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심비’ 따지는 MZ가 ‘리퍼브’에 빠진 이유? [밀착취재]

박윤희 2024. 2. 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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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드아울렛, 가전부터 생활용품·먹거리까지 ‘원스톱쇼핑’
지난달 신선식품 매장 오픈 후 매장 ‘활기’
경기 불황과 치솟는 물가에 ‘실속형’ 상품들의 인기가 어느 때보다 높다. 그중에서도 제품 성능에는 이상이 없지만 유통과정에서 박스가 훼손되거나 단순 반품 제품을 최대 90%까지 세일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리퍼브’ 상품 인기가 매섭다.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가구나 대형 가전에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육아, 홈인테리어 용품부터 애견, 캠핑 용품, 신선식품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25일 오전 경기 파주에 있는 종합 리퍼브 쇼핑몰 ‘올랜드아울렛’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분주하게 제품을 분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대지면적 총 5700㎡로 4개동으로 나눠 가전과 가구, 생활용품 전문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차장 바로 옆 생활용품동 ‘올소(allso)’ 매장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는데, 한 달 전 새롭게 론칭한 신선식품 코너 계산대에 길게 줄을 선 것이었다. 

리퍼브(refurb)는 ‘새로 꾸민다’는 뜻을 가진 ‘리퍼비시(refurbish)’ 의 준말로 리퍼브 상품은 유통 과정에서 흠이 생겼거나 전시됐던 상품을 새롭게 단장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박스 개봉 후 단순 변심 등으로 반품된 제품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재탄생한다는 측면에서 ‘자원 재활용’으로 인식되면서 친환경 가치 소비에 중점을 두는 고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먼저 가전동을 둘러봤다. 매장에 들어서니 냉장고와 에어컨 등 대형 가전부터 차량용 청소기, 1인가구용 공기청정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전시돼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와 다양한 상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품마다 빨간 글씨로 적힌 가격표를 보고 ‘리퍼브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위니아 479L 4도어 김치냉장고가 40% 할인된 99만원에, 418L 스탠드 김치냉장고가 43% 할인된 189만원에 각각 판매되고 있었다. 위니아 16kg형 의류 건조기는 49% 할인된 59만원으로 가격이 표기돼 있었다. 1인가구에 적합한 소형 가전들도 한 곳에 비치돼 있었다. 삼성전자의 9kg 의류 건조기는 32% 할인된 72만5000원, 딤채 소형 냉장고는 42% 할인된 65만원에 구입이 가능했다. 

가전동 1층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제품 가격을 비교하고 있다.
인터넷 최저가보다 저렴한 상품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가전동 2층에 있는 LG전자 OLED TV 77인치형이 51% 할인된 389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동일 상품 인터넷 최저가는 472만원이었다. 가격표 옆에 숫자가 1~4까지 적혀 있는데 3번과 4번에 엑스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리퍼의 특성상 다품종 소량만 들어오기 때문에 재고를 실시간으로 표기한 것이다. 

매장 관계자는 “TV의 경우 해외로 판매했던 제품들을 역으로 구매해 매장에서 리퍼브로 판매하고 있다. 미세한 스크래치나 고객 변심에 의한 단순 반품 제품들이 대부분인데 국내 인터넷 최저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어 찾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에어컨과 청소기도 43~51%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매장에서 만난 한 소비자는 “삼성 비스포크 청소기를 보러 왔다가 비슷한 가격에 고사양 모델이 있어 구매를 고려 중이다. 미세한 스크래치가 있지만 사용하다 보면 생기는 생활스크래치라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해당 제품의 인터넷 최저가는 92만원이지만 매장 판매가는 79만원으로 13만원가량 저렴하다. 실제 제품을 구입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대다수 고객은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전동 2층에 위치한 TV & 노트북 전시장.
노트북 코너로 눈을 돌리니 고사양 제품들이 즐비했다. 가장 할인 폭이 큰 제품은 ASUS 게이밍노트북 PC ROG Zephyrus M16 모델이었는데, 정가에서 60% 할인된 129만원에 구입이 가능했다. 해당 상품 인터넷 최저가를 검색하니 약 237만원가량에 판매되고 있었다. 

가구동에 들어서니 한샘, 씰리 등 고가 브랜드제품도 눈에 띄었다. 인테리어잡지에서 볼법한 트렌디한 디자인들도 몇 매장 전면에 배치돼 있었다. 12자(3510㎜) 붙박이장 가격표를 확인하니 449만원에서 56% 할인된 198만원에 판매중이었다. 독특하게도 리퍼브가 아닌 정상 제품이라는 태그가 붙어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같은 모델 리퍼브상품 반응이 좋아 정상제품을 오더해서 들여와 전시했다. 이 제품도 이미 판매가 완료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대다수 가구 역시 50%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할인율이 높은 제품들은 역시나 판매완료 표기가 돼 있는 것이 많았다.

