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100마리 잡아야 라면”…형제복지원서 옮겨간 덕성원도 지옥
3살 때 엄마에게 업혀 형제복지원 행…7살 때 덕성원
토요일 점심에는 파리 100마리를 잡아야 했다. 100마리를 채우지 않으면 라면을 먹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야외 변소(화장실) 주변에서 그야말로 ‘똥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둘렀다. 꾀를 내어 미리 죽은 파리를 모아놓기도 했다. 라면 한 그릇 먹기 위한 사투였다
안종환(49)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산 아동보호시설 덕성원은 지옥 또는 북한이었다. 실제로 아이들은 원장을 김일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이 붙일 수 있는 최악의 별명이었다. 안씨는 “덕성원이라는 곳은 노동착취, 자유박탈, 가혹행위, 종교세뇌가 기본이었다. 형제복지원, 영화숙·재생원과 다를 바 없었다”고 말했다. 덕성원 피해자 중에서 유일하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인권침해 조사 신청을 냈던 안씨는 지난 2월1일 덕성원 피해생존자협의회를 결성해 대표를 맡았다. 22일 오전엔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위를 방문해 인권침해 조사를 총괄하는 이상훈 상임위원에게 덕성원 직권조사를 요청했다.
덕성원은 설립자 서용구가 1949년 11월 서울 면목동에 모의보육원을 세운 뒤, 한국전쟁 이후인 1952년 1월 부산시 동래구 중동 924-2로 옮겨 정착한 보육시설이다. 덕성보육원으로 시작해 1996년 사회복지법인 덕성원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다가 2000년 폐원했다. 이후 사업을 전환해 현재 부산 해운대구 반송로에서 은화노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시는 덕성원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16명의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지난 7일 진실화해위에 덕성원 직권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안씨는 3살 무렵 어머니 등에 업힌 상태로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그곳에서 7살까지 생활했다. 경북 점촌에 살던 어머니 김성분씨가 지인을 만나러 부산에 왔다가 부산역에서 경찰에 잡혀 넘겨졌다고 했다. 안씨는 곧바로 어머니와 분리돼 또래들과 함께 소대생활을 했고, 다시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어머니의 형제복지원 입소기록은 있으나 퇴소기록은 없다. 지금도 생사를 모른다. 안종환씨로서는 진실화해위의 도움으로 최근 유일한 피붙이인 형 안종태(59)씨를 46년 만에 만난 게 그나마 기적 같은 행운이었다.
안씨가 형제복지원에서 덕성원으로 옮겨진 건 1982년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름도, 생년월일도 바뀌었다. 안씨의 원래 이름은 안종한이다. 덕성원은 경비가 삼엄했던 형제복지원에 비하자면 울타리도 없어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감옥 같기는 마찬가지였다. 안씨는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옷 갈아입으라’는 방송을 했다. 그러면 좋은 옷을 입고 웃음 지으며 사진을 찍었고, 손님들이 돌아가면 다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외부에만 천국처럼 보였다”고 했다.
120~150명 되는 아동들은 학교 마치고 오면 농작물 재배에 동원되었고, 히로시마(머리를 땅에 박고 엎드려 뻗치기)라 불리던 군대식 기합이 일상적으로 가해졌다. 말을 안 듣는다고 형제복지원으로 다시 넘겨진 경우도 있었다. 안씨는 도망간 원생들 이름을 기억했다. 김광O, 노춘O, 김병O….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이들이 덕성원에서 탈출했으며, 해외로 입양된 경우도 있다고 했다.
1995년 덕성원에서 나온 안씨는 전남 순천에서 수산업을 해 회사를 크게 키웠다. 그런데 2000년 덕성원 설립자의 첫째 딸 서아무개씨에게 3억원이라는 거액의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자가 본인만이 아니라고 했다. 덕성원에 있을 때는 매일 때리고 일을 시켜놓고, 퇴소한 뒤에는 원생들이 밖에 나와 악착같이 일해 모아놓은 돈을 빌려 가 떼어먹었다는 것이다. “덕성원에서는 특정 종교를 강요당했어요. 저도 그때 종교에 심취해 있었고요. 원생 때부터 세뇌됐고 한동안 거기서 벗어나지 못해 생긴 일입니다.”
진실화해위는 현재 덕성원 퇴소자 511명 명단을 확보해 참고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덕성원을 이어받은 부산 은화요양병원의 서아무개 대표이사(덕성원 설립자 서용구의 둘째 딸)와 김아무개 원장(서용구 외손자)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안씨가 요구하는 직권조사와 관련해서는 “신청을 못 한 피해자까지 최대한 보고서에 담아 그들의 피해사실도 법원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진실화해위는 현재 27명의 덕성원 피해자를 참고인 조사한 상태로, 추가조사까지 완료해 6월 내 보고서를 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안씨는 “어린 시절 덕성원에서 인간 대접을 못 받고 물건이자 도구처럼 쓰인 게 너무 억울하다. 국가가 어린아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일에 대해 지금이라도 책임져야 아름다운 선진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2일 진실화해위 이상훈 상임위원과의 면담에서는 “2021년 5월에 사건 신청했는데 진실화해위 조사 속도가 너무 더딘 것 같아 속상했다”고 밝히면서 이런 말도 했다. “오죽했으면 제가 지난해 추석 직전 유리로 손목을 긋는 자해를 했겠습니까.”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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