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 흩어지는 공동체Ⅱ] 2. 소양동과 캠프페이지

오세현 2024. 2. 2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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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캠프페이지는 춘천 소양동의 흐름을 바꿔놨다.

지금이야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구도심이지만, 소양동은 100여 년 간 춘천의 중심지였다.

1975년 2만1460명이던 소양동의 인구는 1985년 1만7393명으로 급감했다.

1995년 9727명으로 1만명선이 무너진 소양동은 지난 1월 기준 4098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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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활기찼던 신문화 도시, 100년 영광의 시대 저물다
미군부대 수입품 지역상권 활기 ‘북적’
관공서 밀집지 식당·숙박업소 성황
도청 아래 기와집골 “그 당시 계획도시”
1960년대까지 요선·서부시장 전성기
명동 상권 이동·신흥 주거지역 등장
소양동 인구 급감 ‘쇠락’ 적막함 가득
춘천 중심지에서 구도심으로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캠프페이지는 춘천 소양동의 흐름을 바꿔놨다. 군부대는 새로운 문화가 들어오는 창구였다. 미군부대를 통해 들어온 수입물품은 지역 상인들의 새로운 수입원이 됐고 이들을 상대로 하는 ‘양키시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끌었다.

지금이야 고령화와 인구감소를 걱정해야 하는 구도심이지만, 소양동은 100여 년 간 춘천의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 간부들이 몰려 살았고 관선 지사들도 소양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모(89)씨는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춘천을 찾았는데 당시 비포장도로여서 물을 뿌린 기억이 난다”며 “그러다가 도로가 생겼는데 춘천에서 제일 먼저 생긴 도로”라고 기억했다.

관공서 밀집지역이어서 공무원들이 유독 많았다. 출장 온 이들 대부분은 소양동에서 묵었고, 이들을 받으려는 여인숙도 줄지어 들어섰다. 지금도 도청 일대는 숙박업소와 아침부터 운영하는 식당들이 적지 않으니 그 역사가 반세기간 이어진 셈이다.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지만, 도청 아래 기와집골은 80여 년을 이어온 마을이다. 백석동이라고도 불렸는데, ‘쌀 백 석을 마련해야 들어와 살 수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주민들은 기억했다. 위동한(76)씨는 “기와집골의 형태는 1930년대에 형성됐으니 지금으로 치면 ‘계획도시’ 였다”며 “초가집만 있던 때에 기와집을 짓겠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아파트를 지은 거나 다름 없다”고 했다.

1950~1960년대는 요선시장과 서부시장의 전성기였다. 이모씨는 “요선시장이 춘천에서 제일 큰 시장이었다”고 했다. 김창묵(91) 춘천서부시장사업협동조합 전 이사장 역시 “1950년대~1960년대는 서부시장이 춘천에서 1등 시장이었다. 명동보다 여기가 더 잘됐었다”고 했다.

▲ 사진 위·아래 옛 캠프페이지. 소양동은 캠프페이지가 주둔한 50년 간 급격한 성장과 쇠퇴를 겪었다. 본사DB

공무원과 미군을 주축으로 동네는 늘 북적거렸다. 이씨는 “장사가 잘 되니까 동네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대학생들도 요선시장 쪽에 세 들어 살기도 했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건들을 파는 이들도 있어서 활기찬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1980년 들어 상권이 중앙시장으로 넘어가면서 도시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이씨는 “명동이 생기면서 요선동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잘 되는 곳에만 있다는 ‘쓸이꾼’이 중앙장에 몰리면서 요선동이 끝났다”고 했다.

때마침 1980년 이후 후평동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0년 후에는 퇴계동과 석사동이 신흥 주거지역으로 떠올랐다. 1975년 2만1460명이던 소양동의 인구는 1985년 1만7393명으로 급감했다. 인구 감소에는 가속이 붙었다. 1995년 9727명으로 1만명선이 무너진 소양동은 지난 1월 기준 4098명을 기록했다.

사람이 떠나간 그 자리는 적막과 고요가 채우고 있다. 오세현·양유근·이정호·이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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