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스타트업, 현지 네트워크 확대···日 시장은 '메기효과' [한일 정부 공동 벤처펀드 조성]

이덕연 기자 2024. 2. 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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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공동 벤처펀드 '윈윈'
현 글로벌펀드 운용 방식 따를땐
日 VC, 韓 벤처 투자의무 가능성
제도·법률 자문 등 도움 기대도
플랫폼 노하우 등 갖춘 韓 기업
日 스타트업 업계에 활력 줄 것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한일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서울경제]

우리 정부가 일본과 협력을 대폭 확대하는 것은 그만큼 국내 스타트업·중소기업 생태계의 글로벌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국내 벤처 생태계는 태동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해외 진출·수출을 통한 글로벌화에 있어서는 여전히 성장 초입 단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의 협력 강화는 국내 중기·스타트업에 기회의 문을 더 넓혀줄 수 있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세계에서 국내총생산(GDP)이 네 번째로 큰 시장이고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2022년 ‘스타트업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등 벤처 생태계를 육성하려는 의지가 크다.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SW)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스타트업이 공략하면 큰 폭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이달 20일 발표한 ‘2023년 국내 벤처 투자 및 펀드 결성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 금액은 10조 9133억 원으로 2022년(약 12조 4706억 원) 대비 12.5%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확대됐던 2021년의 15조 9371억 원과 비교해서는 더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분기별로는 1분기부터 4분기까지 꾸준히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지만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의 국내 진입,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없이는 혁신 생태계 확장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지난해 범부처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 대책’을 발표하며 ‘세계 3대 창업 대국’을 모토로 글로벌화에 초점을 맞춘 각종 과제를 제시했다.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창업 허브(가칭 ‘스페이스K)’를 조성하는 등 국내 창업 생태계를 글로벌화하는 정책이 발표됐지만 핵심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아웃바운드’ 정책이다. 정부는 약 2조 원 규모의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를 조성해 해외 진출 기업을 지원하고 국내 네거티브 규제 지역 ‘글로벌혁신특구’의 해외 거점을 만들 예정이다. 이번 한일 공동 벤처 펀드 조성 추진은 이 같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 10월 출범한 일본 기시다 내각은 2022년 6월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을 모토로 △인재 △과학기술 및 혁신 산업 △스타트업 △녹색 전환 △디지털 전환 등 다섯 가지 중점 분야를 제시했다. 같은 해 11월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당시 8774억 엔(한화 약 7조 7621억 원) 수준이었던 스타트업 투자 규모를 2027년까지 10조 엔(약 88조 4670억 원)으로 대폭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장기적으로는 10만 개 스타트업, 100개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기업)을 육성할 계획을 내놓았다.

일본이 한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잘라파고스(영어 국가명이 J로 시작하는 일본과 갈라파고스를 합친 말)’라고도 불리는 일본 경제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미쓰비시·미쓰이·이토추·스미토모·마루베니 등 종합상사와 도요타·혼다·소니와 같은 대기업,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강소 제조 기업을 위주로 산업이 발달해 있지만 스타트업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위축돼 있다. IT와 SW 기술을 갖추고 플랫폼 운영 노하우까지 보유한 한국 스타트업이 일본에 진출하면 일종의 ‘메기 효과’를 불러오며 일본 스타트업 경쟁력 또한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배경에 양국 정상은 지난해부터 스타트업 분야에서의 경제협력에 뜻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스탠퍼드대에서 기시다 총리와 가진 좌담회에서 “혁신에는 국경이 없고 한국은 8월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을 발표했다”며 “한국과 일본, 양국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우수한 만큼 양국의 연대와 협력이 확대되면 훌륭한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 또한 “국가 리더가 결단하고 행동하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며 “그것이 저의 신념”이라고 화답했다.

정상 간 합의를 바탕으로 양국은 지난해부터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일본 최대 바이오 허브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파크에서 한국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실증을 진행할 수 있게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대형 제약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바이오 스타트업 생태계가 비교적 빈약하고 한국은 그 반대다. 업계는 한일 바이오 협력은 양국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윈윈’의 대표 사례로 평가했다.

현재 양국 정부가 추진하는 공동 벤처 펀드가 현실화되면 일본에 진출하는 국내 스타트업 다수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논의되는 대로 공동 펀드가 현행 ‘글로벌 펀드’ 운용 방식을 따르게 되면 펀드를 출자받는 VC는 출자액 이상을 한국과 일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의무를 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 VC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게 되면 현지 네트워크 연결과 제도·법률 자문 등 다방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국내 스타트업은 해외 진출 때 현지 법령·제도 파악과 네트워크 형성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김영덕 은행권청년재단(디캠프) 대표는 “일본에서 사업을 하려면 신뢰할 만한 사람의 소개가 매우 중요하다”며 “아날로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 사업가들과 이미 ‘디지털 전환’을 경험한 한국 스타트업이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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