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올미술관, 하드웨어는 멋진데 소프트웨어의 미래는?[영감 한 스푼]

김민 기자 2024. 2. 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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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교동에 2월 14일 문을 연 솔올미술관. ⓒ솔올미술관
오늘은 강원 강릉시에 2월 14일 새롭게 개관한 ‘솔올미술관’을 직접 다녀온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솔올미술관은 강릉시청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도심지의 해발 62m 작은 산 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인근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시행사가 이곳의 공원과 미술관을 조성했고, 올해 하반기 강릉시에 기부채납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솔올미술관은 강릉시에서 운영하는 공공미술관이 되는데, 운영 주체 간 갈등이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미술관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또 그 안의 콘텐츠는 어떻게 채워질지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이어 파트너스’ 설계 아담한 미술관

미술관 2층 천장에 설치된 루치오 폰타나의 네온 작품 뒤로 외부 경관을 볼 수 있는 조망 공간이 있는 미술관의 모습. ⓒ 솔올미술관
우선 솔올미술관은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게티센터 등을 설계하고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리처드 마이어가 설립했던 ‘마이어 파트너스’에서 설계를 맡아 관심을 모았습니다.

다만 리처드 마이어는 2021년 은퇴했고 ‘마이어 파트너스’는 그와 함께 일했던 건축가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이어는 2018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서 성폭력이 폭로된 후 ‘리처드 마이어 앤드 파트너스’에서 은퇴했고, 이 설계사무소는 2021년 ‘마이어 파트너스’로 재구성됩니다.

그렇게 마이어가 빠진 설계사무소 ‘마이어 파트너스’가 재단장을 하고 처음으로 완성해 공개한 미술관 프로젝트가 솔올미술관입니다. 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전체면적 3221.76㎡ 규모로, 이 중 전시 공간은 1층 전시실 1(288㎡), 2층 전시실 2(메인 전시실+ 다용도 전시실, 629㎡), 전시실 3(135㎡)으로 총 1052㎡ 넓이입니다. 전시 공간만 보면 서울 삼청동의 대형 갤러리와 비슷한 아담한 미술관입니다.

솔올미술관 로비 카페. ⓒ 솔올미술관
기자간담회에는 마이어 파트너스의 연덕호 대표가 참석해 건축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미술관 전시 작품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건축물 자체가 완벽한 조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건축물이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는 동시에 예술 작품과 상호작용하기를 바랐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내부 공간과 주변 환경이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하게 하는 것이 우리 회사에 깊이 자리 잡은 중요한 디자인 철학”이라고 했는데요. 백색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해서 건물이 조경의 일부로 삽입된 ‘묵직한 조형물’처럼 보이기를 의도했다고 합니다.

또 기하학적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백색 콘크리트,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또 유리 통창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외부 조경을 장식적인 요소로 활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특히 미술관이 높은 부지에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곳곳에 강릉 도심과 미술관 1층 공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공간이 마련된 것이 돋보입니다.

루치오 폰타나와 공간주의

루치오 폰타나의 ‘검은 빛의 공간 환경’(1948~1949년·2024년 재제작). 솔올미술관 제공
이렇게 만들어진 미술관의 개관 전시는 ‘루치오 폰타나: 공간, 기다림’과 ‘인 다이얼로그: 곽인식’전이었습니다. 1·2층 두 전시관은 폰타나 작품, 2층 한 전시관은 곽인식의 작품으로 채워진 소규모 전시인데, 하이라이트는 2층 전시실 2에서 만날 수 있는 폰타나의 공간연작이었습니다.

캔버스를 찢거나 구멍을 낸 작품으로 잘 알려진 폰타나는 회화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작가입니다. 미술의 역사에서 회화가 현실 속 대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런 캔버스에 구멍을 내면서 ‘캔버스도 물질일 뿐’임을 보여주어 미술의 역사에 남았습니다.

