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시작하는 달, 그해 복을 비는 달

조혜정 기자 2024. 2.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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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_정월대보름
경기일보DB

 

정월 대보름 전날 어린아이들은 집집마다 오곡밥을 얻으러 다니고, 묵은나물을 종류별로 나눠 먹으며 이웃의 건강을 빌어 준다. 나이 수만큼 깨물어 먹는 부럼은 부스럼을 막아주고 차가운 술 한 모금은 1년 내내 좋은 소식만 듣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농경사회에서 풍요와 건강, 풍성한 수확을 기원했던 정월 대보름 풍습은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삶의 지혜 아닐까.

◆ 정월 대보름, 국가무형유산 지정

지난해 12월 18일 문화재청은 우리 민족의 5개 대표 명절을 신규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무형유산 정책이 전문 기·예능을 보유한 전승자 중심에서 온 국민이 함께 전승해온 공동체의 생활관습으로 확대됨에 따라 2022년 한복생활, 윷놀이에 이어 가족과 지역공동체의 생활관습으로 향유·전승돼온 명절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한 것이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명절은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로 한 해 시작을 기념하는 ‘설과 대보름’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이자 성묘, 벌초, 제사 등의 조상 추모 의례를 중심으로 전해 내려온 ‘한식’ ▲음력 5월 5일로 다양한 놀이와 풍속이 전승돼온 ‘단오’ ▲음력 8월 보름날로 강강술래부터 송편까지 다양한 세시풍속을 보유한 ‘추석’ ▲24절기 중 22번째 절기로 1년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지’ 등 5개 명절이 꼽혔다.

설과 함께 선정된 ‘정월 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 설날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 지내는 날’이라는 뜻의 오기일(烏忌日)로 불리기도 하고 상원(上元)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원(中元·7월 15일), 하원(下元·10월 15일)과 연관해서 부르는 한자어다.

이 중 오기일과 관련된 전설은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편에 나온다. 까마귀가 신라 소지왕을 인도해 위험을 면하게 했고 그 뒤 정월 대보름에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 이는 정월 대보름 전후로 찰밥과 약밥을 먹는 풍속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달은 음(陰)에 해당하는 여성으로 본다. 달은 여신, 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졌다고 여겼다. 또 달은 풍요로움의 상징이기도 한데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냈다.

집단, 나뭇가지 등을 묶어 쌓아올린 무더기를 ‘달집’이라고 한다. 달집이 잘 타오를수록 그 해 농사가 풍년일거라는 징조다. 경기일보DB

◆ ‘작은보름’부터 시작된 대보름 풍습

올해 정월 대보름은 2월 24일이다. 정월 대보름은 설날이나 추석처럼 휴일이 아니어서 명절이라는 인식이 낮은 편이지만 정월 대보름만큼 전통풍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명절도 흔치 않다. 24절기 중 첫째 절기인 입춘과 음력 1월 1일 설날을 지내고 맞기 때문에 농경사회였던 과거엔 한 해 농사 운을 점치고 새해 행운을 기원하는 기복적 성격이 강했다.

대보름 풍속은 전날인 음력 1월 14일부터 시작됐다. 매우 드물지만 정월 14일을 ‘작은보름’이라고 부르는 지역도 있었는데 작은보름날 미리 지어 놓은 오곡밥을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얻으러 다녔다. 이는 대보름날 세 집 이상 성(姓)이 다른 집 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곡밥은 쌀, 조, 팥, 수수, 기장 등 다섯 가지 곡식으로 만드는데 과거 가을 추수 때 가장 잘 자라던 곡식들을 모아 한 밥공기에 담으니 다섯 가지 곡식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오곡밥과 함께 진채(陳菜)를 먹는다. 묵은 나물이라는 뜻으로 햇볕에 오래 말린 나물은 영양이 응축돼 있어 겨울철 건강에 도움이 되고 여름에 더위 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박, 버섯, 콩, 순무, 무잎, 오이, 가지, 고사리 등 아홉 가지 나물을 먹고 진채 외에도 호박잎, 도라지, 콩나물 등을 쓰기도 한다.

또 대보름 전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믿었기 때문에 잠을 참으며 날을 샜고 잠을 참지 못하고 자는 아이들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놀리곤 했다.

설날 아침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를 먹듯이 정월 대보름 새벽에는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아침 일찍 나이 수만큼 부럼을 깨물어 먹었다. ‘부럼깨기’를 하면서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비는 풍습이기도 한데 실제로 견과류는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을 챙길 수 있다. ‘귀밝이술’은 이른 아침 데우지 않은 찬술을 남녀노소 구분 없이 조금씩 마시는 풍습인데 이름처럼 귀가 밝아지고 귓병을 막아주며 1년 내내 좋은 소식만을 듣기 바란다는 희망이 담긴 술이다.

정월 대보름 대표적인 편싸움 놀이는 줄다리기다. 승패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예견했다. 경기일보DB

◆ 승패 가르는 놀이로 풍흉 예견

한편 대보름 아침 ‘더위팔기’로 하루가 시작된다. 이날 아침에 사람을 만나면 급히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 말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1989년 서울시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한 답교놀이는 ‘다리밟기’로 말 그대로 정월 대보름 밤에 다리를 밟으면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성행했다. 이 또한 한 해 동안 다리의 병을 비롯해 무병하기를 기원하는 데 있다. 정월 대보름의 풍습이 마을 공동체의 기원과 풍년을 기원하듯이 정월 대보름에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놀이들이 행해진다. 이때 놀이들은 단순히 유희와 오락의 의미만이 아니라 승패를 가르는 놀이로 농사의 풍흉을 예견했다. 정월 대보름에 행해진 대표적인 편싸움 놀이는 줄다리기다. 대개 대보름 밤에 거행되며 종류에 따라 아이들 골목 줄다리기, 어른 줄다리기, 마을 줄다리기로 나뉘며 진행 과정과 내용이 다양하다. 줄다리기는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달집 태우기’는 달집을 만들어 달이 떠오를 때 태우면서 풍년을 비는 풍속이다. 모아 놓은 짚단이나 생솔가지 등을 묶어 쌓아 올린 무더기를 달집이라고 하는데 달집이 활활 잘 타오를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그해 농사가 풍년일 거라는 징조라고 한다. 달집을 태울 때 풍물패가 주변을 맴돌며 흥을 돋운다. 이 밖에도 정월 대보름에 날리는 연은 ‘액막이연’으로 불렸다. ‘송액(送厄)’,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귀를 써서 정초부터 날리다가 대보름날에 연줄을 끊어 날려 보냄으로써 그 연의 주인이 지닌 액은 다 사라진다고 믿었다.

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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