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주웠다”, 무슨 뜻이지?…일본 안방 점령한 ‘한국식 연애’
한국 남성과 한국 방식으로 연애하는 J콘텐츠
“잘 잤어요?” “춥진 않아요?” 수시로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요리 중”이라며 인증샷도 잊지 않는다. “데이트하자”며 사랑 표현에도 적극적이고, “못 보던 동안 더 예뻐진 거냐”는 달달한 멘트도 잘한다. 당황하게 만들지만 설레게도 하는 사람. 최근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장점만 모은 윤태오다.
한드 남주 장점 모은 태오의 구애 ‘심쿵’
일본 지상파 티비에스(TBS) 화요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가 일본 여성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와 한국 남성 윤태오(채종협)의 연애 이야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 같은 사람과 연애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대리만족 드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다정하고, 용감하고, 키가 크고, 웃는 얼굴이 귀여운’ 태오가 유리한테 적극적으로 구애하자, 지난 1월23일 첫 방송에서 일본 엑스(X·옛 트위터) 트렌드 1위에 올랐다.
이미 기획 단계에서 대리만족을 목표로 삼았다. 티비에스 한국인 직원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일본인이 좋아하는 한국 연애 스타일 등을 세밀하게 녹였다. 사업투자전략부의 차현지 프로듀서는 지난 1월 티비에스 인터뷰에서 “한국 남성과의 연애에 관심 있는 일본 여성이 많아서 드라마를 통해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고 했다. 일본 지상파 주요 시간대에서 처음으로 한국 배우를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한 것도 현실감을 높인 기대 충족 차원이다. 차 프로듀서는 “캐스팅을 할 때 일본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갖췄는지도 봤고, 일본 여성을 만날 때마다 (채종협의) 사진을 보여주고 반응을 살폈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장르를 아우르며 발현되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 일본 예능프로그램 ‘케이(K)-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와 한국 예능 ‘하트시그널’(채널A) 일본판인 ‘하트시그널 재팬’(2022)도 일본 여성이 한국 남성과 서울에서 지내며 설렘을 느끼는 과정을 보여줬다.
‘한류 4세대’가 바꾼 일드
2003년 ‘겨울연가’ 욘사마(배용준) 이후 한국인과의 연애 판타지는 꾸준히 존재했다. 김봉석 일본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 없는 판타지였다면, 요즘은 제트세대(10~20대)에서 현실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애가 이뤄지는 일상성이 강화됐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중심으로 퍼진 ‘4세대 한류’가 변화를 이끌었다. 한국 콘텐츠를 수시로 만나면서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뷰티, 디저트, 패션 등 한국 전체를 포용하는 것이다. 2021년 이후 일본 소셜미디어에는 ‘#강코쿳포’(한국스러움)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고, 일본 기업은 한국어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일본 드라마도 변화시켰다. ‘솔직하지 못해서’(김재중·후지TV) 등 과거 일본 드라마가 한류 스타를 앞세웠다면, ‘아이 러브 유’는 연애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것을 담는다. 드라마 자체가 한국색이다. 복선이 있고 전개도 빠르고, 드라마 ‘아이리스’의 사탕 키스처럼 리본 반지, 손가락 약속 등 ‘심쿵 포인트’도 심어뒀다. 잡채, 부침개, 순두부 같은 한식이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한국식’을 설명해주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회식 자리에서 태오가 유리한테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한 뒤 “한국인 남성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는 건 둘만 있고 싶다는 호감의 표시”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일본 콘텐츠 전문채널인 채널제이(채널J) 김석기 편성팀장은 “한국 문화가 전세계 미디어에 반영되고 있지만 한국 남성과의 연애 로망을 다룬 드라마는 처음”이라며 “일본에서 유독 한국 남성과의 연애에 관심이 높은 것은 한·일의 문화적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극의 중심이자 재미 요소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는 40대 한국 여성은 “일본에서는 친밀한 사이에서만 이름을 부르는데, 태오가 처음부터 ‘유리’라고 부르는 등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당돌함을 귀엽게 느끼더라”고 했다.
현실 남친 채종협…새 한류 탄생
공감과 이해가 바탕이 된 새로운 한류도 양산하고 있다. 태오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한국인의 특징까지 공부하는 것이다. 태오가 유리한테 꽃을 주면서 ‘오다 주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한국인의 심리를 검색해봤다는 이들도 있다. 서로의 문화로 흡수시키려 하지 않고 존중하고 설명해주는 모습에서 새 한류 시대에 타 문화권을 수용하는 요즘 세대의 태도가 보이기도 한다.
일본 매체 마이도나뉴스는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가 궁금해서 한국어를 배우는 시청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태오가 한국어로 생각하는 속마음은 본방송에서는 자막으로 보여주지 않는 전략 덕분에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드라마에 나온 한국어를 설명해주는 콘텐츠도 일본 소셜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일본에서 덜 유명한 배우가 주연을 맡으면서, 현실 남친으로 다가오는 새 한류 스타도 탄생했다. 채종협은 ‘횹사마’, ‘횹군’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국과 일본 문화가 겹쳐 나오는 크로스 컬처의 흥미로운 지점들이 등장한다.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다국적 문화를 담은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장점만 모아 대리만족시켜 주는 드라마가 한국 남성의 이미지를 일반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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