폰타나는 20·30대 때는 조각 작품을 하다가, 40대부터 이런 미술의 새로운 개념을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된 작품들이 바로 공간연작입니다. 공간 연작은 1947년 폰타나가 ‘공간주의 - 제1차 공간주의 선언’을 하고 난 뒤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루치오 폰타나의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1967년·2024년 재제작). 솔올미술관 제공
우선 공간주의에서 폰타나가 주장한 바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예술은 행위로서 영원하지만 물질적으로는 수명을 다 할 것이다. (…) 우리는 영원이라는 감각을 해방시키기 위해 미술을 물질에서 분리하고자 한다. 수행된 행위가 한 순간에 불과하든 천 년 동안 생명을 이어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행위가 수행됐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원하다.”

즉 캔버스 위에 그려진 물질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사람의 ‘행위’가 행해졌다는 것 자체로 영원하다고 폰타나는 말하고 있는데요. 이 말에 비추어보면 찢어진 캔버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예술가가 칼로 찢어낸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폰타나는 공간 연작에서 캔버스를 벗어나 가벽과 빛을 활용해 3차원 공간 위에 조형 언어를 그려 넣습니다. ‘검은 빛의 공간 환경’,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 등은 1940~1960년대 작품으로 빛과 시각 효과를 활용해 인기를 끈 올라퍼 엘리아슨보다 훨씬 앞섰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 역시 선을 그리는 작가의 제스처를 강조한 작품으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루치오 폰타나의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1951년, 2024년 재제작). 솔올미술관 제공

하드웨어는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그러나 이날 기자간담회는 김석모 솔올미술관장의 작심 발언으로, 미술관을 현재 운영하는 한국근현대미술재단(이사장 박명자)과 향후 운영하게 될 강릉시와의 갈등이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김 관장은 다음 전시가 마무리되는 8월이면 미술관 운영에서 손을 뗍니다. 기부채납 절차가 마무리되면 강릉시 산하 강릉아트센터에서 이관받아, 강릉시립미술관의 형태로 운영합니다. 솔올미술관이 ‘세계미술과 한국미술을 연결하겠다’는 포부로 개관했지만 사실상 8월 이후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관해 운영 주체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건지, 향후 운영 과정에 대해 협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질문이 나왔고 김석모 관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강릉시가 어떤 미술관을 운영하겠다는 청사진을 공유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도와드릴 의사가 있다. 시 쪽에서도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그러한 정보들이 충분하게 공유되고 있지 않는 것이 사실이고 답답한 상황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미술계가 우리 미술관 때문에 들썩이고 있는데 단 한 군데 들썩이지 않는 곳이 바로 강릉시청”이라는 작심 발언까지 나왔습니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솔올미술관
강릉시와 한국근현대미술재단 사이에 어떤 의견 차이가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날 간담회에서는 미술관의 ‘작품 소장 계획’에 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김석모 관장은 “미술관에는 아무 작품이 아니라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작품을 소장해야 한다”며 “사실 여기 있는 폰타나 작품을 다 합치면 이 건물의 몇 배가 넘는 가격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각 지자체 재정 규모가 다르지만, 시민들이 원하는 중요한 작품은 현실적으로 소장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며 오히려 ‘소장품 없는 미술관’을 통해 유연한 운영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강릉시 관계자는 다른 입장입니다.

“기부채납이 완료되면 강릉아트센터에서 운영하게 될 것이지만 기부채납이 완료되는 시기가 불투명하다. 10~11월로 예상되니 마무리되면 내년부터 전시를 정상적으로 열 것이고, 현재 있는 강릉시립미술관과 본관·분관 체제로 운영할지, 또 관장은 지자체 공무원이 겸임할지 선발할지 검토 중이다. 이런 내용에 대해 미술관과 충분히 소통했다.”

그러면서 작품 소장과 연구 등 미술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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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운명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날 해프닝은 ‘미술관 건물은 잘 짓지만 소프트웨어는 없다’는 한국 미술계의 오래된 문제와 연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수 년간 많은 지자체에서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미술관을 짓는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이는 대부분 ‘건물 짓기’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관은 그 안에 소장품, 작품 연구, 전시 기획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건물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솔올미술관 역시 멋진 건물이 작품을 맞이할 준비는 마쳤지만, 그곳의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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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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