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갱짓’이 키운 심미안…북한 화가 걸작이 내 손에 [ESC]

신승근 기자 2024. 2. 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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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짠내 수집일지 그림 수집
외국 길거리서 10만원 안팎 구매
동네 화방 “그저 그런 그림” 판정
평양서 인민화가 작품 67달러에
여행이나 출장 때 수집한 그림들. 왼쪽 세로형 액자가 과테말라 화가 라우로 살라스의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

한때 미술 기자를 꿈꿨던 나는 항상 그림에 진심이었다. 이중섭, 박수근,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뱅크시 등 사연 있는 예술가의 삶을 탐구하고, 나라 안팎 헌책방에서 미술 도록도 부지런히 모았다. 수집한 미술 관련 서적만 300여권에 이른다. 캔버스와 물감이 없어 담뱃갑 은종이에 송곳으로 그림을 그린 이중섭, 잘린 귀를 치료해준 의사에게 감사 표시로 그려준 초상화가 닭장 구멍을 막는 데 사용됐다는 고흐 이야기는 천재 화가의 그림에 대한 환상을 자극했고, 나도 화가의 그림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부추겼다.

여행지에선 괜찮아 보였지만…

현실에서 좋은 그림을 소유하는 건 그림의 떡이었다. 한때 탄광촌 화가로 알려진 황재형의 작품에 매료돼 그의 그림을 사려고 없는 살림에 꾸준히 돈을 모은 적도 있었다. 매달 30만원씩 1년 동안 360만원을 모아 2010년 그의 전시회가 열린 가나아트센터(서울 평창동)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의 작품 가격은 이미 내가 근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나는 이미 우회로를 통한 대리만족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여행이나 취재를 위해 나라 밖에 나갔을 때 그곳에서 그림을 수집한 것이다. 10만원을 넘지 않는 돈으로 거리 화가의 그림을 산다는 게 애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정도 비용으로 좋은 그림을 산다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출장지나 여행지에선 정말 괜찮아 보여 구매한 작품 대다수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엔 실망을 안겨줬다.

인생 첫 그림 구매지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였다. 2000년 여름, 베네치아 항구에서 파스텔로 그린 풍경화를 파는 거리 화가를 발견했다. 당시 한화 7만원 정도 하는 작품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 구매했다. 귀국 뒤 동네 화방에 들러 액자를 맞추려니 “뭐 이런 그림에 액자까지 만드시냐”는 답이 돌아왔다. 관광객 주머니를 겨냥해 짧은 시간에 그린 ‘그저 그런 그림’이라는 평가에 가슴은 무너졌지만 들인 돈이 아까워 책상 유리판 밑에 넣어두고 베네치아를 추억했다. 하지만‘그저 그런 그림’은 회상의 도구로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결국 몇 차례 이사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호갱짓’은 그만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번번이 비슷한 실수를 반복했다. 한번은 아랍에미리트 전통 시장에서 작은 합판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붉고 노란 꽃이 핀 듯한 나무가 있는 골목을 차도르를 입은 두 여인이 걸어가는 풍경과 색감, 합판에 그린 그림이라는 요소까지 어우러져 아주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한화 10만원 정도의 작은 그림(25㎝×16㎝)이지만 현관 옆에 걸어두고,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보는 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림이 있는 합판이 조금씩 뒤틀리면서 액자 프레임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뒤틀린 합판을 바로 잡겠다고 뒤쪽을 밀봉한 갱지를 뜯어내자 실리콘으로 합판과 액자를 붙인 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뒤 같은 그림인데 느낌은 180도 달라졌다. 아랍의 풍경을 드러낸 그럴듯한 그림이 지하철 공중 화장실에 걸린 아크릴 소품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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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의 색채화가 작품을 만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에서 구입한 북한 인민예술가 김정중의 ‘산촌’.

실패만 반복한 건 아니다. 거듭되는 ‘호갱짓’에 그림을 보는 심미안이 생기고, 우리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훨씬 낮은 나라에선 비교적 질 좋은 그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때 공동취재단으로 평양에 간 일이 있다. 당시 공식 행사를 취재하는 게 아니면 평양 고려호텔을 벗어날 수 없던 나는 호텔 안을 떠돌았다. 당시 공훈예술가 리광철이 운영하는 그림 판매점을 호텔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그림을 좀 사고 싶다”고 하니, 리광철은 북한 만수대 창작사 소속 화가의 40여점을 보여줬다. 대부분 사슴이 거니는 숲속, 호랑이나 야생마를 그린 작품, 수묵 풍경화가 대부분이었다. 사진을 찍은 듯 사실적인 화풍이 특징적이었지만 내겐 1980년대 동네 이발소에서 보던 달력 그림처럼 느껴졌다. “좀 거친 질감의 유화는 없냐”고 묻자 그는 창고에서 둘둘 말린 그림 20여점을 더 꺼내왔는데 딱 한점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붓이 아닌 조색 칼로 두꺼운 물감을 캔버스에 덕지덕지 바른 ‘폭포’였다. 화가 리광철은 “북한에서 거친 폭포를 가장 잘 그리는 인민예술가 김정중의 작품”이라고 했다. 화풍이 맘에 든 나는 김정중의 다른 작품도 찾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창고를 한참 뒤져 ‘산촌’이라는 작품을 찾아냈다. 절벽을 굽이쳐 휘돌아 나가는 큰 개울이 있는 마을 풍경을 조색 칼로 그려낸 그림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거다 싶어 흥정을 시작했다. 리광철은 자신의 작품까지 구매하면 싸게 주겠다고 해, 90㎝×60㎝ 크기 김정중의 대형 작품 두 점 ‘산촌’과 ‘련주담 폭포’, 그리고 66㎝×46㎝ 크기의 리광철 작품 ‘밀림의 아침’까지 3점을 200달러에 샀다. 남쪽으로 돌아올 때 물품 검색을 거쳐 북한 체제 선전 작품이 아니면 반입이 허용됐다. 작품 1점당 67달러에 구매한 셈인데, 수천만원을 호가하던 당시 국내 화가 작품은 물론 백화점에서 파는 장식용 그림보다도 저렴했다.

그림다운 그림을 소장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 남쪽으로 돌아와 인사동 화방을 찾아 표구를 의뢰했다. 그런데 작품당 30만원을 달라고 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비용에 표구를 포기하고 벽면에 압정으로 그림을 고정한 채 몇 년을 지냈다. 그 뒤에도 남미·베트남·일본 등 여행지에서 인증샷 찍듯 몇만원짜리 그림을 사들였고, 내 수집 욕구를 잘 아는 몇몇 지인은 쿠바·러시아 등에서 사 온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북한 미술품에 대한 국내 수요가 늘면서 만수대 창작사 작품을 수입 판매하는 전문 인터넷몰이 생겨나고, 시중에 위작이 넘쳐난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북한 인민예술가의 진품은 상당한 가격에 판매된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김정중이 북한 최고의 색채 화가로 꼽힌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 더는 허섭하게 대접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2011년 큰마음 먹고 ‘산촌’, ‘밀림의 아침’, 그리고 과테말라에서 구입한 라우로 살라스의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 3점을 멋지게 표구해 거실 벽에 온전히 걸었다. 집안에 들어오는 빛의 강도에 따라 미세한 색감의 변화를 드러내는 ‘산촌’은 요즘처럼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내겐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글·사진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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