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산행기] 백두산 천지는 영하 36℃…그러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고상선 제주도 제주시 서광로 2024. 2. 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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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백두산 천지의 모습.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를 떠나 백두산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 김해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서해 상공을 지나 중국 연변시 연길공항에 착륙한다. 시간은 오후 1시. 이동만 했을 뿐인데, 어느새 반나절이 사라져 있다.

연길공항은 군 공항으로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다.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밖을 보지 못하게끔 모든 창문 덮개를 닫고 불을 껐다. 스티커를 붙여 사진촬영을 철저히 막는다. 만약 이를 위반한다면 경찰에 인계되어 여행도 못 하게 한다는데, 나는 그들이 하라는 대로 따른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귀가 시릴 정도로 춥다. 온도계는 영하 28℃를 가리키고 있다. 용정으로 이동하는 길,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겨 있는 두만강을 멍하니 바라본다. 건너편으로는 북한의 남양시 마을이 있다. 용정마을에 들러 민족의 한이 서린 용두레 우물을 탐방한 후 이도백하로 이동한다. 어느덧 하루가 저물고 있다.

2023년 12월 21일

모닝콜 소리에 잠에서 깬다. 어젯밤 묵은 이도백하는 백두산을 오르기 위한 가장 가까운 마을로 백두산으로 갈 수 있는 3개의 길 중 하나라고 한다.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 북한과 중국 경계를 이루는 백두산은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고 불린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군봉의 높이는 2,744m로 꽤 높다. 혹자는 백번은 방문해야 두 번 볼 수 있다고 하여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할 정도로 정상 풍경을 보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서파(서쪽능선)를 통해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양말 두 겹, 하의 세 겹, 상의 다섯 겹으로 완전무장 한다. 날이 얼마나 추운지 올라탄 버스도 얼어 의자 곳곳이 축축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행 도중에 엔진이 자꾸 꺼진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서 1시간 30분이면 갈 거리를 2시간 30분 걸려 어찌어찌 길림성 백산시에 있는 식당에 도착한다. 전통 중국식으로 이른 점심을 마치고 백두산을 오르는 셔틀버스 정류소에 도착한다.

여권과 QR코드 입장권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선다. 셔틀버스로 스노모빌이 있는 환승장까지는 자작나무를 보며 1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백두산은 일반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고 있어, 이런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스노모빌 환승장에 도착해 차례를 기다리다 3인승 스노모빌에 탑승한다. 바람이 심하면 운행을 안 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오늘은 바람이 없어 운행에 문제가 없다. 그렇게 20여 분을 오르니 백두산 천지에 이른다. 정상은 아래보다 100배는 더 춥다. 기온은 영하 36℃에 육박한다.

그나마 바람이 안 불어 다행이다. 풍경을 담기 위해 동영상을 짧게 찍고 나니 손끝이 동상에 걸린 듯 저리고 불편하다. 휴대폰 배터리도 순식간에 방전돼 버린다. 처음엔 고장이 났나 싶었는데, 주머니에 넣고 핫팩으로 따뜻하게 하니 전원이 켜진다. 이 멋진 풍경을 찍을 수 없을까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잠깐의 시간 동안 백두산 천지의 풍경을 구경한다. 날씨가 추워 오래 있진 못하겠다. 잠시 후, 스노모빌에 탑승해 올라온 길을 그대로 내려가 셔틀버스로 갈아탄다. 내려오는 길에는 금강대협곡도 방문했는데, 생각만큼 멋지지 않아 실망스럽다. 다시 우리 버스를 타고 이도백하 숙소로 이동한다. 하루가 끝난다.

백두산에서의 필자.

2023년 12월 22일

어제와 똑같은 복장으로 버스에 탄다. 15분 걸려서 셔틀버스 환승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북파(북쪽능선)로 백두산 천문봉을 오른다. 셔틀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서 미니버스 환승장까지 간다. 코로나 이전에는 지프차를 이용해 올랐으나, 요즘에는 미니버스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한다. 꼬불꼬불 72고개를 25분 정도 돌고 오르니 천문봉이 나온다. 차에서 내리니 어제의 추위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늘은 영하 35℃. 하지만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파랗고 날씨는 청명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어제 올랐던 장군봉은 한산했던 반면 천문봉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장군봉에서는 백두산 천지가 한눈에 넓게 보이지만, 천문봉은 커다란 바위들이 시야를 가려 풍경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어 좋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천문봉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하지만 손도 시리고 점점 추위가 몸을 파고들어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 잠깐의 시간을 활용해 인증 사진을 찍고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환승장으로 하산한다.

셔틀버스 환승장에서 비룡폭포라 불리는 장백폭포까지 20분을 걸어서 올라간다. 오른편으로는 주상절리가 있고, 왼편은 화산재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장백폭포는 천문봉과 용문봉 사이의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흐르다가 거대한 협곡 사이로 흘러내린다. 물은 68m 높이의 수직 절벽을 따라 떨어지며, 장백폭포를 오르는 길옆에는 온천수가 끊임없이 솟아 나온다. 이곳은 온천수에 달걀을 삶을 수 있는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영하 25℃를 가리키는 오늘도 폭포수는 어김없이 웅장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고 있다. 온천수로 삶은 달걀도 맛본 다음, 천지의 축소판이라고 하는 녹연담으로 간다. 녹연담은 20m 높이의 폭포 3개가 떨어지는 연못이다. 자작나무 그늘로 인해 담수가 푸른 녹색을 띠며, 그 모습이 천지와 닮아 소천지라 불리기도 한다. 백두산 여행은 오늘부로 끝이다.

지난 이틀 동안 백두산 곳곳을 잘 구경했다. 서파와 북파로 올라 천지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추위 때문에 꽤 고생했지만 행복했다. 기온은 영하 25℃를 오르내렸지만, 날씨가 좋아 얼어붙은 천지의 환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두산 천지의 정기를 가득 담고 귀국길에 오른다. 도중에 마트에 들러 손주들에게 줄 과자도 샀다. 연길공항을 나오는데 소지품 검사가 까다롭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비행기에 오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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