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도 부러워하는 FIFA 평의원…대체 뭐가 좋길래?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2. 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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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사안 관련 임원 회의를 마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승환기자>
국내 재벌가의 2세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축구행정 분야에서 여러 번 감투를 썼다 벗었다 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장은 3선 임기를 이어가고 있고, 제9대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도 맡은 바 있습니다. 이중 가장 빛나는 감투는 2017년부터 2년간 역임한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의원일 것일 것입니다.

정 협회장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남자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에 강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그 이유에 대해 정 협회장이 지난해 평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당시 피파 기술연구그룹(TSG) 소속이던 클린스만 전 감독을 통해 피파내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한국 축구의 수장이 고배를 마신 피파 평의회 의원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인 걸까요? 보다 근본적으로 피파라는 조직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요? 명칭은 익숙하지만 무엇을 하는지는 모호한 단체, 피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적은 일, 많은 돈, 그리고 축구 외교라는 멋진 핑계
스위스 취리히 소재 FIFA 사무국. 건물은 FIFA의 투명성을 상징하기 위해 겉면이 통유리로 씌워져 있다 <AFP/Getty Images>
피파 평의회는 피파 산하 6개 대륙축구연맹에게 골고루 분배된 37명의 위원(회장포함)으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매년 최대 3회의 총회를 열고 주된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부터 참가국이 48개국(종전 32개국)으로 늘어난 것 역시 평의회의 결정이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평의회의 일원이 되면 소위 ‘축구 외교’ 무대에서 영향력을 더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 더해 두둑한 보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점입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7년 피파가 평의원들에게 지급한 금액이 1000만달러가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 명당 연간 25만달러와 수만달러의 여행비가 지급된 것이지요. 평의원이 참여하는 총회는 1년에 최대 3번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이 총회에서 실질적인 토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총회에 참가한 전현직 관계자에 따르면, 총회는 ‘반대 의견이 거의 없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없다’고 합니다.

즉 평의원은 1년간 세 번의 해외여행을 한 대가로 수 십만달러를 받는 셈입니다. 이는 다른 국제스포츠단체들과 비교해도 유독 높은 수준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집행위원회와 위원장이 업무로 받는 금액은 일당 900달러입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연봉 5만달러고, 유럽축구연맹(UEFA)은 10만달러수준입니다.

그렇습니다. 피파는 돈이 많습니다. 자체 발표에 따르면 피파는 2019~2022년 동안 총 76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했고, 빠져나가는 돈을 제외하면 13억달러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2023년부터 4년간은 100억달러가 넘는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되지요. 세계 최고의 스포츠이벤트 월드컵과 최근 확장을 시작한 클럽월드컵 등 피파가 주관한 모든 대회를 중계할 권리와 마케팅, 사용권 비용, 티켓 판매 수익이 모조리 피파에 귀속되기 때문이지요.

1년에 20억달러 벌어들이는 비영리단체...‘피파마피아’는 왜 탄생하나
2022년 카타르월드컵 결승전을 장식한 리오넬 메시(오른쪽)과 킬리안 음바페. 결승전에 진출한 두 국가는 도합 7000만달러가 넘는 상금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돈이 많은 피파가 비영리단체라는 것입니다. 일반 기업과 달리 비영리단체는 공시, 회계감사 등에 대한 감독받을 의무가 없습니다. 심지어 피파는 한 나라에 귀속되는 단체가 아닌 국제기구입니다. 본사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고, 기구는 스위스법에 따라 설립됐지만 관장하는 영역은 국경을 넘나들 수밖에 없습니다.

투명성을 지킬 의무는 없고, 소속된 정부도 없지만 매년 20억달러 가까운 수익을 내는 조직. 당연하게도, 피파는 덩치가 커질수록 부패의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으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축구계의 거물들이 뉴스 스포츠섹션이 아닌 사회섹션에서 발견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크리스토퍼 부드로 텍사스 A&M대 교수는 피파가 제도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게 설계돼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회장 등 집행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한 국제기구로서의 성격에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고, 같은 맥락으로 회원은 각국의 축구협회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합니다. 실제 2011년 피파는 중앙아메리카의 소국 벨리즈 정부가 벨리즈 축구협회 행정에 개입하려한다는 것을 명목으로 벨리즈의 월드컵 예선 참석을 막은 적도 있습니다.