소비자 입장에선 리퍼브제품을 선택하는 만큼 기능상 문제나 AS에 대한 걱정을 할 수 있는데, 이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돼 있다. 올랜드아울렛에서 판매하는 리퍼브 가전은 6개월, 정품은 1년까지 무상 AS 및 반품이 가능하다. 이후에는 유상으로 AS를 받을 수 있다.

서동원 대표는 “3만원짜리 믹서기를 구입해도 6개월 동안은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현재 자체 AS기사가 상주하고 출하 전 작업 인원이 공장에서 제품 하자를 살피고 있다. 대형 가전 수리 기사를 부르더라도 모든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고 있어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 가전부터 생활용품, 먹거리까지 ‘원스톱쇼핑’ 구현

올랜드아울렛은 가전과 가구 외에도 ‘올소’를 통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육아나 출산, 홈인테리어 제품부터 화장품, 여성 가방, 운동기구, 애견, 캠핑 용품까지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제품을 100% 리퍼브 상품으로 인터넷 최저가 대비 20~70% 할인판매하고 있다. 

특히 한 달 전 ‘올소’ 매장 내 새롭게 론칭한 신선신품 코너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파주에 거주 중이라는 40대 소비자는 “물가가 너무 올라 삼겹살 한 근에 1만원을 줘야 살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반값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예전에는 두 아이와 주말에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장을 봤는데 못 먹어 버리게 되는 식품도 많고 물가가 너무 비싸 감당이 안 되더라. 최근에는 그날 먹을 먹거리는 여기 들러서 사가고 바로바로 소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마트를 들를 때 구입하는 정도의 식품을 장바구니에 담아봤다. 부대찌개와 순두부찌개 밀키트 각각 1팩(각 5000원), 토마호크 스테이크 500g(2만4000원), 찌개용 한돈 뒷다리살 한 팩(3000원), 곁들일 샐러드 2팩(3000원)과 딸기(3000원) 등을 담으니 총 4만5000원이 나왔다. 시중가와 비교하니 토마호크스테이크는 42%, 부대찌개 밀키트는 69%, 딸기는 70% 저렴했다. 

평소 마트에서 사는 양만큼의 식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아봤다. 구입 후 동일 상품을 인터넷으로 비교해보니 50%가량 저렴하게 산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 신선식품 역시 ‘리퍼브’ 제품이다. 신선식품 론칭을 위해 3년간 준비했다는 서 대표는 “유통기한이 짧게는 하루 남은 제품도 있기 때문에 매일 상품을 관리하고, 판매되지 않은 상품은 바로 진열대에서 빼야 한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면서 “재고관리도 바로 해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도 더 많이 배치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채우는 대로 물건이 빠지는 진열대를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지난달 신선식품 코너 론칭 후 입소문을 타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2배로 늘었다”며 “앞으로 전국 매장에서 신선식품 코너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존 마트와 협업한 ‘숍인숍(shop in shop)’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현재 농협하나로마트 천안 아산점에 숍인숍을 오픈, 기존 마트에 판매하지 않는 소형가전 등 리퍼브 상품을 배치해 ‘윈윈’ 전략을 펼치고 있다. 또 고객들을 위해 매장 한쪽에는 ‘천원의 행복’ 코너를 마련해 지역 주민들이 찾을 때마다 다른 상품을 저렴하게 ‘득템’할 수 있는 이벤트도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사용될 계획이다. 

서 대표는 향후 리퍼브 시장이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 그는 “리퍼브 아울렛 장점은 가전과 가구 등 다양한 제품을 한곳에서 비교하고 살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이 더해져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고객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현재 전국에 30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연말까지 50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이커머스 성장과 함께 몸집 키운 리퍼브 시장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확장하고 있는 리퍼브 시장이 커지고 있는 이유로 이커머스 등 ‘온라인시장 확장’을 꼽을 수 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보지 않고 구입한 소비자들이 미세 흠집 등을 이유로 반품하는 상품이 많아지면서 리퍼브 시장 규모도 커지게 됐다. 리퍼브 제품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하고, 판매자 입장에서는 재고를 정리하는 이점이 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올랜드아울렛 가구동 전경.
리퍼브 시장이 커지면서 대기업도 공략에 나서고 있다. 롯데마트에는 리퍼브 숍 브랜드 4곳(올랜드&올소, 그리니, 두원, 줌마켓)이 입점해 있다. 부산에는 가구·가전뿐 아니라 생활용품 등을 다루는 리퍼브 매장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1~10월까지 롯데마트 리퍼브 상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쿠팡은 지난해 2월 리퍼브 매장 ‘반품마켓’ 출시 후 3개월 만에 35% 이상 이용자 수 증가량을 보였다고 밝혔다. 11번가도 지난해부터 리퍼브 매장 ‘리퍼블리’를 오픈, 운영하고 있다. 티몬도 ‘리퍼임박마켓’을 운영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장기화로 리퍼브 상품이 기업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젊은층도 리퍼브로 눈을 돌리고 있어 해당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파주=글·사진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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