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수출 자제해야 하나?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2024. 2. 23.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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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반전 없다면 이 전쟁은 6·25처럼 휴전으로 끝날 것
러시아 상대로 레버리지 없이 선의에만 호소하면 승산 없어
무기공급 자제방침 철회하면 발표만으로도 러 전전긍긍할 것
NATO 우방국들 빚지게 만들어 우리 國難때도 당당하게 요청을
2023년 7월 15일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키이우 성 소피아대성당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손을 잡은 채 대화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년째로 접어든다. 우크라이나가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실지 회복의 꿈은 멀어지고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원 열기도 식어가고 있다. 전세의 극적 반전이 없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국 한국전쟁처럼 휴전으로 결말이 날 것이다. 다만, 러시아의 침공이 핀란드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촉발하고 서방 진영의 결속을 다졌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는 러시아가 잃은 것이 더 많다.

우리 정부는 그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지원하는 것을 자제해왔지만 지원에 앞장서온 나토 회원국들의 탄약 재고를 보충함으로써 이들의 지원 여력을 유지하는 데 나름 기여해왔다. 재래식 무기는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 방지를 위해 수립된 국제수출통제체제나 대외무역법의 규제를 받는 전략 물자가 아니므로 정부가 결심만 하면 수출하는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그간 살상 무기의 직접 공급을 피해온 것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 대한 정치적 부담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가 우리에게 힘이 되어줄 일은 별로 없어도 해코지할 능력과 소질은 과잉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척질 일은 가급적 조심해야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는 우리에게 더 중요한 나라이고 어차피 우크라이나가 이길 가망도 없다면 우크라이나에 베팅하기보다는 헤징을 통한 리스크 최소화가 실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북한 간의 밀착이 가시화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한러 관계에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은 이미 다 잃어가고 있고 더 이상 러시아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졌다. 따라서 이제 대러시아 정책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자제 방침을 전면 재검토할 때가 되었다.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론을 내리되 특별히 유념할 점은 세 가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2023년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에 있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노동신문 뉴스1

첫째, 러시아에 대한 레버리지 강화를 1차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러시아는 대북 제재를 와해시키고 군사·기술 협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키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북한 인력을 대거 수입하고 에너지와 식량까지 지원하면 빈사 상태에 빠진 북한 경제를 살리고 북한이 군비 증강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이렇듯 러시아가 우리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북한의 공범으로 전락하는 것을 견제할 현실적 방도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우리 정부가 무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여할 수도 있지만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한국 무기를 수입할 경우 최종 사용자 증명을 면제해주는 것도 직접 공급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자제 방침을 철회하겠다는 발표만 해도 러시아는 전전긍긍할 것이므로 한국 무기의 실제 공급 여부와 규모를 러북 협력의 레드라인을 설정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무기 공급에 러시아가 반발하는 강도가 높을수록 러북 협력을 견제할 우리 정부의 레버리지도 강화된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아시아의 전략 지형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국력을 허비하는 만큼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칠 여력이 줄어든다.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할수록 북한과 중국의 뒷배 역할을 하고 있는 러시아의 힘이 약화되고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이 공세적 팽창 정책으로 역내 안정을 교란할 여건이 불리해진다. 그런 점에서 지정학적으로는 한국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혜국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19년 7월 23일 중국과 동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는 과정에서 일본도 침범한 적이 없는 독도 영공을 고의적으로 침범한 유일한 국가임을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 국제적 대의와 핵심 우방과의 의리도 고려해야 한다. 74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망국의 위기에 몰린 대한민국을 구해준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지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유럽 우방국들이 대한민국에 빚을 지게 만들어야 우리가 국난을 당하더라도 떳떳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구소련 시대에 배치된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1994년 ‘부다페스트 메모랜덤’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의 불가침을 공약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침략을 자행한 극악무도한 나라다. 이런 나라를 상대로 레버리지 없이 선의에만 호소하는 외교는 승산이 없다. 이중 플레이에 능한 러시아의 협박과 회유에 휘둘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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