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도 부러워하는 FIFA 평의원…대체 뭐가 좋길래? [올어바웃스포츠]
정 협회장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남자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에 강한 입김을 불어 넣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그 이유에 대해 정 협회장이 지난해 평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당시 피파 기술연구그룹(TSG) 소속이던 클린스만 전 감독을 통해 피파내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한국 축구의 수장이 고배를 마신 피파 평의회 의원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인 걸까요? 보다 근본적으로 피파라는 조직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일까요? 명칭은 익숙하지만 무엇을 하는지는 모호한 단체, 피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 더해 두둑한 보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점입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7년 피파가 평의원들에게 지급한 금액이 1000만달러가 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 명당 연간 25만달러와 수만달러의 여행비가 지급된 것이지요. 평의원이 참여하는 총회는 1년에 최대 3번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이 총회에서 실질적인 토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총회에 참가한 전현직 관계자에 따르면, 총회는 ‘반대 의견이 거의 없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없다’고 합니다.
즉 평의원은 1년간 세 번의 해외여행을 한 대가로 수 십만달러를 받는 셈입니다. 이는 다른 국제스포츠단체들과 비교해도 유독 높은 수준입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집행위원회와 위원장이 업무로 받는 금액은 일당 900달러입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연봉 5만달러고, 유럽축구연맹(UEFA)은 10만달러수준입니다.
그렇습니다. 피파는 돈이 많습니다. 자체 발표에 따르면 피파는 2019~2022년 동안 총 76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했고, 빠져나가는 돈을 제외하면 13억달러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2023년부터 4년간은 100억달러가 넘는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되지요. 세계 최고의 스포츠이벤트 월드컵과 최근 확장을 시작한 클럽월드컵 등 피파가 주관한 모든 대회를 중계할 권리와 마케팅, 사용권 비용, 티켓 판매 수익이 모조리 피파에 귀속되기 때문이지요.
투명성을 지킬 의무는 없고, 소속된 정부도 없지만 매년 20억달러 가까운 수익을 내는 조직. 당연하게도, 피파는 덩치가 커질수록 부패의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으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축구계의 거물들이 뉴스 스포츠섹션이 아닌 사회섹션에서 발견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크리스토퍼 부드로 텍사스 A&M대 교수는 피파가 제도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게 설계돼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회장 등 집행부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한 국제기구로서의 성격에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고, 같은 맥락으로 회원은 각국의 축구협회에 정부가 간섭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합니다. 실제 2011년 피파는 중앙아메리카의 소국 벨리즈 정부가 벨리즈 축구협회 행정에 개입하려한다는 것을 명목으로 벨리즈의 월드컵 예선 참석을 막은 적도 있습니다.
결국 문제 제기는 내부에서 회원국들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피파가 월드컵 출전 여부 결정 등 막강한 권한으로 개별 회원국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한 국가가 나서 문제를 제기해야 할 유인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부드로 교수는 논문을 통해 “스위스 정부는 피파를 감시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이를 통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며 “예를 들어 스위스 정부의 감시 시도가 자국 축구팀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파에 부패가 만연한 또 다른 이유는 회원국들이 피파를 통해 얻는 이익을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잔니 인판티노 현 피파 회장은 2016년 선거에 나서며 각국 협회에 제공하는 지원금을 당시보다 4배 이상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습니다.
월드컵을 보면 회원국들이 이윤을 얻는 구조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피파는 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개최 준비에는 어떠한 비용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경기장과 숙소를 세우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 인프라 구축은 오롯이 개최국의 국민이 내는 세금을 통해서 충당되죠.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약 150억달러를 쏟아부었는데, 주로 교육과 사회 분야에 투자될 돈을 빼서 충당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득을 얻는 것은 지역 정치인과 운동선수 그리고 건설사 등 기업들이 대부분입니다. 브라질은 인프라로 지출된 금액 중 상당 부분에서 가격 과다 책정과 회계 부정 정황 등이 포착됐습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건설업체들이 담합행위를 통해 얻은 이익은 10억달러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투자는 대회가 끝나면 대부분 ‘죽은 투자’가 됩니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세운 10개의 축구 전용경기장이 제 몫을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대목입니다.
블라터 회장에게도 수사당국의 칼끝이 향합니다. 스위스 검찰은 이후 블라터 회장과 미셸 플라티니 전 UEFA 회장을 횡령, 부실경영 등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2011년 블라터 회장이 피파 자금 중 200만 프랑(약25억원)을 플라티니에게 자문 업무 대가 명목으로 건넸다는 혐의였습니다. 둘은 2022년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부실조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기도 했습니다.
8년이 지난 현재, 축구계에선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시각이 다수입니다. 인판티노 회장을 향한 비판의 상당수는 양적 성장과 본인의 영향력 유지에 매몰된 나머지 실제 선수들의 권리나 스포츠 이벤트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인판티노 체제 아래에서의 대표적 변화가 월드컵 본선 진출국의 확대(32→48개국)입니다. 축구를 즐기는 입장에선 경기수가 많아져서 즐거운 일이지만, 실상은 클럽과 계약을 맺은 축구선수들이 소위 ‘가욋 경기’를 더 뛰게 만들어 피파의 주머니를 채우는 일입니다. 인판티노 회장은 애초 월드컵의 격년제 개최를 주장하다가 UEFA와 남미축구연맹의 거센 반대에 막혀 한발짝 물러선 적도 있습니다. 장기집권도 예고하고 있습니다. 현행 피파 규정상 회장은 4선 이상이 금지돼 있습니다. 지난해 3번째로 당선된 그 역시 4년 임기를 채우면 물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인판티노 회장은 2016년부터 시작된 임기가 블라터 전 회장의 사임으로 인한 보궐선거라고 주장하며, 첫 번째 재임기(2016~2019년)를 계산에서 빼야한다고 못 박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2034년 월드컵은 무려 6개국(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우루과이·아르헨티나·파라과이)에서 치르도록 한 것 역시 비판받고 있습니다. 비행시간 등 이동 거리를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일정을 짜 선수들의 건강을 해치며 돈을 벌려고 한다는 비판입니다.
그런데도 인판티노 회장에 대한 지지세는 공고합니다. 그는 축구계에서 발언권이 작은 중남미, 아프리카 등의 소규모 축구협회에게 돌아가는 분담금 몫을 키우며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소규모 협회들은 월드컵과 같은 큰 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넓어진데다 곳간을 채워주는 인판티노를 마다할리 없는 것이죠.
두 일화 모두 원칙은 내다 버린 데다, 과정은 불투명하고, 수장의 권력 유지를 위해 스스로 거듭날 기회를 걷어차 버린 씁쓸한 사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인 축구가 일부의 명예욕, 물욕을 드러내는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 자명하니까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이런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게 축구팬 모두의 바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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