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현장르포 의사가 병원을 떠났다

김기화 2024. 2. 2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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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다 2회 I] 현장르포 의사가 병원을 떠났다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 이후 여러 협의 시도와 토론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환자들의 피해는 시시각각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사태가 초래되었는지, 실제로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 보다] 팀에서 정리했습니다.

■ 2월 6일/ 협의 무산과 의대 증원 발표

정부와 의협측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 의대증원을 포함한 의료현안에 대해 지난 2023년 1월부터 올해 2월 6일까지 28차례에 걸쳐 협상을 이어왔습니다. 논의과정에서 의대증원 이슈에 대해 양측의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28번째 협상테이블에서 의협은 일방적인 입장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정부는 금일 의료현안 협의체 의대정원 확대 인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려 하고 있으며 독단 정책의 극치로 단정하고 이런 정부의 독선적인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고 지탄합니다."라며 "의사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협의가 최종 무산된겁니다. 이어 의사협회는 즉각적으로 집단행동을 시사했습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발표를 강행할 경우 대한의사협회 제41대 집행부는 총사퇴할 것이며 즉각적인 총파업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잠시 뒤, 정부의 공식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기존의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9년 동안 묶여 있던 의대정원도 국민 생명과 건강권을 보장하고 어렵게 이룩한 우리 의료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확대하겠습니다.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여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합니다."라며 강력한 정책추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의사협회 발표에서 '총파업'이라는 단어가 나온만큼, 집단행동에 대한 경고도 덧붙였습니다. "만약에 불법 집단행동을 하게 된다면 저희는 의료법 그리고 관련법에 따라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사들의 입에서 '총파업', 정부발표에서 '법적조치' 등 험악한 말이 나오면서 결국 의협과 정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어보였습니다. 양측은 향후 갈등을 예고한 채 설 연휴를 맞이했습니다.

■ 2월 14일/ 의협,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다

설 연휴가 지나고, 의협은 비상대책위를 꾸려 본격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불합리한 의대 증원 추진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라며 "정부는 우리나라가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낮다는 이유로 의사 부족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의사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의대 증원 이유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의대증원의 부작용도 조목조목 설명했는데, "현재 40개 의과대학 정원이 3천명인데 한꺼번에 2천명을 늘리면 의대 24개를 새로 만드는 것과 똑같다"며 "교육의 질도 떨어지고 대한민국의 모든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더불어 "무엇보다 2천명 증원 추진은 의료비 부담 증가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 밝혔습니다.

의대정원 문제에 가장 민감한 의사그룹은 단연 전공의들입니다. 지금 의대증원을 늘려도 실제로 그 의대생들이 개원의를 하게 되는데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재 나이가 40~50대인 개원의들 입장에서는 사실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재 30대가 주축인 전공의들 같은 경우에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2020년에 있었던 의대증원 반대 투쟁에서도 전공의 70%가 파업에 동참했지만, 개원의의 파업참여는 10%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전공의가 가장 앞서서 대정부 투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속에 전공의 대표,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의 SNS에 '사직서'에 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 2월 15일/ 전공의, 집단행동 전면에 나서다


2월 20일을 기하여 자신은 사직서를 제출할 예정이지만, 집단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회장의 글에서 '사직서'라는 단어가 나온만큼, 전공의 집단사직의 예고가 아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는 의대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서울시 의사회는 용산 대통령실앞에서 집회를 진행했고, 지역 의사회마다 규탄 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 2월 16일/ 빅5 병원 전공의, 사직서 제출


그리고 다음날 새벽, 박단 대전협 회장 SNS에 한편의 글이 올라옵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 5'로 불리는 주요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전공의가 19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화요일 오전 6시에 모두 병원을 떠나겠다는 선언입니다.

보통 대형병원에서 전공의는 전체 의사인력에 30~40%를 차지합니다. 특히 의료현장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병원을 떠난 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료 공백'을 의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부는 즉각 행정명령을 발령했습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집단연가 사용 불허 및 필수의료 유지명령"을 발령했습니다. 이어 "진료를 거부한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개별적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상응하는 법적조치를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정부의 필수의료 유지명령은 의료인의 진료 중단을 금지하는 명령입니다. 의료법 제59조에 근거한 명령으로,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등의 경우 발동할 수 있습니다.


업무개시명령은 파업 등으로 이미 병원을 떠난 의료인들에게 강제로 업무에 복귀하도록 내리는 명령입니다. 만약 이들을 어길 경우 의료법 제 66조에 근거해 면허정지처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이번 행정명령은 지난 2020년 의대증원 반대투쟁 당시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2022년 11월에 의사면허 취소법이 발효했기 때문입니다.이 법에 따르면 의료행위 이외에 다른 범죄행위로 법률을 위반했을 경우, 집행유예나 선고유예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의사면허를 10년까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 2020년에는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행위가 의료행위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의대증원 논의가 중단됐습니다.

