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미술관 산책 <7>] 화가는 왜 자기 얼굴을 그림에 그렸을까

정철훈 2024. 2. 2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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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운성, ‘가족도’, 캔버스에 유화, 1930년대, 대전프랑스문화원. 사진 위키백과 2 라파엘로, ‘아테나 학당’, 프레스코화, 1510~11년, 바티칸 사도 궁전. 사진 위키백과 3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캔버스에 유화, 1610년, 보르게세 미술관. 사진 위키백과

1999년 가을, 프랑스 파리에 한 한국인 유학생이 나타났다. 그는 연구자료를 찾기 위해 여러 화랑이나 골동품점을 찾아다니던 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골동품점에서 우리에게는 익숙한 한복을 입은 그림을 발견한다. 명절날 대가족이 고운 한복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은 모습 같은 이색적인 그림이었다.

파리의 골동품점에서 대가족이 입은 한복 그림을 보다니! 유학생은 그 순간 믿기지 않는 현실에 자기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바로 배운성의 ‘가족도’가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대청마루가 있는 한옥을 배경으로, 중앙에는 가족의 중심인물인 할머니와 아들 부부가 있고, 17명의 대가족 구성원은 모두가 제각각의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어느 집에나 있던 흑백 가족사진처럼,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그리운 고향과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는 누구에게나 추억이 되는 그림이다. ‘가족도’를 그린 작가 배운성은 1999년 그의 그림이 파리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크게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다. 그런데 ‘가족도’는 어떤 이유로 파리의 골동품점에서 발견된 것일까.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럽 미술 유학생이었다. 당시 서구로 유학을 갔다면 부잣집 자제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당시 서울의 거부 백인기(白寅基)의 집안에 들어가 일을 도왔다. 22세였던 1922년 거부의 아들 백명곤이 독일 유학을 떠났을 때 동반하여 독일로 왔다가, 아들 백명곤이 와병으로 귀국할 때 항공료가 없어 혼자 독일에 남게 되면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바로 이 ‘가족도’가 백인기의 가족들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 증거다.

배운성의 ‘가족도’가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작가가 그의 얼굴을 이 그림에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림 왼쪽에 겸손한 자세에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다. 자기 전신을 다 드러내지 않고 그린 모습에서, 자신이 그림 속에서 주목받지 않으려고 하는 배려심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복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구두를 신고 있는 모습은 서구문화를 체험한 그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철훈미술 칼럼니스트,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아테나 학당’과 라파엘로의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는 ‘그림 속의 숨은 작가 찾기’다. 로마 바티칸의 사도 궁전 벽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유명한 프레스코화인 ‘아테나 학당’은 르네상스 미술의 걸작으로 꼽히는 그림이다. 그러나 ‘아테나 학당’은 크기나 기법이 출중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림에 등장하는 다양한 철학자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배운성의 ‘가족도’처럼 그림을 그린 작가 라파엘로가 그림의 한쪽에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유명하게 된 작품이다.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나 학당’의 중앙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다. 그림에서 왼쪽 무리는 플라톤의 사상을 지지하는 철학자들이, 오른쪽 무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계승한 철학자들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근경과 원경을 기준으로 원경에는 철학자들이, 근경에는 과학자, 수학자 및 예술가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모든 학문의 기본이 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르네상스적인 사상이 나타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왼쪽에 있는 플라톤은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는 이상세계의 관념론을 주장한 것을 상징한다. 오른쪽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 책을 들고 현실 세계의 행복을 중시했기에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는 몸짓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은 플라톤의 얼굴이다. 눈썰미 있는 독자들도 알 수 있듯이 어디선가 본 듯한 플라톤의 얼굴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이다. 아마도 라파엘로가 자신보다 연장자이며, 존경하는 선배인 다빈치를 이상세계를 주장한 플라톤의 얼굴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숨은 작가 라파엘로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그림의 전경 오른쪽 끝에서 관객들을 보듯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자화상에서도 검은 모자를 쓰고 있곤 했는데, ‘아테나 학당’에서도 자기 모습을 흡사하게 표현했다. 라파엘로는 역사 속에서 시대정신을 주장한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을 그린 ‘아테나 학당’에 자기 얼굴을 의도적으로 삽입함으로써 자신도 이들의 정신과 융합되기를 바란 것으로 보인다.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캔버스에 유화,1805~07년, 파리 루브르미술관. 사진 위키백과

이중적 자화상을 표현한 작품들

카라바조는 극단의 비극적인 모습으로 자기 모습을 그림 속에서 표현한 작가다. 주로 그가 사용한 표현 방식은 고통받는 자아의 모습이다. 그가 죽기 직전에 그렸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은 그의 이러한 생각을 잘 나타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목이 잘려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골리앗의 모습을 작가는 자기 얼굴을 차용하여 표현했는데, 이는 아마도 그의 방탕한 범죄자 수준의 사생활에 대한 참회의 모습이 아닐까.

1804년 12월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을 묘사하는 그림도 있다. 황제가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은 황후 조제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장면을 포착해 그리고 있다. 황제의 실제 신체는 작고 뚱뚱한 모습인데, 이 작품에서는 키가 큰 건강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면 중앙 2층 높은 곳에는 황제의 어머니가 자리하고 있고, 대관식 현장은 많은 군인과 여성이 둘러싸고 있다. 많은 인물 중에 작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도 참석하고 있었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대관식 장면에서도 자신을 장미꽃 같은 훈장을 차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는 나폴레옹 시대 최고의 선전가로서 훈장을 단 그의 모습에 대단한 자긍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화가들이 자기 모습을 그려 넣은 진짜 이유

자화상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작가 자신의 자의식이 들어간 표현 방법이다. 특히 르네상스 시기에는 예술가의 자의식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가치로 여겨졌다. 이런 까닭에 작가들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캔버스에 특별한 형식의 서명처럼 독창적인 방식으로 자기 얼굴을 은밀하게 또는 대담하게 삽입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배운성의 ‘가족도’에는 서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2013년 2월 국가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바로 그의 얼굴이 들어간 작품이기 때문이다. 서명이 없더라도 그의 얼굴이 작품에 들어감으로써 그의 작품으로 인정된 것이다. 라파엘로나 카라바조, 자크 다비드가 그림들에 자기 얼굴을 새겨 넣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바로 나의 자아가 살아있음을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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