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대만 독자가 찾는 책엔 공통점이 있다…“위로와 생존”

최원형 기자 2024. 2. 2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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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위안션 출판사 리완전 부편집장 인터뷰
‘불편한 편의점’ 등 한국 베스트셀러 수입
문학뿐 아니라 실용서 등 대중성 앞세워
지난 21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만난 리완전 위안션 출판사 부편집장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불편한 편의점’의 대만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대만의 위안션(圓神) 출판사는 산하에 6개의 임프린트를 가진 대형 출판사로, 2021년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미예)에 이어 2022년 ‘불편한 편의점’(김호연) 등 한국 출판계의 베스트셀러를 대만으로 가져가 연이어 주목받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에 이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작가의 책만 15여개에 이르며,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저주토끼’(정보라) 같은 문학 작품부터 ‘엄마의 말 연습’(윤지영), ‘프로이트의 의자’(정도언) 등 심리서, 실용서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있다. 21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이 회사의 리완전 부편집장을 만나 대만 출판계가 최근 어떤 방식으로 한국 출판시장에 주목하고 있는지 들었다.

–최근 한국 출판시장에 대한 대만의 출판사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 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는 6개의 임프린트가 있는데, 6개 분야 각각의 담당자들이 한국의 교보문고, 예스24 등 인터넷서점에 올라오는 베스트셀러와 신간 등을 챙겨서 보고 주기적으로 함께 회의하는 시간을 갖는다. 한국의 인터넷서점은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뿐 아니라 이 책을 산 독자는 또 다른 어떤 책들에 관심을 가지는지 등 취향 분석 등이 잘 되어 있고, 이벤트나 굿즈 등을 운영하는 방식에서도 우리에게 아이디어를 준다. 인터넷서점뿐 아니라 각 출판사의 인스타그램 같은 에스엔에스(SNS)도 ‘팔로우’를 해두고, 새로운 것들이 없는지 살펴본다.

한국 책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때 번역자들의 구실도 상당히 중요하다. 요새는 취향과 감성을 한국과 공유하는 젊은 번역자들이 많이 나와서, 때때로 한국에 가서 한국 편집자들과 교류하고 ‘이 작품 좋은데 대만에 아직 안 나왔다’며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는 등 소통이 원활하다. 과거에는 그 수가 부족했던 에이전시들도 좋은 구실들을 많이 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신간 소개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이슈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대만 출판계가 한국 출판시장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82년생 김지영’이 대만에 출간된 것이 2018년이었으니, 이제 5년 지났다. 이제는 ‘김지영’뿐 아니라 한국의 예능, 케이팝, 문학 등이 전반적으로 대만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젊은 친구들의 유행도 한국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한국 문화가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걸 받아들이는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 이 때문에 출판사 역시 한국 책들을 더 많이 찾게 된다. 여기에 번역자들이 늘면서 더 많은 한국 책들을 수입할 수 있는 역량이 자라고 있다.”

위안션 출판사에서 펴냈던 한국 문학작품들의 목록 중 일부.

–위안션에서 대만 시장에 소개한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등은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특히 기존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이분법으로 포착할 수 없는 새로운 독자층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작품들이다. 어떻게 이 책들을 수입하게 됐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경우 한국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대만에서도 이런 류의 책이 잘 될까’ 생각하며 들여왔다. 긴가민가했지만, 책 내용이 재미있고 작가의 첫 책이어서 편집자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진행했다. 출간 뒤에 큰 반응이 있었다. 특히 초등학생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책을 읽은 뒤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평소 소설을 잘 안 보던 사람들도 이 책은 좋다고 하는 반응이 많았다. 게다가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응할 만한 마케팅이 얹어져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대만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대만판 표지를 잘 디자인한 것도 도움이 됐다.