결국 문제 제기는 내부에서 회원국들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피파가 월드컵 출전 여부 결정 등 막강한 권한으로 개별 회원국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 국가가 나서 문제를 제기해야 할 유인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부드로 교수는 논문을 통해 “스위스 정부는 피파를 감시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이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며 “예를 들어 스위스 정부의 감시 시도가 자국 축구팀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파에 부패가 만연한 또 다른 이유는 회원국들이 피파를 통해 얻는 이익을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잔니 인판티노 현 피파 회장은 2016년 선거에 나서며 각국 협회에 제공하는 지원금을 당시보다 4배 이상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습니다.

월드컵을 보면 회원국들이 이윤을 얻는 구조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피파는 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개최 준비에는 어떠한 비용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경기장과 숙소를 세우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 인프라 구축은 오롯이 개최국의 국민이 내는 세금을 통해서 충당되죠.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약 150억달러를 쏟아부었는데, 주로 교육과 사회 분야에 투자될 돈을 빼서 충당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득을 얻는 것은 지역 정치인과 운동선수 그리고 건설사 등 기업들이 대부분입니다. 브라질은 인프라로 지출된 금액 중 상당 부분에서 가격 과다 책정과 회계 부정 정황 등이 포착됐습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건설업체들이 담합행위를 통해 얻은 이익은 10억달러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투자는 대회가 끝나면 대부분 ‘죽은 투자’가 됩니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세운 10개의 축구 전용경기장이 제 몫을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대목입니다.

블라터 시대의 종말 알린 ‘2015 피파 추문’
2015년 제프 블라터 당시 피파 회장의 측근들이 스위스 취리히의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가 수사당국에 의해 체포되고 있는 모습. <출처=뉴욕타임스>
의심은 가지만 베일에 싸였던 피파의 부패가 민낯을 드러낸 것은 2015년입니다. 그리고 중심엔 제프 블라터 당시 피파 회장이 있었습니다. 칼을 빼든 것은 미국 법무부였습니다. 미국은 오바마정부 아래로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왔습니다. 미국 은행이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를 이용하는 등 사소한 연결고리가 있으면 해외의 범죄를 자국 관할권으로 끌어들여 수사와 기소하는 방식입니다. 2015년 5월 스위스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피파 집행위원회(평의회 전신) 위원 6명은 스위스 경찰에게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됩니다. 미국 법무부는 이들을 포함해 총 14명을 기소했는데 죄목으로는 공갈, 사기, 자금 세탁, 뇌물수수 등을 적시했습니다. 대부분이 블라터 회장의 파벌이었고, 일부는 중남미 국가의 미디어자본을 쥐락펴락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미 법무부는 피파 고위직들이 1991년부터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영향을 끼치기 위한 뇌물 최소 1억5000만달러를 받았다는 수사 결과를 공소장을 통해 밝혔습니다. 블라터 당시 회장은 미국의 기소 대상에는 빠졌지만, 지속되는 사임 압력에 5선에 성공한 지 4일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후엔 8년간의 자격정지 처분까지 받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0년 미국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 선정 과정에서도 피파 관계자들이 뇌물을 받았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두 대회의 개최지가 선정된 2010년 피파 고위직 5명이 뇌물을 받으며 아르헨티나 등 남미 회원국 소속 3명을 카타르를 개최지로 뽑은 대가를 취했다고 명시했습니다.

블라터 회장에게도 수사당국의 칼끝이 향합니다. 스위스 검찰은 이후 블라터 회장과 미셸 플라티니 전 UEFA 회장을 횡령, 부실경영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2011년 블라터 회장이 피파 자금 중 200만 프랑(약25억원)을 플라티니에게 자문 업무 대가 명목으로 건넸다는 혐의였습니다. 둘은 2022년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부실조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기도 했습니다.

