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더럽게 찬란한 청춘이여…'오키쿠와 세계'

손정빈 기자 2024. 2. 23. 06: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키쿠와 세계'만큼 더러운 영화는 없다.

다소 당황스러운 표현일지 모르나 '오키쿠와 세계'는 똥의 영화다.

'오키쿠와 세계'는 틀림 없는 청춘 영화다.

그래서 '오키쿠와 세계'는 흑백 영화인데도 찬란하게 빛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오키쿠와 세계'만큼 더러운 영화는 없다. 똥으로 시작해 똥을 보여주다가 똥으로 끝나버린다. 당연하게도 구역질과 불쾌로 채워져야 할 90분이지만, 사카모토 준지(阪本順治·66) 감독의 이 이상한 영화는 산뜻하고 유쾌하다. 게다가 종종 아름답기까지 하다. 말하자면 '오키쿠와 세계'는 밑바닥을 뒹군다. 몰락이 있고 굴종이 있고 발악이 있고 비통이 있으며, 천하고 비루하고 박복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삶이라는 것, 그 중에서도 청춘이라는 것엔 절망만 있진 않은 것 같다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시간은 흐르고 삶은 제자리인 것 같지만, 세계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우린 아직 젊다. 그래서 이 말이 자꾸 입안을 맴돈다. "청춘이로구나!"


'오키쿠와 세계'는 시(詩)다. 몰락한 사무라이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 인분을 사고 파는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 폐지를 모아 팔다가 야스케를 따라 인분 장사에 합류한 츄지(칸 이치로)의 이야기엔 명료한 스토리가 없다. 영화는 이들이 지나가는 2년여 시간 중 일부를 떼어내 이어 붙인다. 서장과 종장 사이 7개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단일하게 연결되는 사건들을 보여주고 연결하는 대신 사건 이후와 삶의 찰나에, 바뀌어버린 마음과 잠깐의 대화에, 말로는 표현되지 못한 채 몸으로 발산되는 감정에 주목한다. 익숙하지 않은 화법이지만 정교하기에 이 시는 어렵지 않게 관객 마음에 스며든다.


다소 당황스러운 표현일지 모르나 '오키쿠와 세계'는 똥의 영화다. 이 작품에서 똥은 밑바닥 인생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너절한 청춘을 상징하는 것 같다. 생존이란 손에 똥을 묻히는 것도 모자라 온몸에 똥을 뒤집어 써야 할 정도로 시급한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고, 똥거름을 통해 자라난 농작물이 우리 입에 들어가 다시 똥이 돼 나오는 순환을 보여줌으로써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야스케와 츄지는 항상 똥 지게를 지고 뛰어다니고, 사람들은 다들 똥을 싼다. 야스케와 츄지와 오키쿠 세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은 변소 앞이었다. 오키쿠 역시 똥을 싼다. 그래서 오키쿠는 츄지의 이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이런 나라도 괜찮은가요?"


'오키쿠와 세계'는 틀림 없는 청춘 영화다. 19세기 말 일본이 배경이고 사무라이나 인분 등이 소재로 쓰여 생경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이 작품이 그려내는 캐릭터는 청춘이라는 시기에만 담겨 있는 감각을 뿜어내는 데 거침이 없다. 오키쿠처럼 변할 수 있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고, 츄지처럼 자존심을 굽히지 않으려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며, 야스케처럼 꿈을 잃지 않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다. 고달픈 삶이지만 웃을 수 있고 그 가운데서도 사랑을 꽃피우려 하며 속내를 꺼내보이는 게 어설픈 것도 그들이 청춘이기 때문이다. 발이 꽁꽁 얼어붙어도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려 하는 것도 청춘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키쿠와 세계'는 흑백 영화인데도 찬란하게 빛난다.


시대의 분위기와 극의 분위기 그리고 이야기의 맥락을 빠짐 없이 반영해 보여주는 '오키쿠와 세계'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가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있다. 세 사람이 변소 앞 처마에서 비를 피하는 풍경, 강변을 걷는 야스케와 츄지의 걸음 걸이, 츄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오키쿠의 얼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으로 인분을 쓸어 담는 야스케의 의지가 담기 그 모습들은 아름답게 보여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된다. 특히 츄지가 오키쿠에게 마음을 전하는 시퀀스는 앞으로 고백을 얘기할 때 수도 없이 회자될 장면이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