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국물, 쫄깃 닭다리에 절로 몸보신…이 집 주무기는 따로 있다는데

손지민 기자 2024. 2. 2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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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서울 은평구 옻오리·옻닭 전문점 토담집
서울 은평구 불광동 ‘토담집’의 산닭백숙과 밑반찬. 손지민 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빌딩 숲이 가득한 서울 시내에도 자랑할 만한 자연 명소가 있다. 서울의 유일한 국립공원, 북한산이다. 북한산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지하철 6호선 독바위역은 마치 ‘북한산 등산객 전용’ 지하철역처럼 자리잡고 있다. 독바위역의 유일한 출구부터 북한산 초입까지는 좁고 경사가 가파른 길이 한참 이어진다.

‘등산을 하기 위해 가는 길도 산 같구나’란 감상을 자아내는 길목을 지나면 운치 있게 뻗어 있는 감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은평만 가도 공기가 다르다”던 어느 선배의 말처럼 북한산 아래 주택가에서도 맑고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감나무 옆 시골 고향집같은 정겨운 식당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연기가 폴폴 나왔다. 은평구청 공무원이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라며 ‘은평구의 숨은 맛집’이라 강조했던 옻오리·옻닭 전문점 ‘토담집’이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한 마리라고 믿기지 않는 크기의 ‘산닭백숙’이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씨 탓일까, 각종 재료를 넣고 푹 끓인 진한 국물은 마시기만 해도 몸보신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순서는 닭이 먼저였다. 이내 윤기가 흐르는 커다란 닭다리가 앞접시 위에 놓였다. 쫄깃한 닭다리살을 한 입 베어 물자 그렇게 좋아했던 닭백숙을 최근 몇 년간 먹지 못했단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집에서 직접 만든 맛이 나는 김장김치와 함께 먹으니 ‘환상의 조합’이었다.

서울 은평구 ‘토담집’에서 산닭백숙을 손질하고 있다. 손지민 기자

한국인은 메인 메뉴를 먹고 밥을 볶아먹어야 식사가 끝난다고 했던가. 산닭백숙도 부드러운 찹쌀을 남은 국물과 함께 끓여 먹어야 비로소 식사가 끝난다. “너무 배불러요”라며 손사래를 친 지 5분 만에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더는 못 먹겠다’ 생각했는데 뭉근한 찹쌀죽은 어느 배로 들어가는지 술술 들어갔다. 찹쌀죽까지 ‘클리어’하자 진짜로 식사가 끝났다.

“우리 집에선 원래 옻을 먹어야 해. 전국에서 우리처럼 좋은 옻을 쓰는 데가 없어요.” 토담집의 유기석 사장은 깨끗이 비운 산닭백숙 냄비를 보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토담집의 대표메뉴는 옻오리, 옻닭 등 옻요리다. 옻닭은 옻나무 껍질을 벗겨 구기자, 감초, 녹찻잎, 월계수잎 등 각종 재료와 함께 푹 달인 물에 닭을 넣고 끓여 만든다. 위장에 좋은 보양식이지만, 옻 알레르기가 올라와 가려움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보통 알레르기를 완화하는 약을 먹고 옻요리를 먹는다.

“옻닭 드셔 보신 적이 없으면 닭백숙으로 드시는 게 나을 거에요.” 은평구청 공무원의 조언에 따라 백숙을 택했지만, 유 사장의 ‘강력 추천’에 옻닭의 맛이 몹시 궁금해진다. “특별한 비법이 없어요. 한약재로 유명한 제천에서 공수해오는 좋은 옻이 비법이지. 그 옻은 효능 자체가 달라요.” 토담집은 옻에서 나오는 진을 최대한 살려서 요리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옻 알레르기 가능성도 높지만, 효능 역시 뛰어나다. 옻닭과 산닭백숙 모두 1마리에 7만원이다. 성인 3∼4명 정도면 1마리로 충분하다. 이날 성인 4명이 산닭백숙 1마리를 먹고 “양이 이렇게 많은 줄 모르고 추가 메뉴도 주문할 뻔 했다”며 든든해진 배를 두드렸다.

서울 은평구 북한산 아래 위치한 ‘토담집’의 모습. 손지민 기자

토담집은 문을 연 지 벌써 40년이 됐다. 처음엔 은평뉴타운 주택가에서 영업을 시작했지만, 재개발이 되면서 북한산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은평뉴타운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토담집은 이제 북한산 등산객들이 산행 전후 배를 든든히 채우는 맛집으로 변모했다. 유 사장이 이곳의 운영을 맡은 건 8년 전부터다. 유 사장은 토담집 개업 초기부터 자주 방문했던 ‘초창기 단골 멤버’였다.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온 유 사장은 은퇴 후 토담집을 찾았다가 가게 운영을 권유받았다. 함께 방문한 친구가 당시 몸이 불편했던 주인 어르신에게 “할머니, 이제 그만 하시고 우리 친구 주시오”라 말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닭을 손질할 줄도 몰랐던 유 사장은 주인 어르신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유 사장이 자랑하는 옻도 주인 어르신이 공수해오던 곳에서 그대로 받아 온다. ‘단골손님’이 가게를 물려받아 주인이 된 셈이다.

“다음에 오셔서 술 한잔 같이해요.” 가게를 나서자 유 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배웅했다. 단골손님에서 베테랑 사장이 된 유 사장의 미소에서 기분 좋은 쾌활함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와야겠다. 토담집의 자랑인 옻닭을 먹으러.

손지민 기자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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