신(新)피파 기치로 내걸었던 인판티노의 공약(空約)
잔니 인판티노 현 FIFA 회장 <출처=USA TODAY·Reuters>
블라터 전 회장이 물러선 뒤 UEFA의 행정가였던 잔니 인판티노 현 회장이 2016년 차기 피파 수장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는 취임 이후 과거와는 다른 투명한 피파를 만들겠다며 7가지 조항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점을 강조했습니다. 젊지만 경험 많은 이 스위스 변호사 출신 축구행정가의 포부에 사람들은 기대감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냈습니다.

8년이 지난 현재, 축구계에선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시각이 다수입니다. 인판티노 회장을 향한 비판의 상당수는 양적 성장과 본인의 영향력 유지에 매몰된 나머지 실제 선수들의 권리나 스포츠 이벤트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인판티노 체제 아래에서의 대표적 변화가 월드컵 본선 진출국의 확대(32→48개국)입니다. 축구를 즐기는 입장에선 경기수가 많아져서 즐거운 일이지만, 실상은 클럽과 계약을 맺은 축구선수들이 소위 ‘가욋 경기’를 더 뛰게 만들어 피파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입니다. 인판티노 회장은 애초 월드컵의 격년제 개최를 주장하다가 UEFA와 남미축구연맹의 거센 반대에 막혀 한발짝 물러선 적도 있습니다. 장기집권도 예고하고 있습니다. 현행 피파 규정상 회장은 4선 이상이 금지돼 있습니다. 지난해 3번째로 당선된 그 역시 4년 임기를 채우면 물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인판티노 회장은 2016년부터 시작된 임기가 블라터 전 회장의 사임으로 인한 보궐선거라고 주장하며, 첫 번째 재임기(2016~2019년)를 계산에서 빼야한다고 못 박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2034년 월드컵은 무려 6개국(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우루과이·아르헨티나·파라과이)에서 치르도록 한 것 역시 비판받고 있습니다. 비행시간 등 이동 거리를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일정을 짜 선수들의 건강을 해치며 돈을 벌려고 한다는 비판입니다.

그런데도 인판티노 회장에 대한 지지세는 공고합니다. 그는 축구계에서 발언권이 작은 중남미, 아프리카 등의 소규모 축구협회에게 돌아가는 분담금 몫을 키우며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소규모 협회들은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넓어진데다 곳간을 채워주는 인판티노를 마다할리 없는 것이죠.

자정작용 상실과 투명성 부재...피파만의 문제일까
2015년 7월 FIFA 집행위원회 자리에서 영국의 한 코미디언이 제프 블라터 당시 회장에게 가짜 돈다발을 뿌리며 FIFA의 배금주의를 비판한 퍼포먼스 당시의 사진 <출처=BBC>
피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정작용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블라터 회장 재임 당시 피파는 자체 윤리위원회에게 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의 비리 여부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수석조사관이 300쪽이 넘는 양의 보고서를 통해 문제점을 명명백백히 지적하자 집행부의 혐의를 모두 뺀 42쪽의 요약본만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인판티노 회장은 취임 후 평의회 회원의 윤리적·법적 결격사유를 따지는 거버넌스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거버넌스 위원회가 특정 평의원의 적격성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자 이를 무시하도록 강요한 뒤 위원장을 해임해버렸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두 일화 모두 원칙은 내다 버린 데다, 과정은 불투명하고, 수장의 권력 유지를 위해 스스로 거듭날 기회를 걷어차 버린 씁쓸한 사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축구가 일부의 명예욕, 물욕을 드러내는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 자명하니까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이런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게 축구팬 모두의 바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문헌과 외신> ◎Bend it like FIFA: Corruption on and off the Pitch(2016). Christopher J. Boudreaux. Texas A&M International University) ◎https://publications.fifa.com/en/annual-report-2022/finances/2019-2022-cycle-in-review/2019-2022-revenue/ ◎https://www.swissinfo.ch/eng/business/swiss-prosecutor-s-meagre-record-in-fifa-corruption-scandal/48583528 ◎https://www.nytimes.com/2018/01/09/sports/soccer/fifa-council-infantino-salaries.html ◎https://www.nytimes.com/2015/05/27/sports/soccer/fifa-officials-face-corruption-charges-in-us.html ◎https://www.nytimes.com/2017/09/10/sports/soccer/fifa-infantino-ethics-madur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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