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소박, 매력 대박… 대한독립영화 만세!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2. 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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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영화 부진 속 … 저예산 작품은 약진
제작비 12억 투입 '소풍'
관객 30만명 육박 돌풍
11만명 동원 '다음 소희'
칸 영화제까지 초대받아
작년 개봉 영화 210편 중
절반 이상 독립·예술영화
희소성 좇는 소비 트렌드
영화시장으로까지 번져
노년의 애환을 담은 영화 '소풍'의 한 장면. 12억원에 불과한 제작비로 만들어졌지만 관객 26만명을 돌파하고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올해 극장가에서 대박 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비싼 관람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한 영화 감상 등으로 관객의 외면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상업 영화가 단 7편에 그치면서 투자가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위기에서도 소자본으로 제작돼 오직 각본과 연기, 연출력으로 승부하는 저예산 독립·예술영화가 최근 잇달아 의외의 흥행을 거두면서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일종의 '흥행 성공공식'이 반영된 상업영화보다는 소재가 다양한 편이고 상대적으로 얼굴이 덜 알려진 배우들이 등장해 신선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집계에 따르면 이달 7일 개봉한 김용균 감독의 독립영화 '소풍'은 개봉 2주 만인 지난 22일 누적 관객 27만명을 돌파하고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뤄 정치적으로 화제가 된 영화를 제외하면 한국 독립·예술영화가 누적 관객 20만명을 돌파한 것은 2014년 홍석재 감독의 '소셜포비아'(25만명) 이후 10년 만이다. 특히 요즘처럼 극장가 빙하기에 독립·예술영화로 손익분기점을 달성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김 감독이 2013년 전작 이후 11년 만에 내놓은 '소풍'은 절친이자 사돈지간인 두 친구가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 열여섯 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면서 노년의 애환과 현실적인 고민을 담아낸 작품이다.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시니어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지만, 이 영화의 제작비는 총 12억원에 불과하다. 대부분 80억~1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 투입되는 상업영화 제작비와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흥행을 거둔 '서울의 봄'(누적 관객 1300만명) 제작비가 총 232억5000만원이었고, '범죄도시3'(1000만명) 역시 총 135억원이 투입됐다.

영화 '다음 소희'의 한 장면. 전주 콜센터 현장학습생 자살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트윈플러스파트너스

앞서 지난해 2월 개봉한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제작비 15억원)도 관객 11만명을 동원하며 선방했다. 2017년 벌어진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2022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스크린에 걸렸다. 신인 배우 김시은과 배두나가 주연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감정에만 호소하는 신파극 대신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려 관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줬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유명 출연진 없이 러닝타임을 채운 독립영화 '수라'와 '신체모음.zip'도 지난해 누적 관객 6만명을 달성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수라'는 말라가는 갯벌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새들과 이들과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서 황 감독은 오래전 갯벌에 관한 다큐를 만들다 포기했던 영화감독 '윤'으로 등장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관객의 공감을 샀다.

사이비 종교를 둘러싼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공포 영화 '신체모음.zip'의 한 장면.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호러물인 '신체모음.zip'은 사이비 종교 단체를 잠입 취재하던 막내 기자 시경(배우 김채은)을 통해 신에게 신체 일부를 제물로 바치는 충격적인 의식과 관련한 여섯 가지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다. 최원경 감독 등 감독 6명이 각각 만든 단편영화 6편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낸 시도가 돋보였다는 평이 많았다. 그 밖에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 김현지 감독의 '어른 김장하'도 지난해 각각 3만명과 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영화계 투자 위축으로 상업영화 제작 편수가 크게 줄면서 독립·예술영화 편수가 상업영화 편수를 넘어서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 실질 개봉작(실제 관객을 대상으로 한 상영을 목적으로 개봉한 작품) 총 210편 가운데 108편이 독립·예술영화였고 나머지 102편이 상업영화였다. 독립·예술영화의 연간 개봉 편수가 상업영화보다 많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는 게 영화계 분석이다.

극장 회복세 역시 독립·예술영화가 상업영화보다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가운데 1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32편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61편)의 52%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해 개봉해 1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독립·예술영화는 22편으로, 2019년(34편)의 64% 수준을 기록했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독립·예술영화가 주목받게 된 데는 최근 전반적인 소비 트렌드가 개인 취향 중심으로 다양화한 영향이 크다. 이른바 '마이크로 트렌드'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세대가 유행이나 대세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취향과 개성에 집중하고 희소성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영화의 소재나 출연 배우, 연출 방식, 스토리 라인 등 측면에서 독립·예술영화가 상업영화보다 다양성이 커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톱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연예인 마케팅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에 열을 올리는 상업영화보다 내실 있게 작품에 집중해 피로감이 덜하다는 인식도 있다.

최근 외국 독립영화가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일례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지난달 31일 개봉한 프랑스의 독립영화 '추락의 해부'는 국내에서 누적 관객 7만명을 돌파했다. '추락의 해부'는 의문의 추락사로 남편이 죽은 뒤 용의자로 몰린 유명 작가 산드라를 둘러싼 법정 심리극으로, 대단한 극적 장치는 없지만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추리 형식으로 풀어내 주목받았다.

한편 정치인과 같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하면서 논란과 동시에 화제를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한 독립영화도 상당하다. 이달 1일 개봉해 지난 22일 기준 누적 관객 82만명을 돌파한 김덕영 감독의 다큐 영화 '건국전쟁'과 또 다른 다큐 영화 '문재인입니다'(2023·11만명), '그대가 조국'(2022·33만명) 등이 대표적이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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