2022년 2권까지 나와 인기를 이어가자, 지난해에는 생리대 만드는 대만의 유명 회사에서 ‘꿈’이라는 공통 열쇳말이 있으니까 함께 이벤트를 하고 싶다며 출판사에 제안해왔을 정도다. 우리 책의 표지 이미지가 새겨진 생리대 제품이 온 생필품 유통망에 깔렸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불편한 편의점’의 경우 1·2권 합쳐서 10만부 이상 판매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2022년 1권을 처음 냈을 때 아직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끝나기 전이었어서, 책이 주는 위로가 더욱 크게 다가왔던 듯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배경으로 인기를 얻은 것으로 안다. 특히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에는 김호연 작가의 구실이 컸다. 대만시장을 위한 홍보 영상도 만들고 대만에 여행 와서 독자들과 만남을 가지는 등 노력을 기울여준 덕이다. 옥수수수염차 등 한국 편의점에서 팔리고 있는 제품들을 묶어서 선물세트를 만드는 등 출판사에서도 강력한 마케팅을 폈다. 편의점은 대만 사람들에게도 매우 친밀한 공간인데, 여기에 한국의 문화가 담긴 스토리가 얹어지니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2권 출간 뒤 진행한 협찬 이벤트. 널리 팔리는 생리대 제품에 책 표지 이미지를 붙였다.

–한국 책을 확보하려 다른 출판사들과도 경쟁하고 있을 텐데, 위안션은 특히 어떤 곳에 주력하고 있는가?

“편집자가 좋아하는 것보다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에 무게를 두고, 대중성을 앞세우는 편이다. 국외에서 상을 받은 한국 작품이라면, 편집자는 관심을 갖고 좋아할 수 있지만 대중 독자들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소설뿐 아니라 비소설도 많이 진행하는 편이다. 아이를 존중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엄마의 말 연습’, 영어 문장을 필사하는 ‘영어 필사 100일의 기적’(퍼포먼스 코치 리아) 등 실용서들도 반응이 좋았다. 여기에 젊은 감각의 홍보와 마케팅을 시도한다. 블로그를 통해서 책의 중점적 내용을 다시 전달해주는 것(‘엄마의 말 연습’), 큐알(QR)로 음원 제공해서 독자들이 들을 수도 있게 해주는 것(‘영어 필사 100일의 기적’) 등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위안션 출판사에서 펴냈던 한국 비문학 작품들의 목록 중 일부.

–다른 책들에도 그런 홍보·마케팅이 필요할 텐데, 유독 한국 책에 대한 홍보·마케팅을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대만이나 다른 나라 책들에 견줘볼 때, 한국 책들은 이런 방식의 참신한 홍보·마케팅의 효과가 좋다. 한국 책들의 경우 그런 홍보·마케팅의 초점을 가장 잘 잡을 수 있기도 하다.”

–대만과 한국의 출판시장이 갈수록 긴밀하게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 사회와 대만 사회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의 경험이 특히 그렇다. 집을 사야 하는 걱정, 일자리에 대한 걱정 등이 많은 반면 책을 읽거나 쉬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는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한국에서 2022년 스웨덴 저자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란 책의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대만에서는 아직 위안션이 대만판 출간을 검토하고 있을 때였는데,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출간을 결정했다. 이 책은 2023년 위안션의 주력 도서 가운데 하나였다. 나중에 한국 독자들과 대만 독자들의 댓글들을 보니,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이 굉장히 비슷했다.

한국과 대만 독자들이 찾는 책들의 공통점을 꼽아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사소한 차이’(연준혁) 등 그동안 대만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한국의 실용서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개정판도 나오는 등 대만에서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한국 책들은 유럽이나 영미권 책들과 달리 복잡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구체적이고 빠르게 습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외국 책들은 이론적으로 복잡한 책들이 많은데, 한국 책들은 구체적인 기술을 제시한다. 그뿐 아니라 여기에 더해 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힐링이나 위로 등을 함께 준다. ‘위로’와 ‘생존’ 두 가지를 주된 열쇳말로 꼽을 수 있다.”

위안션 출판사가 올해 펴낼 주력 한국 책들의 표지.

–올해 위안션이 주력해보려하는 한국 책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3월에 나올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윤정은)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 등을 잇는 주력 도서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손원평 작가의 ‘튜브’, 김호연 작가의 ‘연적’ 등을 계획하고 있다. 김수민 작가의 그림 에세이 ‘우리 헤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엄마의 말 연습’ 작가의 후속작인 ‘오뚝이 육아’, 박혜윤 작가의 ‘숲속의 자본주의자’ 등도 대기 중이다.”

타이베이/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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