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도심 정류소는 여전히 도떼기시장… ‘광역버스의 역설’ [이슈 속으로]

이규희 2024. 2. 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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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 환승거점’ 논의 시작할 때다
혼잡도 적정 통행량 2배
명동 정류소 보행자 밀집도 D등급
“버스 승객·보행자 엉켜 사고 위험”
신도시行 몰리는 강남도 마찬가지
서울시, ‘버스 대란’ 대책
‘혼잡 정류소’ 정차 8개 노선 변경
강남 일대 정류소 노선 분산 추진
통행 속도·인근 혼잡도 개선 기대
서울·경기·인천 논의해야
3기 신도시 입주 시작되면 더 큰일
서울광역버스 56% 강남·도심 몰려
부도심에 환승센터 조성, 대안될까

지난 21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중구 명동입구 버스정류소. 광역버스 정류소가 있는 명동 애플스토어 앞 인도는 우산을 든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퇴근길 인파로 가득 찼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경광봉을 든 교통계도요원이 “5007번 버스 타시는 분” “오라이, 오라이”라고 외치며 정류장 일대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노선별 표지판 앞마다 버스를 기다리는 수십 미터의 대기 줄이 3∼4열로 늘어섰다. 시민들은 버스 운행 정보를 알리는 스마트폰 앱(어플리케이션)이나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에 시선을 고정한 채 버스를 기다렸다.

협소한 인도를 버스 대기 인원이 가득 채운 탓에 보행자들은 어깨를 부딪히며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했다. 꽉 막힌 차도에선 정차하려는 광역버스 7∼8대가 꼬리를 물고 서행했다. 지난해 12월 명동에서 ‘퇴근길 버스 대란’이 빚어진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시민들의 험난한 퇴근길과 이로 인한 혼잡은 여전했다. 서울시가 연일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꼬일대로 꼬인 광역버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적정 통행량 2배… 과부하 걸린 정류소

광역버스 노선이 몰리는 명동 일대의 혼잡한 도로 사정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명동입구 정류소는 적정 운영용량의 214.6%에 달하는 부하량을 감당하고 있다. 정차면이 3개뿐인 약 35m의 정류소에 버스 6~7대가 줄지어 대기하며 ‘열차 현상’이 빚어진다는 의미다. 정차면까지 진입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정류소 앞뒤로 멈춰서는 버스 행렬과 대기 줄에 서있다가 버스에 타려는 승객이 뒤엉키면서 보도의 혼잡도도 치솟는다. 버스 정류소는 보행자 밀도에 따라 A∼F등급으로 나뉘는데, 명동입구는 D등급이다.

차량과 인파가 집중돼 극심한 혼잡이 빚어지는 건 비단 명동만의 문제는 아니다. 명동입구 정류소와 한 정거장(700여m) 떨어진 남대문세무서(옛 서울백병원)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소의 경우 통행량이 설계용량의 194.4%로 나타났다. 강남대로에 위치한 신분당선강남역 정류소는 194.1%, 사당역9번출구앞은 135.8%로 각각 파악됐다.
◆市, “정류소 위치·노선 조정” 대책 발표

서울시는 전날 광역버스가 밀집해 보행자 혼잡과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주요 지점의 정류소 위치와 노선을 조정하는 내용을 담은 혼잡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우선 명동입구 정류소에 정차하던 수원·용인 방면 등 8개 광역버스 노선은 기존 정류소에서 약 430m 떨어진 광교 우리은행 종로지점 앞 신설 정류소에서 정차하도록 변경한다.

남대문세무서 정류소는 경기도와 협의해 10개 노선이 신설될 예정인 명동성당 정류소(가칭)로 이전한다. 강남역과 신논현역도 상반기 내로 정류소 위치를 바꾸고 연말까지 노선 조정을 추진한다. 강남역의 경우 중앙정류소의 통행량 집중 문제를 완화하고자 인근에 위치한 3개 가로변 정류소로 노선을 분산할 계획이라고 시는 전했다.
시는 이번 대책을 만들기 전 혼잡도가 높은 정류소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정류장 분산과 노선 조정안을 반영한 시뮬레이션을 추진하는 등 사전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서울연구원이 시의 명동입구 정류소 분산 재배치와 노선 조정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평균 버스 대기 행렬은 312m에서 93m로 감소하고 일반차량 통행 속도도 시속 17.9㎞에서 21.7㎞로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대문세무서 정류소 조정에 대한 서울시립대의 시뮬레이션 분석에선 통행 시간과 차량 지체도가 약 5%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도심 진입 전 회차 후 환승’ 검토해야”

전문가들은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서울 도심과 강남으로 직행하는 광역버스 비중을 줄이고, 부도심이나 외곽지역에 환승 거점을 조성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난해 기준 서울로 진입하는 광역버스의 56%가 도심이나 강남까지 운행할 만큼 쏠림 현상이 뚜렷했다. 노선이 도심 깊숙이 진입하는 대신 외곽 거점에서 회차하고, 승객들은 지하철역 등을 통해 환승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시교통 전문가는 “서울의 도로 정체 탓에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광화문을 오가는 광역버스 중엔 서울 내에서 회차하는 데만 전체 운행시간의 3분의 1을 쓰는 노선도 있다”며 “3기 신도시가 입주를 시작하면 또 광역버스를 늘릴텐데, 이제는 서울시·경기도·인천시가 외곽 환승방식을 터놓고 논의할 시점”이라고 했다.

김진희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외곽 환승 방식이 (서울 내부의) 혼잡도 완화 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서울 주요 지점까지 운행하지 않는 광역버스 대신 승용차를 택하는 사람이 늘어 교통난을 가중하거나 지하철 혼잡도를 높일 수 있다”며 “이런 외부효과와 노선별 효과성 분석이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보다 편리한 출퇴근을 위해 서울 도심이나 강남으로 광역버스 노선을 직결 운영하는 경우 해당 노선들이 집산하는 구간에 교통정체가 심해져 오히려 출퇴근 편의가 저해되는 모순이 생긴다”며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경기도, 인천시 등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광역버스 직결 운영과 환승 운영 사이의 적절한 지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규희·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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