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뉴웨이브 in 강릉] 11. 해변의 송림에서 싹트는 퍼블릭 아트

심상복 2024. 2. 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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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머금은 색·공간의 마법, 공공예술로 초대
치유의 숲 비롯 곳곳 송림 반겨
머슬비치 조각작품 관광객 발길
스페인 등대 색 패턴 작업 유명
예술가 협업 도시 세련미 배가
“경포에 유일무이한 공간 조성
공공재 발상의 전환 필요한 때”
▲ 세인트존스 조각작품

강릉이란 지명 앞에는 언제나 붙는 단어가 있다. 솔향이라는 접두어다. 금강송으로 유명한 국립대관령치유의숲을 비롯해 어딜 가나 소나무가 반긴다. 그중에서도 해변의 송림은 특별한 경관을 연출한다. 솔향을 뿜는 숲은 커피 거리로 유명한 안목에서 북쪽으로 주문진 직전 연곡의 솔향캠핑장까지 7㎞쯤 된다.

바다를 접한 다른 도시는 대부분 백사장 다음에 도로와 건물이 이어지지만, 강릉은 다르다.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 보물 같은 해송 숲이 있다. 숲의 두께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송정의 경우 30∼40m에 이르기도 한다. 높이가 3∼4m로 아담한 솔숲에서는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그중에는 맨발로 걷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경포 쪽으로 좀 더 가다 보면 ‘머슬(muscle)비치’란 작은 간판을 만날 수 있다. 각종 철봉 기구와 최신 운동기계가 구비돼 있고 비치발리볼도 가능하다. 여자친구와 온 청년은 한겨울에도 반소매 티로 철봉에 매달려 근육 자랑을 한다.

▲ 강릉 세인트존스호텔 앞 송림 속 조각작품들

이곳 송림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조각작품들이 발길을 잡는다. 화강암으로 만든 귀여운 조랑말, 동으로 만든 나신의 남녀와 천사의 날개,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컬러의 철제아트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핸드폰을 꺼내 한참동안 사진을 찍는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공공예술이다. 머슬비치와 야외 조각은 인근의 세인트존스호텔이 시민과 관광객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퍼블릭 아트는 거리나 공원, 해변처럼 누구나 거닐고 즐기는 공간에 설치된 작품을 말한다. 강릉은 바다와 해송 숲처럼 자연은 넘치지만 거리의 예술은 아직 빈약하다. 공공예술은 지자체와 독지가, 아티스트가 의기투합할 때 좋은 결과를 빚어낸다.

▲ 오쿠다 산 미구엘의 등대 작품

해외의 그런 작가 중에 오쿠다 산 미구엘이란 스페인 사람이 있다. 우리의 색동옷과 유사한 원색의 컬러를 패턴으로 풀어내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새해 초엔 마드리드의 쇼핑명소 엘코르테 잉글레스백화점에서 매우 동양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용의 해를 맞아 25m에 달하는 거대한 용이 백화점 중앙 기둥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특유의 패턴으로 뽑아내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평범하고 칙칙한 공간도 그가 손대면 단박에 생기를 띠고 인파를 불러모은다. 자신의 고향 바닷가에 있는 오래된 등대를 화려하게 살려내고, 도시의 건물 외벽도 캔버스로 활용하는 그는 색과 공간의 마법사로 불린다. 이런 작가를 강릉에 초청해 국내 아티스트들과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하면 어떨까. 솔향 가득한 곳에 세련된 도시 이미지를 가미해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경포 바다의 상징인 5리 바위와 10리 바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중앙광장이 있다. 콘서트나 커피축제 등 웬만한 행사는 대부분 여기서 열린다. 주변엔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나 벤치와 나무그네 등 편의시설이 즐비하다. 걷기 좋은 데크를 해변과 평행으로 깔아 시민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다.

야간에는 지역의 관광명소 사진을 담은 LED 판이 환하게 빛난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2m쯤 되는 커다란 우체통 두 개다. 비치된 엽서에 사연을 적어 넣으면 매우 느리게 배달되는데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계절의 그림자가 몇 번 바뀔 즈음 엽서는 그때 그 느낌 그대로 수신인을 찾아갈 것이다.

▲ 세인트존스 조각작품

경포와 맞붙은 사근진 앞바다에는 강릉 해중공원 전망대가 나름 조형미를 뽐내며 자리 잡고 있다. 덩치가 크지 않아 바다 경관을 해치지도 않는다. 이처럼 다양한 시설들이 있지만 디자인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꽤 있다. 모양이나 색깔, 그리고 거기에 쓰여 있는 문구나 글자체까지 디테일에 좀 더 신경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느린 우체통도 하나는 파란색, 다른 하나는 빨간색으로 진부하다. 색감에 대한 깊은 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말이 나온 김에 화장실 얘기도 하고 싶다. 느린 우체통 바로 뒤, 광활한 동해와 마주하는 대형 공중화장실이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상이다. “화장실이 다 그렇지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토록 근사한 입지를 생각하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경포해변에 가면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아주 특별한 화장실이 있대.”

이런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외국 관광객까지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국제공모를 통해 예술작품 같은 화장실을 새로 짓는 것이다. 공간전문가들은 고만고만한 시설 여러 개보다 확실한 하나를 짓는 게 낫다고 말한다. 2018 동계올림픽을 치르면서 강릉엔 선수촌아파트, 빙상경기장, 종합운동장, 강릉아트센터와 같은 굵직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그 주위에 야외 예술품들이 놓여 있지만 눈길을 끄는 건 별로 없다. 퍼블릭 아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치가 낮은 것도 그 때문이다. 늘 보아왔지만 늘 그 수준이어서 이젠 기대를 접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금을 쓰는 공공기관은 늘 예산제약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 문제는 대충 쓰는 세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강릉 사천면에는 숲사랑홍보관이라는 시설이 있다. 2006년 국고를 지원받아 9576㎡의 넓은 부지에 근사한 건물을 완공했다. 숲이 왜 중요한지, 산불이 나면 피해가 얼마나 막심한지 홍보하고, 산불 끄는 장비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누구의 관심도 끌기 어려운 상식적인 내용이다 보니 손님이 없다. 그런데도 전국 유일의 시설이라고 자랑하며 시설 개보수에 올해도 큰돈을 쓴다고 한다.

강릉은 삼국시대 이래 1500년 동안 자연 속에서 문향을 머금고 조용하게 성장해 왔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KTX가 달리고, 관광과 문화를 첫째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다. 강릉에 가면 편의시설이 남다르고, 곳곳에서 근사한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고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침 서울 바깥에선 만나기 힘든 세련된 공공미술관 ‘솔올’도 지난 14일 문을 열었다. 그 파동이 점점 커져 뉴웨이브가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컬쳐랩 심상 대표 simba3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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