■ 2월 17일/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겠다"

의사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문제인 면허취소까지 가시화되자, 의협의 대응은 더욱 강경해졌습니다. "이번 사태로 민간의 면허와 관련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이는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돌입할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는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의 발언이 나오면서 양측은 점점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습니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우리 비대위 전공의들의 행동에 대해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했는데 그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감옥에 보낸다는 정부랑 대화가 가능하겠냐"며 정부의 행정명령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정부와 의협의 기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기로 한 19일이 다가왔습니다.

■ 2월 19일/ 수술 지연 시작... 환자들은 불안하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19일이 되자,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진이 찾은 수서역 앞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 정류장에서는 불안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지역의료에서 치료받지 못해 새벽 기차로 서울에 도착한 환자와 가족들. 그들과 나눈 대화를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기자: 선생님 어디서 오셨습니까?
박장호: 충남 아산이요. 제가 지금 항암치료 중이라
기자: 이번에 전공의분들 사직서 얘기는 들으셨죠? 소식 들으시고 좀 어떠셨습니까?
박장호: 아픈게 죄죠...
기자: 아유... 무슨 말씀을...
박장호: 불안하죠. 저희같은 경우에는 제때제때 그 시간이 생명이거든요. 그런게 자꾸 늦춰지면 몸속에 있는 암세포들이 커지거든요. 그런거에도 좀 문제가 생긴다고 보죠.

수술이 미뤄지는 사례도 속출했습니다. 두개골 종양 수술을 위해 이날 입원이 예정돼있던 8살 아이의 가족. 수술과 수술을 위한 검사, 이를 위한 입원절차가 모두 미뤄진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언제 재개된다는 기약도 없었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병원의 통보에 아이의 아버지는 "저희가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애한테 알려줬는데 애가 조용하게 제 옆에 와서 가만히 있다가 보니까 우는거에요..."라며 망연자실할 뿐이었습니다.

정부의 진료유지명령이 발령됐지만, 세브란스 병원 전공의들은 예정보다 하루 먼저인 19일에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의사 1500명 중 40%에 해당하는 600여명이 환자 곁을 떠났습니다. 취재진이 취재해보니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응급실에 의사가 없어 구급차로 실려온 응급환자들이 속속 다시 구급차에 타고 떠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 2월 20일/ '빅5' 병원 전공의, 병원을 떠나다

빅5 병원 전공의들이 근무중단을 예고한 오전 6시가 조금 지나자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이 하나둘 씩 병원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상황과 본인의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공의들은 대부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은채 병원을 빠져나갔습니다.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에는 의료공백이 현실화됐습니다. 응급실부터 문을 닫았습니다. 복통이 심해 응급실을 찾은 한 환자는 "2시간 전에 온 환자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더라"며 "너무 아파서 빨리 다른 병원으로 가야겠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특히 지방에서 장기간 치료를 위해 서울에 모텔이나 다가구 주택에 임시숙소를 구한 환자들은 난처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진료가 언제 재개될지 몰라 얼마나 더 서울에 체류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운을 벗었던 전공의들은 서울의 모처에서 다시 가운을 입었습니다. 전공의협의회 대표 170여명이 모인 긴급대의원총회였습니다.


이날 회의는 비공개로 이뤄졌습니다. 다음날 새벽, 긴급 대의원 회의의 결과가 홈페이지에 올라왔습니다. 의대증원 정책을 백지화 하지 않으면 병원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습니다.

■ 2월 21일/ 수술 지연, 응급실 포화, 입원 불가... 의료 공백 현실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다음날, 피해사례가 본격적으로 접수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피해신고지원센터를 운영하며 피해내역을 발표했습니다. 하루만에 60건에 달하는 피해사례가 신고됐습니다. 주로 일방적인 진료 예약취소, 무기한 수술연기등의 내용이었는데, 22일까지 합계는 200건에 달합니다.

■ 2월 23일/ 마주앉은 정부·의료계, 의견 차이만 확인

의료 공백 사흘째 날, 정부와 의사측 대표가 의대증원 발표 이후 처음으로 TV생방송 자리에 마주 앉았습니다. 하지만 의대증원 사유와 규모,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붕괴 대책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법만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정부측 대표인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과 의사측 대표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은 위 사진과 같이 토론이 끝나고도 한참동안을 서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 2월24일/ 재난 경보단계 상향... 의사는 총궐기대회

의료 공백으로 인한 피해가 심화되자, 정부는 보건의료재난 경보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했습니다. 의사들은 원래 3월 10일로 예정돼있던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3일로 앞당겼습니다. 양측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24일에 취재진이 찾아간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사투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6시 반에 응급실에 와서 12시에 침상에 올랐다는 환자, 아예 진료를 거절당해서 다른 병원을 찾는 환자, 지금도 지방에서 진료받지 못해 서울 '빅5' 병원에 희망을 걸고 열차에 몸을 실은 환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부와 의사의 대립 한가운데서, 환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과 싸우고 있습니다.

취재 : 김기화 김가람 방준원 김채린
촬영 : 조선기 설태훈 고영민 임현식
편집 : 이기승
그래픽 : 장수현
리서처 : 김보현 신용하
조연출 : 김영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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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화 기자 (kimk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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