서 북한 사람들에게 납치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안보 교육을 거쳐 여권도 받고요.”

1968년 캐나다 지역 신문에 난 ‘레이디 버드’ 기사. 윗줄 가운데가 장미화.

그렇게 진출한 첫 해외 무대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센스호텔’, 그룹사운드 형태 국내 걸밴드 최초의 미국 진출 기록이 됐다. “한번은 ‘Unchained melody’로 유명한 라이처스 브러더스와 카지노 홀 중앙 원형 스테이지를 반으로 갈라 벽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무대에 올라 번갈아 노래했죠. 한국에서 라디오로만 듣던 스타를 직접 보니 가슴이 벅차더군요.” 활동 중간에는 팀 이름을 ‘서울 키튼스’로 바꿨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서울의 이름을 해외에도 제대로 알리고 싶었죠.”

1968년 미국 매디슨 지역 신문이 촬영해 실은 ‘레이디 버드’의 사진. 윗줄 오른쪽이 장미화.

이후 장미화는 미국,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 여러 국가를 7년간 돌며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도착해선 쉴 틈 없이 차에서 먹고 자며 다음 공연지로 이동하기 바빴고, 하도 노래를 많이 해 성대가 찢어져 피가 나고 마비가 올 지경이었다”고 했다. “악착같이 팝송 들으며 영어사전 뒤져 단어 외우고, 마트 가서도 현지 말만 쓰며 영어를 익혔어요. 인종차별도 숱하게 당했어요. ‘햄버거 먹어봤니’란 말을 많이 들었죠. 동양 애들은 머리통이 납작하고, 가난하다고. 마늘 냄새 난다는 말에는 이렇게 받아쳐 줬고요. ‘너네 겨드랑이 암내가 더 심해’라고. 하하.” 베트남 공연 당시에는 1968년 구정 대공세가 일어난 직후 시기와 겹쳐 “아래서 쏘는 총알을 피해가는 헬리콥터를 타고 위문 공연을 다닌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바람머리, 배꼽티, 통굽 유행시킨 ‘안녕하세요’

1973년 장미화는 해외 순방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귀국했다. 팀 내 다툼이 원인이었다. 미8군에선 이름을 날렸지만, 정식 국내 방송 데뷔는 없던 탓에 ‘장미화’ 세 글자가 국내에선 거의 무명이던 시절이었다. “손에 딱 100불 들고 서울에 돌아와 막막한 때였죠.” 그런 그에게 손을 내민게 미8군 가수들을 자주 기용했던 TBC 방송국 ‘쇼쇼쇼’의 유명 연출가 ‘황정태 PD’였다. ‘안녕하세요’ ‘웃으면서 말해요’ ‘봄이 오면’ 등 장미화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던 첫 데뷔 음반 수록곡 작곡가 여대영씨를 소개해 준 것도 바로 황 PD였다. “MBC 유명 악단장이었던 여대영씨는 저 때문에 처음 가요 작곡을 하기 시작했고, 저는 ‘안녕하세요’를 어디다 쓰는지도 모르고 그저 ‘가사가 요상하네’라며 녹음했죠. 이후 음반사도 황 선생님이 소개해 주시고…. 내겐 정말 은인 같은 분이죠.”

‘안녕하세요’로 장미화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 첫 독집 음반(1973).

그렇게 만들어진 첫 독집 앨범은 전 국민적인 인기와 함께 ‘장미화 스타일 유행’을 일으켰다. LP 표지에 찍힌 사진 속 장미화의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머리 스타일이 전국 여성들의 마음을 훔친 것. 이후 통굽 신발, 배꼽티, 나팔바지 등 장미화가 방송에 입고 출연하는 옷들마다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장미화는 최근 K팝 스타들의 해외 진출 활약을 보면 “내 미8군과 레이디버드 시절 열정이 떠올라 가슴 벅찬 동시에 아쉬움도 든다”고 했다. “미8군 시절 이후에 오히려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여성 그룹사운드 계보가 제대로 이어져 내려오지 못하는 게 아쉬워요. 미8군 시절 활동 가수들의 기록은 많이 잊히지기도 했고요. 다들 시대를 좀 더 늦게 타고 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1세대 원로 가수들의 모임 ‘예우회’와 함께 주기적으로 공연을 여는 이유다. “키브라더스, 키보이스, 검은나비, 영사운드, 데블스, 사랑과평화 등을 거친 전현직 원로 가수들과 3월 말 CD 음반 발매를, 5월 16·17일에는 공연을 계획 중입니다. 잊힌 한국 대중음악사의 태동과 무대들을 마지막까지 기록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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