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단방역 ‘구멍’…부산 야생멧돼지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이유있었네

이민우 기자 2024. 2.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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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미발생 부산지역 수렵인
위험지 드나들며 사체 처리
다른 구역에서도 포획 활동
인위적인 전파 가능성 높아
부산지역 야생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검출되는 가운데 초동 방역조치 등에서 허점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은 경기 의정부에 있는 한 양돈농가가 설치한 포획틀에 갇힌 야생멧돼지.

부산지역 야생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검출되는 가운데 사체 처리와 포획 허가 등 차단방역 조치에서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에 따르면 부산에서는 지난해 12월14일 금정구 회동동에서 포획된 야생멧돼지 2마리에서 ASF 바이러스가 처음 검출됐다. 올들어 1월14일 사상구 학장동에서 두번째 ASF 감염 야생멧돼지가 포획됐고, 이후 사상구를 비롯해 서구·사하구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됐다. 이달 20일 기준 부산지역에서 확인된 ASF 감염 야생멧돼지수는 모두 16마리다.

방역당국은 부산지역 최초 포획 시점으로부터 8일이 지난 지난해 12월22일, 금정구가 ASF 최인접 발생지역인 경북 청송·포항과 100㎞ 이상 떨어져 있다는 점을 근거로 야생멧돼지간 이동 전파보다는 인위적 요인에 따른 전파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방역당국은 ASF 감염 야생멧돼지 최초 포획자인 A씨를 대상으로 이동 경로 파악 등 역학조사를 했지만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을 두고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현재 중간조사를 마무리한 시점”이라며 “방역에 혼선을 줄 수 있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방역당국이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과 달리 부산지역 수렵인단체 등은 이번 확산이 방역조치의 허점에서 나온 인위적 전파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A씨 증언에 따르면 방역당국의 초동 조치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 소속 엽사인 A씨는 지난해 12월14일 금정구에서 야생멧돼지 2마리를 포획한 후 불과 나흘 뒤인 18일 사하구 승학산에서 포획활동을 재개했다. 14일 포획한 야생멧돼지에 대한 ASF 검사 결과가 일주일이 지난 21일 뒤늦게 발표됐기 때문에 그 사이 포획활동에 나선 것이다.

12월14일 포획 과정에서 A씨의 차량과 도구 등이 ASF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당시 방역당국에선 어떤 조치도 없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14일 야생멧돼지를 포획한 후 시료를 채취해 시에 전달했고 이후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행동 요령 등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18일 1마리를 추가로 포획했고, 21일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모든 수렵활동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방역당국이 수렵인들의 지역간 이동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부산에서 포획한 야생멧돼지 사체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시행규칙에 따라 매몰 또는 소각처리를 해왔다. 하지만 경남지역에 소각시설이 없어 경북 영천에 있는 랜더링업체에 사체를 보내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천으로 야생멧돼지 사체를 옮기는 이동 업무는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 소속 엽사 B씨가 담당해왔다. B씨는 협회 소속 엽사들이 야생멧돼지를 포획하면 경남 김해에 있는 냉동창고에 보관한 뒤 일주일에 한두번 영천으로 사체를 직접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영천은 ASF 감염 야생멧돼지 다수 발생지역인 포항과 인접한 데다 지난해 12월3일 포획된 야생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위험지역이었음에도, 미발생 지역인 부산지역의 수렵인이 수차례 드나들며 사체 처리 업무를 진행했던 것이다.

특히 B씨는 지난해 12월14일 부산에서 ASF 감염 야생멧돼지가 처음 포획된 날에도 A씨를 도와 사체 1구를 포장·이동했던 것으로 밝혀져 영천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인위적 전파 경로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영천시 관계자에 의하면 방역당국은 지난해 부산에서 ASF 감염 야생멧돼지가 포획된 이후 영천 랜더링업체를 검사한 결과 ASF 바이러스 검출을 확인했다.

야생생물관리협회 부산·울산·경남 지부 관계자는 “영천 랜더링업체가 ASF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가정하면 이를 통해 부산으로 인위적 전파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인위적 전파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무분별한 부산지역의 유해야생동물 포획 허가 또한 ASF 확산에 기여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해야생동물 포획 허가는 ‘야생생물법’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이 내릴 수 있다. 부산의 포획 허가는 각 군수·구청장이 담당한다. 부산 전체 16개 군·구 중 기장군과 강서구만이 별도의 기동포획단을 운용하고 있다.

강서구 환경위생과 관계자는 “현재 강서구에서 활동하는 포획단은 인위적 전파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가급적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나머지 14개 구는 부산야생동물보호협회 소속 엽사 7명이 전담하고 있는데, 소수의 엽사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포획활동에 나설 경우 인위적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오연수 강원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는 “인위적 전파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적은 인원으로 차단방역을 유지하다 보면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방역에 인적·물적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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