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노무현이 옳았다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2024. 2. 23. 03: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힌 여인’이라고 한 것은 19세기 프랑스 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마리 로랭상이었다. 로랭상 식으로 말하자면 가장 비참한 죽음은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잊힌 채 홀로 쓸쓸하게 사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고독사’라고 부른다.

부산은 전국에서 고독사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인구 10만 명당 9.8명으로 전국 평균의 1.5배, 가장 낮은 세종시보다는 2.7배 높다. 고독사 비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부산의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이다.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도시이면서 가구별 소득도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낮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부산의 연간 가구별 소득(근로소득·사업소득·이전소득의 합계)은 5970만 원으로 전국 8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최하위이다. 서울의 82%, 세종시의 69% 정도이다. 부산의 미래 지표라 할 수 있는 지역경쟁력도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8개 특별·광역시 가운데 두 번째로 낮다. 부산의 출산율은 꼴찌에서 두 번째, 노인 인구 비율은 가장 높다. 그래서 어린이집은 노인복지관으로, 결혼식장은 장례식장으로 바뀌고 있다.

1820년대를 기점으로 역사의 주도권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넘어가는데 경제사에서는 이를 ‘대분기(Great Divergence)’라고 부른다. 한때 한국 경제성장의 엔진이자 좋은 일자리가 넘쳤던 부산 몰락의 대분기는 언제였을까? 나는 1972년이었다고 생각한다.

‘10월 유신’ 다음 해인 1972년 박정희 정부는 부산에서 공장을 신설 증설 승계 취득의 경우 취득세와 등록세를 5배 더 내도록 법을 만들었다. 공장 이전이나 업종 변경에 따른 부동산 취득도 마찬가지였다. 대도시 인구과밀을 막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야당 도시 부산에 대한 정치적 탄압의 의도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제도가 폐지된 것은 23년 뒤인 1995년이었다. ‘공업배치법’ 시행 이후 부산 기업은 아예 서울로 가거나, 제한을 받지 않는 김해 양산 등 인근 지역으로 떠났다. 동명목재나 국제상사 등 부산의 전통적 대기업은 망하거나 해체됐다. 1984년 전두환 정부때 국제상사의 공중분해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부산의 제조업이 몰락하면서 연평균 1만 명 이상의 부산 청년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떠난다. 2019년 드디어 수도권 인구는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 수도권 면적은 국토의 11.8%에 불과하지만, 인구 집중도는 50.6%이다. ‘도쿄 일극화’라고 호들갑을 떠는 일본의 수도권 인구 집중도는 34.4%, 영국과 프랑스는 25% 수준이다.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극단적인 수도권 집중현상이 나타나는 나라는 없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은 청년이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현실이 우리나라 ‘저출산과 성장잠재력 훼손’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며 비수도권 거점도시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과 더불어 2대 성장거점으로 발전하고 있던 부산을 ‘공업배치법’으로 망가뜨린 지 52년 만에 나온 이야기이다. 하지만 ‘메가 서울’이 대세인 한국의 담론 지형에서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지역균형발전과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정책에서 탈피, 불필요한 수도권 규제 완화로 생산성을 높여야 하므로 이해 집단들이 국익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2004년 노무현전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수도 이전’이 관습헌법 위반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좌절되면서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발전의 가장 큰 기회는 사라졌다. 지역은 에너지와 우수 인력을 공급하고 기피시설이나 떠안는 서울의 내부 식민지가 되었다. 수도 이전 계획이 좌절되면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공기관 이전’이었다. 공공기관 이전 당시 전국의 모든 지역이 당시 노무현 정부를 비난했다. 왜 우리 지역에는 더 큰 떡을 주지 않느냐고.

공공기관 몇 개 이전으로는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수도 이전을 무산시킨 세력들은 그래놓고도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2004년 3월 12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때 노무현 대통령은 경남지역 혁신보고회장에 있었다. 그날 그는 고려시대 수도를 개경에서 평양으로 옮기자고 주장했던 묘청과 정지상의 죽음 등을 예로 들며 수도 이전과 대한민국 기득권세력 교체에 대해 30분 이상 즉석연설을 이어 나갔다. 몇 년 뒤 자신의 비극적인 죽음을 예감한 듯한 연설이었다. 살아있는 ‘노변’을 내가 만난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탄핵 사유는 선거법과 실정에 따른 경제 파탄 등이었다. 선거법 위반은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수준이었다. 탄핵과 헌재 판결로 균형 발전의 꿈은 날아갔다.


그 후과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수도권 집중 폐해가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하고 지방소멸은 눈앞에 와 있다.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1.4%로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권 국가 가운데 꼴찌이다. 경제 파탄 등을 빌미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던 2004년 그해 성장률은 5.2%였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